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규의 사피엔스 관통하기③] 농업혁명과 서기체계

"농업혁명으로 자연생태계 위협, 인류 지탱 위협···문자체계 과학기술 결정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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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2019.03.06

◆ '거대한 사기' 관점의 농업혁명 읽기

유발 하라리의 농업혁명에 대한 개념과 그 본질의 진맥은 가히 파격적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야생 식물은 채취하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며 사는 방식을 유지했다. - 중략 –이러한 상황은 대략 1만 년 전 달라졌다. 이때부터 사피엔스는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몇몇 동물과 식물의 삶을 조작하는데 바치기 시작했다.'(사피엔스, p.120)

하라리는 농업혁명을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으로 개념을 설정한다. 따라서 약 1만년 전에 농경의 시작과 정주 생활이 이루어지고, 약 5000년 전에 계층구조를 형성하는 집단이 형성되고,  다시 약 5000~2000년전에 경제·정치·종교 등 보편적 질서의 토대가 갖추어졌다는 크로노스적 풀이에 주목하다 보면, 하라리의 의도를 온전히 읽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인지혁명'에서는 그저 그런 유인원이었던 호모 사피엔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농업혁명에서는 그저 그런 야생식물과 야생동물 등에도 시선을 옮긴다. 이를테면 지구 한 모퉁이를 차지하던 야생밀이 어떻게 전세계 어디서나 자라나, 생물학적으로 가장 성공한 식물 종이 되었나를 들추어낸다. 하라리는 농업혁명에 대한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는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History’s Biggest Fraud)'라는 것이다. 범죄 내용은 농업혁명으로 인류는 몇 개의 덫에 걸려들었다고 분석한다.

먼저 사치라는 덫에 스스로 걸려들었다. 위험하고 가혹한 수렵채집인의 삶을 포기한 농업인은 보다 안락한 미래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농업인이 소망한 사치일 뿐이었다. 기원전 12000년 경 이집트 무덤의 벽화. (사피엔스, p.144) 황소 두 마리가 밭을 갈고 있다. 채찍질 하는 농부의 등은 심하게 굽어 있다. 그들이 꿈꾼 사치는 대규모 공동체의 출현과 함께 탄생한 지배자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기실 농부는 수렵채집인 보다 고달픈 생활에 시달렸다.

사피엔스 책자 126쪽과 146쪽 이미지 활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사피엔스 책자 126쪽과 146쪽 이미지 활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둘째, 농부는 작물화라는 야생 식물의 덫에도 빨려들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야생의 밀을 작물화하면서, 빵을 먹거리로 만들고 자신에 이익에 맞도록 가공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많은 밀을 재배해야 했다. 경작지가 늘어나면서 농부는 하루 종일 밀을 위해 잡초를 뽑고, 제때에 물을 길러다 바쳐야 했다. 작물화된 밀은 성질이 고약하여 온갖 영양소를 안겨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않았다.

농부는 밀밭 옆에 주거를 마련하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힘든 자세로 밀의 시중을 들었다. 여기서 하라리의 멋진 표현을 빌어보자.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사피엔스, p.126) 

셋째, 양, 소, 돼지과 같은 동물의 입장에서 헤아려본 농업혁명은 실로 재앙이었다. 사람들은 야생의 동물을 끌어와 마음에 들도록 거세 등으로 그들의 야성을 조작했다. 쟁기질하는 일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지닌 본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산업적 육류 농장의 송아지.(사피엔스, p.146) 출생 직후 어미와 격리된 후 좁은 우리 속에서 4개월 정도 살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갈 뿐이었다.

이것이 하라리가 본 농업혁명의 가리워진 실상이다. 왕과 귀족의 입장에서 본 농업혁명은 거대한 힘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농민, 가축화된 동물, 작물화된 밀 등 개별 종의 관점에서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고통이었다. 작물이 인간을 가축화한 것이지, 인간이 작물을 가축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총, 균, 쇠 vs '사피엔스'의 농업혁명

 '총,균,쇠'는 인류 문명에 대한 불균형 발전의 심원을 밝힌 역작이다. 하라리는 '총,균,쇠'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설핏 보면 사피엔스의 농업혁명 부분은 총,균,쇠를 요령있게 정리한 압축판으로 읽힌다. 그러나 하라리는 다이아몬드의 생물지리학적 성과를 역발상으로, 평균적인 농부의 심리를 헤아리며 동물과 식물의 입장에서 농업혁명을 통찰했다.

