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연구소+기업 캠퍼스, 美 연구소 개방···'협업·공유'

[연구문화②]막스 홉펠드 Arena 2036 CTO "글로벌 車 기업도 위기 느껴···산학연 함께 일하는 문화"
美·日서는 기관 개방 행사도 진행···韓 에너지연 내부 변화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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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 기자 - 2018.04.24

"'Arena 2036'을 통해 이룬 가장 큰 가치는 연구기관, 산업체, 대학 등이 조직 규모에 상관없이 중립적인 터전(Neutral Playground)에서 시작해 함께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고, 함께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면서 기존에 일하던 문화를 바꾸고 있습니다. 한국인들도 함께 모여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막스 홉펠드 Arena 2036 CTO)

"즐겁고 신나는 일터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 협동하는 행복한 조직문화 확산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왜 일하는가'부터 구성원들과 논의하며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곽병성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변화하는 미래 환경에 맞춰 일하는 문화도 속속 변화하고 있다. 국·내외에서는 조직문화를 바꾸고, 함께 일하는 문화를 구축하고, 조직을 공개하는 등의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연구소, 대학, 산업계가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협업하며 공동의 목표 아래 새로운 연구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 근무환경과 생산량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NIH(국립보건원)에서는 본관 1층을 개방해 대중들이 이용할 수 있다. 일본 RIKEN에서는 매년 연구소 개방 행사가 열리고, 맥주를 마시며 연구자들 간 교류도 진행된다.

국내에서는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조직문화실을 신설하고, 직원들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독일, 'Arena 2036' 통해 민간 중심 협업 문화 구축

"급변하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독일 다임러나 한국 삼성도 한순간에 망할 수 있습니다. 연구기관, 대학도 마찬가지죠. 파괴적인 혁신으로 인한 위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최근 '국제케이블로봇포럼' 참석차 한국을 찾은 막스 홉펠드(Max Hobfeld) Arena 2036 CTO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위와 같이 설명하며 위기 대응과 협업 필요성을 강조했다.

독일에서는 '인더스트리 4.0' 맥락 아래 'Arena 2036'라는 협업 프로젝트가 지난 2013년부터 민간 주도로 실시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프라운호퍼연구소, 독일항공우주센터(DLR), 슈투트가르트대, 다임러, 보쉬, 플러그앤플레이 등 30여곳이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Arena 2036'이라는 명칭의 표면적 이유에는 독일의 자동차 산업 150주년을 기념하는 2036년에 맞춰 차세대 자동차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연구환경을 마련(Active Research Environment for the Next Generation of Automobiles in 2036)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미래 경쟁력 확보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 개념 변화와 협업 문화 창출 등을 목표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위기감'의 발로로 시작됐다. 4차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등이 예고되면서 기존 방식만을 고수하다가는 글로벌 대기업, 연구기관들도 일거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00년대초의 자동차와 현재 자동차는 큰 차이는 없지만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 당장의 자동차 생산량 증가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수단이 소유에서 서비스 패러다임 전환, 마이크로팩토리(Micro Factory)나 가상공간의 발전 등으로 인한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막스 홉펠드 CTO는 "당연히 현대사회에서 각 조직이 당장의 성과나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1주, 1달, 10년 후 등까지 존속 가능한 방법에 대해 철저히 고민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생존을 장담하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각 주체들이 독일연방정부를 통해 제안한 내용은 독일 정부의 승인을 받아 협업 프로젝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독일 정부에서도 4차 산업 혁명에 대응하고, 중소·중견 기업들이 미래를 위한 경로를 설정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이를 장려했다.

프로젝트는 연구기관, 산업체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운영한다. 여기에 정부 관료는 없다. 다양한 파트너들이 관리비와 프로젝트 비용을 부담해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은 대학 캠퍼스에 있는 산업체(Industry on Campus)이다. 슈투트가르트대에 국제 선도 연구 캠퍼스를 구축하고, 200여명이 상주하며 협업하고 있다. 관계자를 합산하면 수백명에 달한다. 기관, 기업 등서 파견된 인원들이 최소 3일 이상 상주하며 공동의 목표 아래 같은 공간에 앉아서 일한다.

이들은 제품, 예방조치, 새로운 근무환경 등을 검토한다. 각자의 강점을 기반으로 다양한 파트너와 기관 사이에 어떻게 근무환경을 혁신시킬 수 있을지. 미래 엔지니어링 제품은 어떻게 변화할지 논의한다. 총체적으로 거대 미션을 만들고 공통의 목표를 설정해 협업을 진행한다.

