과학계 "R&D를 시간 재나? 52시간제 유연성을"

[주52시간 그후]현장 과학자 "불필요한 행정규제로 막힌 느낌"
출연연 보직자 "조직 뿌리채 흔들려, 협력 어려움 커져"
"연구현장 특성 이해하고 자율적 적용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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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애경·한효정 기자 - 2019.08.06

연구개발 분야도 주52시간 근무제(이하 주52시간제)가 전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본지 취재 결과 과학계에 도입된 주52시간제로 연구현장은 유연성과 자율성이 더 낮아졌다는 분위기다. 유연 근무제로 자신의 여건과 특성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조율했던 연구자들은 갑작스러운 서류와 절차에 불편함을 호소했다. 출근과 퇴근, 외출 시간까지 모두 기록하게 되면서 행정적 절차들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연구자들의 자율성을 더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반도체 소재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분야별 출연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대응책의 일환으로 연구개발(R&D) 분야의 주52시간제 특례 확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현장에서 일시적인 특례 확대보다 R&D 특성에 맞는 유연성이 연구개발 집중에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18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주52시간제(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연구개발업 분야는 지난달부터 도입됐다. 노사가 합의해도 주당 근로시간 52시간(휴일, 연장 포함)을 지켜야 한다. 어길 경우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은 각각의 출퇴근 체크 시스템을 마련하고 선택적 근무제, 코어 타임제(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집중 근무)를 도입해 주52시간제를 운영 중이다.

◆ 추가 근무 때마다 결재 신청, 승인 없는 근무 시 사고 당사자 책임

#1 주52시간 근로제 도입 이후 야근을 한 적이 없다. 추가 근무를 신청하려면 실험 계획을 해 놓고 진행 시간까지 예측해서 결재를 신청해야 한다. 불편해서 그냥 안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추가 근무를 신청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걱정된다.

#2 매일 컴퓨터를 켜고 출근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급하게 요구해온 자료들을 처리하고 보내느라 잊고, 손에 익지 않은 출근 버튼 클릭을 4번이나 늦게 했다. 사유서를 썼다. 퇴근할 때도 자주 클릭을 빼 먹어 컴퓨터를 다시 켠 적이 여러 번이다. 이게 연구자의 삶인가 회의감이 든다.

재량근무를 하는 A 기관 책임연구자는 주52시간 시행이 당장 연구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근무 시간 이후에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연장 근무를 하려면 소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신청하지 않고 근무하다가 사고가 생기면 당사자가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이런 환경에서 연구자가 어떻게 연구에 집중하고 소신 있게 연구개발을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일부 박사후연구원들은 학생들과 연구를 더 활발하게 하고 싶은데 제도적으로 막힌 것 같다고 토로하더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불편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B 기관 박사후연구자는 "주 52시간을 넘었다고 제재를 받는 것이 아니라서 이전처럼 연구하면 되지만, 근무시간 관련 결재 체계에 익숙하지 않다"며 "추가 근무를 신청하려면 모든걸 계획해 예상 진행 시간을 보고해야 하고 주 52시간을 다 채우면 주말에 공식적으로 출장을 갈 수 없다. 해외 교류 등 가능할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선택적 근무제를 선택한 C 기관의 연구자는 "유연 근무제를 선택했어도 4시에 퇴근한 적이 없었다"고 웃으며 "다만 이전에는 회의를 오래 하면 야근을 자연스럽게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회의를 오래 하면 부서장이 시간을 까먹었다는 인식이 생겼다.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제안했다.

출연연 근무 20년 차인 D 연구자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출퇴근 버튼 클릭이 익숙하지 않아 뒤늦게 컴퓨터를 켜고 출근을 클릭했다가 사유서를 써서 결재를 받아야 했다. 그는 "주52시간제가 취지와 달리 연구 현장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연구자의 창의성까지 자율이 아닌 행정 법으로 묶으려는 공무원들을 위한 발상으로 보인다. 취지는 공감하는데 점점 불편해지는 문제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 "조직의 의미 뿌리째 흔들려···같이 보다 개인"

출연연의 행정 분야를 맡은 E 부서장은 주52시간제 이후 조직이 무색해졌다고 밝혔다. 조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근무하는 출연연은 10일 단위(2주)로 근무시간을 확인한다. 근무자가 야근을 해서 52시간을 채우고 지난주 9시간을 초과했으면 이번 주 중에는 코어시간이 끝나는 3시 이후 언제든지 퇴근할 수 있다.

E 부서장은 "모두 같지 않겠지만 일이 몰릴 때가 있고 같이 해야 할 때가 있다. 구성원들이 있는데도 말도 없이 퇴근하더라"면서 "회의도 코어시간 이후에  잡으면 직장 내 갑질로 보일까봐 오히려 눈치를 봐야 한다. 구성원이 초과근무를 하면 부서장이 징계를 받는다"고 난감해했다.

그는 "좋은 취지로 도입됐다는 주52시간제로 같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흐려지고 있다. 좀 과하게 말해서 벌써부터 조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면서 "출연연 일부에서 시범적으로 해보고 드러나는 문제를 개선한 후 도입해도 늦지 않았다"며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했다.

F 기관의 선임 연구원은 "외출 시간을 컴퓨터에 기록해야 하고 특히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사이 코어타임을 채우지 못하면 그 시간을 휴가에서 빼야 한다"며 "더 일한다고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아닌데 행정적으로 불필요한 것들을 해가며 제도를 시행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정부의 R&D 분야 주52시간제 특례 확대 검토에 대해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예외 규정을 만들어갈 것이냐"고 안타까워하며 "행정적 기준이 아니라 R&D의 특성을 알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연성이 인정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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