다이아몬드는 열대의 섬 뉴기니에서 우연히 만난 알리라는 청년으로부터 받은 질문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총,균,쇠, p.15) 에서 인류 문명의 불균형을 다룬 연구를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뉴기니와 유럽 사람들의 발전 속도가 달랐던 것은, 인종적⸱민족적 차이가 아니라 대륙마다 차이가 나는 환경에 기인한다는 생물지리학의 영역을 개척했다. 토양과 기후가  적당한 대륙과 지역에는 인간이 작물화, 또는 가축화에 용이한 야생 동·식물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한편 하라리는 야생밀이 작물화되면서 고달파진 농부의 삶을 들여다보고, 야생동물이 가축화되면서 유린당한 동물의 행복을 성찰하고 있다.   

작물화·가축화에 따라, 식량생산이 수렵채집이었을 때보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도 증대한다, 한편으로 식량생산에 전념하지 않는 군인, 사제, 엘리트 등 지배계층을 탄생시켰다. 계급과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의 출현 등으로 기록 가능한 문자가 생겨났다. 이윽고 제국이 생기고 대형 건축물 건설 등을 위한 다양한 기술과 철기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다이아몬드의 분석결과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이러한 인류 문명의 발전은 대륙의 지배자였던 대형 포유동물의 대부분을 절멸시키고, 남아있는 동물은 육류산업 시스템에 강제 편입된 실상을 고발한다. 수렵채집인에게 풍성한 식단을 제공했던 녹음방초의 원시자연은 농업혁명으로 경작지로 바뀌었다.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고 식물 다양성의 훼손 등으로 인류 문명의 지탱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각 대륙의 인류 사회가 다른 발전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은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임을 규명한 인류 문명 생성 보고서이다. <그림=하윤주>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각 대륙의 인류 사회가 다른 발전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은 사람의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임을 규명한 인류 문명 생성 보고서이다. <그림=하윤주>

역사에는 가정이 없지만, 만일 BC 1만년 전, 유럽인종들을 오스트레일리아 남쪽 테즈메이니아 섬으로, 테즈메이니아인들을 유럽대륙으로 바꿔 옮겨놓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 이후의 발전 속도로 테즈메이니아인들이 유럽인종을 지배하는 역사로 인류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다이아몬드가 인류 문명 불균형 발전의 수수께끼를 새롭게 풀었다면, 하라리는 인지혁명과 농업혁명 등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있어서 다른 생물 종과 개별 사피엔스의 행복과 고통, 그리고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한다. 그는 지금까지 이 점을 간과한 것은 인류 역사 이해에 있어서 최대의 결락이고, 이젠 이 결락을 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농업혁명과 서기체계의 발명 그리고 고도화

'보슬비가 내린다. 천지 만물이 춤춘다. 함박눈이 내린다. 천지 만물을 재운다.' 우리는 비나 눈 오는 날이면 감정이 춤추는 문학청년이 되어 보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 세계의 부름은 인지혁명 이후 우리의 고대 선조들도 경험했을 터다. 그러나 그들의 남겨진 기록은 별로 없다.

쇼베 동굴의 벽화, 슈타델 동굴에서 나온 상아 공예품 등 남아있는 극히 일부의 유물로 그들의 내면세계를 유추할 뿐이다. 약 9000년전 아르헨티나의 '손동굴'의 손도장.(사피엔스, p.94) 바위 속에서 우리를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쓰고 읽을 수 있는 서기체계가 없었기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기원전 3500~3000년경에 우르크 시의 행정문서가 적혀 있는 점토판(사피엔스, p.185)은 인류 최초의 문서체계이다. 점토판에는 2만9086자루의 보리를 37개월에 걸쳐 쿠심이 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라리는 이 문서에 대해 '아, 슬프다. 역사상 최초의 문서에 담긴 것이 철학적 통찰도, 시도, 전설도 아닌 세금 지불액과 쌓이는 빚의 액수를 적은 경제문서였다니'하고 자신의 심중을 그려내고 있다.  
         
하라리는 인간의 뇌 바깥에서 기록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첨단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기에, 보다 심오한 사피엔스의 정신세계가 담겨있길 기대하였을 것이다. 수메르인들이 남긴 문자는 특정 유형의 정보만 기록할 수 있는 불완전한 문자체계였다. 수메르 문자나 수학기호로 시와 같은 구어는 표현할 수 없지만, 세금 징수를 위한 서기체계로서는 효과적이었다.(사피엔스, p.188) 세금 장부와 관료주의와는 서로 어울리는 멋진 한 쌍이었다.
 