막스 홉펠드 CTO는 "거대 조직일수록 위험부담이 큰 변화에 나서길 주저하며, 실패를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하지만 조직이 좀 더 오래 존속하기 위해 함께 위험을 부담하면서 협업하면 좀 더 나서기 쉬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다양한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다. 가령 USB를 자동차 생산공정에 도입해 이를 꼽고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USB가 자동구성 시스템 네트워크를 만들고, 머신러닝 등이 적용되어 스스로 학습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물론 사람들을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막스 홉펠드 CTO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원을 파견하고 비용을 부담하고, 함께 일할 필요성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또 서로간의 관심사와 문화가 다르고, 대화가 익숙하지 않다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서로 신뢰하며 일할 수 있도록 법적 조정을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같은 법률 용어에도 참여하는 파트너 입장에 따라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다수의 변호사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공정한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막스 홉펠드 CTO는 "현재까지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라면서 "독일은 산업정책인 '인더스트리 4.0'에서도 첫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양상에 따라 협업하는 문화의 중요성은 점차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막스 홉펠드 'Arena 2036' CTO.<사진=전남대 로봇연구소 제공>막스 홉펠드 'Arena 2036' CTO.<사진=전남대 로봇연구소 제공>

협업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연구기관, 산업체, 대학이 참여한다.<자료='Arena 2036' 제공>협업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연구기관, 산업체, 대학이 참여한다.<자료='Arena 2036' 제공>

연구 캠퍼스에는 수백명의 관계자들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함께 연구하고 논의한다. 이 캠퍼스는 하드웨어 연구실이자 연구전문가가 상주하고, 서로 협력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사진='Arena 2036' 제공>연구 캠퍼스에는 수백명의 관계자들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함께 연구하고 논의한다. 이 캠퍼스는 하드웨어 연구실이자 연구전문가가 상주하고, 서로 협력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사진='Arena 2036' 제공>


 

◆미국 NIH 본관 1층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 일본서는 맥주 마시며 교류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위치한 NIH(미국국립보건원). 정문 출입절차 후 본관에 들어서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의료와 건강 연구라는 연구소 특성도 있지만 NIH 1층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카페, 도서관, 세미나실,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연구시설이 아닌 커뮤니티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 NIH 1층 모습.<사진=대덕넷>커뮤니티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 NIH 1층 모습.<사진=대덕넷>
출입문 쪽 홍보관을 지나 건물을 가로지르는 복도를 따라 곳곳에 카페가 위치해 있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또 디지털 자료와 도서를 볼 수 있는 도서관이 배치돼 있고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강연은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일본에서도 개방과 소통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RIKEN(일본 이화학연구소)은 매년 'Open Day'를 개최하고, 연구와 관련된 이벤트와 강연을 진행한다. 행사일에는 실험실과 첨단 시설이 방문자들에게 공개된다.(관련 홈페이지 링크)

금요일에는 연구자 등이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며 즐길 수 있는 맥주 파티도 종종 열린다. 평연구원부터 종신 주임연구원까지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한 주 동안 발생했던 이슈들에 대해 대화한다. 이웃 연구팀들과도 연구실 상황을 공유하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모습들이 RIKEN의 문화가 됐다.

RIKEN 종신 주임연구원 가운데 유일한 외국인이자 한국인인 김유수 박사는 "RIKEN 과학자들은 연구자의 연대가 가장 중요함을 알고 있다"라며 "연구팀뿐만 아니라 조직 등이 100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만들어왔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일부 변화의 움직임은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원장 곽병성)은 조직문화 혁신 등을 기반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기관 내부 구성원들이 먼저 소통하고 공통의 목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연에서 기업 출신 외부 기관장이 처음으로 선임되면서 혁신이 추진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출연연 조직에 익숙한 내부 직원들과 외부 출신 기관장의 시각 차이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혁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다. 하지만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변화는 '왜 일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접근부터 시작된다. 전직원이 참여한 가운데 1년여에 걸친 TFT를 통해 기관 목표와 핵심 가치가 만들어졌다. 전직원들이 참여해 만든 '1도의 기술'이라는 슬로건이 대표적이다.  

에너지연 A 박사는 "그동안 에너지연의 가치 체계가 없거나 일부 원장 중심으로 만들어진 경영 목표와 달리 전직원이 참여해서 기관 목표와 핵심 가치를 설정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면서 "기존보다 회의시간이 빨라지고, 종이가 없어졌다. 토론 등 소통을 많이 하다보니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파급효과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내부 출신 평가자 중심의 평가 방식에도 외부 평가자가 참여하면서 보다 투명해지고, 사업관리체계 등에도 변화가 추진되고 있다. 또 신설된 조직문화실에서 조직문화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E-board'를 통해 다양한 의견도 수렴하고 있다. 점심 시간에 각자 식사를 하던 직원들이 일부 함께 식사를 하는 등의 변화도 시작됐다. 

A 박사는 "어쩌면 당연한 일을 그동안 왜 못했는가라는 생각이 든다"라면서도 "그동안의 문화를 단번에 바꾸기는 어렵지만 자주 만나 공유하고 소통하는 움직임이 시도된다는 것은 과거에 비하면 큰 변화"라고 설명했다.

에너지연 B 박사는 "반년 넘게 운영된 TFT를 통해 슬로건이 마련되고 에너지연만의 가치성과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이 마련됐다"면서 "원내 다양한 연구 그룹의 목적이 상이하지만 서로 공통의 목표를 갖고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출연연 유관 기관 관계자는 "연구 현장에서는 선진국 대비 낮은 연구비로 결과를 창출해야 하고, 모든 것을 잘하는 이른바 '슈퍼맨'을 요구하다 보니 같이 할 수 있는 문화가 없고, 같은 과제를 놓고도 원내에서도 경쟁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탑다운(Top down) 측면에서 기존의 연구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바텀업(Bottom up) 측면에서도 연구 현장이 주인의식을 갖고 역할과 책임을 갖고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연구 과정, 성과 등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서로 논의하는 장이 지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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