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벤처 '만나((MANNA)',식물공장으로 세계 농업혁신 도전
KAIST 졸업생들 의기투합…신입생때부터 같이 만들고 부수고
빛·물·영양·공기 자동으로 공급·제어…'농업 패러다임' 바꾼다

미래형 유기농 식물공장. KAIST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창업벤처 '만나'에는 실제 식물이 재배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미래형 유기농 식물공장. KAIST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창업벤처 '만나'에는 실제 식물이 재배되고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지난 2008년, KAIST(한국과학기술원) 기숙사에 2명의 신입생이 들어왔다. 산업디자인학과 박아론(29) 학생과 기계공학과 전태병(26) 학생.

외모, 성격, 고향, 전공도 달랐지만 룸메이트가 된 이들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뭔가 만들기 좋아하고, 또 세상에 없는 뭔가를 만들어보겠다는 꿈이 있었다. 당연히 죽이 맞았다. 함께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어 대회에 나가고 무선전기자동차 개발에도 참여했다. '천재 아니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실패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신났다.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우리 둘이 한 번 사고를 쳐보자.'

그리고 4년 뒤 졸업과 동시에 그들은 정말 '사고'를 쳤다. 취업 대신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벤처를 창업했다. 회사 이름은 '만나(MANNA)'. 한글식 이름이 연상되지만 성경에 나오는 용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광야에서 머물며 먹었던 양식으로 '하늘에서 신이 내려준 선물'을 의미한다.

이름 만큼이나 꿈도 거창하다. '식물공장'을 보급해 세계농업에 일대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 대학 신입생 시절 '재미'로 자동차를 만들고 부수던 룸메이트는 그렇게 '공동대표'가 됐다.

◆망설이지 않고 창업 선택…"친구들과 일하는게 재밌"

박아론 대표는 망설이지 않고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냥 같이 하면 뭐든 즐거웠습니다. 결과는 상관 없었지만 재미있으니까 어느 정도 성과도 나왔구요. 창업에 대한 뜻이 분명했다기 보다는 남들처럼 적당히 눈높이 맞춰 취업하고, 또 평범하게(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재미없게'라는 뜻이 역력했다)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분명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구요."

'만나'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 직원 8명 가운데 3명이 사진에서 빠졌다. (왼쪽부터)전태병 공동대표, 영업담당 이효선씨, 디자인담당 김다영씨, 박아론 공동대표, 브라질 출신의 파울로 캠퍼. <사진=김형석 기자>
'만나'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전 직원 8명 가운데 3명이 사진에서 빠졌다. (왼쪽부터)전태병 공동대표, 영업담당 이효선씨, 디자인담당 김다영씨, 박아론 공동대표, 브라질 출신의 파울로 캠퍼. <사진=김형석 기자>

실제 그랬다. 브라질 출신으로 KAIST 전자과 석사과정을 마친 파울로 캠퍼(30) 역시 신입생 시절부터 함께 어울렸던 친구.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날 '만나' 합류를 결정했다. 이유는 마찬가지다. "학교 다닐 때부터 이 친구들과 이런저런 일을 했는데 즐거웠습니다. 즐겁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또 한 명의 창업멤버인 임준기(24)씨 역시 박 대표가 신입생 때부터 '점찍어' 놓은 친구다. 박 대표는 "그 친구야말로 정말 천재다. 한 번 들은 내용은 아무리 어렵고 길어도 통째로 기억하더라. 만약 내가 사업을 하게 된다면 이 친구는 무조건 합류시킨다고 마음 먹었고, 실제 창업 계획을 세우자마자 그 친구에게 제안했다"고 그를 소개했다. 임씨의 대답은 물론 '예스(Yes)'였다.  

'만나'에는 KAIST 졸업생만 있는 게 아니다. 영업을 담당하는 이효선씨와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는 김다영씨는 한남대를 졸업했다. 그들의 도전정신이 좋았고, 즐겁게 일하는 그들이 좋아 합류했다.

공동대표를 포함해 직원들은 아직 별도의 사무실이나 자리가 없다. 그냥 한 공간에서 일하고 회의하는 곳이 자기 자리다. 그래도 큰 불편이나 불만은 없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무엇보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KAIST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있는 이들은 또래 창업벤처보다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오히려 만족한다. 

◆식물은 물고기가 만든 영양분으로…물고기는 식물이 정화한 물로

그렇다고 이들의 기술과 사업아이템까지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만나'는 농업에 생명공학기술(BT)과 정보통신기술(ICT)를 접목했다. 도시의 좁은 공간이나 농사 경험이 전무한 귀농인들이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인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인공수경재배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른바 '아쿠아포닉스'. 인공으로 빛과 물, 온도, 영양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차세대 농경시스템이다. 이들은 이것을 '보급형 식물공장'이라고 부른다.

아쿠아포릭스 식물재배 시스템. 흙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도심이나 농업 경험이 없는 귀농인들도 손쉽게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아쿠아포릭스 식물재배 시스템. 흙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도심이나 농업 경험이 없는 귀농인들도 손쉽게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아쿠아포릭스를 이용한 식물공장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 <사진=김형석 기자>
아쿠아포릭스를 이용한 식물공장에서 자라고 있는 채소. <사진=김형석 기자>

신입생 때부터 뭔가 만들기 좋아했던 이들은 여러번 시행착오 끝에 식물재배기와 배양액 순환제어기, 또 이러한 하드웨어를 통제하는 펌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또 기존에 개발된 시스템이 실제 농업에 활용될 수 있도록 생산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데 성공했다. 