사피엔스 책자 94쪽, 185쪽, 188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사피엔스 책자 94쪽, 185쪽, 188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인간의 뇌에 담아 둘 정보의 양은 너무 적고 또 관리와 저장도 힘들었기 때문에 인류는 점점 서기체계를 발전시켜 갔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를 품는다. 이러한 이념을 담은 한글의 자모체계는 인간 세계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소리 낼 수 있는 완벽한 문자체계이다. 더구나 세계 2900여 종의 언어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체계로 정평이 나 있다.

수학적 문자체계는 오늘날 인간이 누리는 첨단과학기술의 결정체로 진화했다. 0에서 9에 이르는 10개의 기호로 이뤄진 숫자는 컴퓨터 속에서 0과 1의 이진법 체계로 조합되었다. 컴퓨터가 계산하는 기본원리와 인간의 뇌가 생각하는 메커니즘은 별반 다르지 않다. 뇌도 시냅스가 붙거나 떨어짐을 반복하면서 계산도 하고 생각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서기체계와 컴퓨터의 만남은 인공지능이라는 디지털 지능을 만들어내면서, 인간의 고유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인간의 하인으로 등장한 서기체계가 이젠 인간을 부리려 하기 때문이다. 
 
◆ 기원전 1776년 vs 서기 1776년 그리고 1485년

인간은 이중의 현실을 다스리며 세계를 통제한다. 인간 이외의 모든 동물은 객관적 실재에서 살아간다. 동물의 현실은 강과 나무 그리고 사물로 구성되는 자연적 실체가 전부다. 이에 비해 인간은 수천, 수만 년에 걸쳐서 상상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 세계를 빚어내었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마술 같은 허구의 세계에 새로운 권위와 신뢰라는 토대를 구축했다.

하라리는 허구에 기반한 신화가 제국 전체를 지탱하는 근간임을 농업혁명 시대의 함무라비 법전(사진, 사피엔스, p.158)과 근대의 미합중국 독립선언문을 대비하면서 설명한다. 더구나 기원전 1776년과 서기 1776년이라는 절묘한 짝을 찾아내어 그 효과를 증강한다.

기원전 1776년의 바빌론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였다. 바빌론의 왕 이름을 딴 동 법전의 목표는 함무라비를 정의로움의 표상으로 만들고 있다. 바빌론의 사회적 질서는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임을 신들이 읊어준 것이다. 이 원칙은 제국에 사는 수백 만 명의 신화가 되었다. 제국의 모든 신민을 대규모로 협력하게 만들었다.

하라리는 인지혁명이 있기 전의 호모 사피엔스는 함무라비 법전이 갖는 함의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제국을 호령하는 기세로 당당하게 서 있는 석주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엘리트에게는 추앙의 대상이지만, 침팬지나 고릴라에게는 그저 몸을 숨길 수 있는 그런저런 돌일 뿐이다.
 
사피엔스 책자 158쪽, 162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사피엔스 책자 158쪽, 162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함무라비가 사망한 지 약 3500년 후 미국의 건국자들도 똑같은 상상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1776년 7월 4일 영국 식민지의 열세 지역 대표들은 자신들은 더 이상 영국 왕의 신민이 아니라고 선언하기 위해서였다. 하라리는 이들이 내세운 '보편적이고 영원한 정의의 원칙'도 함무라비의 것과 마찬가지로 신이 영감을 내려주신 것이라는 상상적 프레임은 동일하다고 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사람들이 그 문서에 따라 신성한 원칙을 따라 행동한다면,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이며 공정하고 번영한 사회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한다.'(사피엔스, p.162)
 
하라리는 함무라비 법전이나 미국 건국의 아버지도 평등과 정의가 지배하는 세계를 표방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상적인 원리가 존재하는 곳은 오직 사피엔스의 상상력과 그들이 지어내 들려주는 신화 속에만 존재한다고 그 본질을 통찰한다.

1485년에 반포된 조선왕조의 경국대전(經國大典)도 같은 프레임과 맥락에서 살펴 볼 수 있다. 경국대전은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다룬 국가 통치의 근간이 되는 종합법전이다. 동 법전에서도 최고의 행정기관인 의정부의 역할은 명시하였지만, 국왕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임금은 왕권과 신권을 절충한 초월적 존재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이상적인 국가상은 왕권 신수설과 맞닿은 통치자의 상상력과 성리학적 교리 안에 존재할 뿐이었다. 

◆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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