아쿠아포닉스는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인데, 무엇보다 물고기의 배설물을 이용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물고기가 숨을 쉬거나 배설물을 배출할 때 암모니아가 나온다. 여기에 특정한 첨가물을 배합하면 질산화가 되서 비료가 된다. 이 물을 재배하는 식물에 공급한다. 또 이 물은 다시 물고기를 키우는데 사용된다. 식물은 물고기에서 나오는 영양분 가득한 물을 먹고 자라고, 물고기들은 식물이 정화한 물에서 자라게 되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선순환 방식을 통해 100% 유기농 식물을 연중 재배할 수 있다.

이렇게 재배된 식물은 영양분도 높고 생산성도 뛰어나다. 상추를 기준으로 3.3㎡(1평) 당 9kg이던 평균 생산량을 90kg까지 무려 10배 가량 높일 수 있다. 가격 경쟁력도 뛰어나다. 기존 식물(엽체류) 재배기는 3.3㎡ 당 700만원~2000만원의 비용이 소요되지만, 만나의 아쿠아포닉스는 150만원~300만원에 불과하다.

전태병 대표는 "유기농 식물 재배 농가들이 아무리 친환경적인 방식을 채택해도 흙이나 바람 속에 있는 잔류 농약과 화학물질을 100% 걸러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며 "아쿠아포닉스는 실내에서, 흙이 없는 환경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만큼 100% 유기농 식물 재배가 가능하다. 여기에 영양분과 생산성에서도 훨씬 큰 장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나'의 사무실 전경. 대표가 2명이나 되지만 대표방도 없고, 직원들 전용 책상도 따로 없다. <사진=김형석 기자>
'만나'의 사무실 전경. 대표가 2명이나 되지만 대표방도 없고, 직원들 전용 책상도 따로 없다. <사진=김형석 기자>

파울로 캠퍼가 각종 실험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파울로 캠퍼는 국내 대기업 합격 통보서를 받은 직후 '만나'에 합류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파울로 캠퍼가 각종 실험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 파울로 캠퍼는 국내 대기업 합격 통보서를 받은 직후 '만나'에 합류했다. <사진=김형석 기자>

◆"단순히 돈만 버는게 목표였다면 다른 일 했을 것"

'만나'는 지금까지 아쿠아포닉스를 통한 매출은 공식적으로 없다. 하지만 내년도 매출액을 3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출액 0(제로)에서 30억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허풍'이 아니다.

'만나'를 직접 방문해 아쿠아포릭스 식물재배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는 방문객들. <사진=김형석 기자>
'만나'를 직접 방문해 아쿠아포릭스 식물재배시스템을 살펴보고 있는 방문객들. <사진=김형석 기자>
"지금 충북 진천의 땅을 매입해 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땅을 매입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총 8억원 가량이 투입됐구요. 하지만 여기서 나온 야채는 최소 30억원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재배한 야채는 인터넷 직거래를 통해 판매되구요. 단순한 시험재배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아쿠아포닉스를 이용해 어떻게 이윤을 만들어내는지 성공사례를 보여주자는 겁니다."

박 대표의 설명처럼 단순한 시험재배가 아니다. 시험재배는 이미 회사 한 켠에 마련된 실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기자가 직접 둘러본 뒤 느낀 첫 소감은 '나도 농사 지을 수 있겠다'였다. 실제 흙이나 비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모든 재배·양육·수확 과정은 실내에서 이루어진다. 도시에서의 재배, 귀농인을 위한 재배 시스템이라는 설명이 이해가 됐다.

매스컴에서 주목을 받지는 않았지만 최근 입소문을 타고 회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취재를 간 당일에도 '만나'는 외부인들로 북적였다. 농어촌연구원 소속 기술자들과 공주대 교수, 또 수도권의 공동체 마을 사업 관계자들이 현장을 둘러보며 아쿠아포릭스와 식물공장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전 대표는 "최근 들어 직접 보고 싶다는 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공식적인 매출은 없지만 이미 해외시장 진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조만간 여덟번째 직원이 합류하게 되는데 중국에서 오랫동안 금융권에서 일한 '중국통'을 영입했다. 전 세계 농업시장에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있지만 당장은 중국 시장 진출이 목표다. '중국을 잡아야 세계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확신 때문이다.

박 대표와 전 대표를 비롯해 '만나' 구성원들의 방향은 뚜렷하다. 박 대표는 그 목표와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과학기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지만 전 세계 절반의 인구는 여전히 먹을 것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 목적이었다면 아마 다른 아이템으로 창업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뭔가 사회나 인류에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뜻이 있었고, 또 그런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면 벌수록 좋은 일을 하게 되는 셈이죠."

'만나'의 식물공장은 인공으로 빛과 수분, 영양, 공기 등을 공급하고 제어할 수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만나'의 식물공장은 인공으로 빛과 수분, 영양, 공기 등을 공급하고 제어할 수 있다. <사진=김형석 기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만나'를 직접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취재 당일 만나 방문객들이 아쿠아포릭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형석 기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만나'를 직접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취재 당일 만나 방문객들이 아쿠아포릭스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모습. <사진=김형석 기자>
 

정면에 보이는 파란 수조에는 물고기가 자라고 있다. 이 물고기들이 사는 물로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물고기들은 식물이 정화한 물에서 자란다. <사진=김형석 기자>
정면에 보이는 파란 수조에는 물고기가 자라고 있다. 이 물고기들이 사는 물로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물고기들은 식물이 정화한 물에서 자란다. <사진=김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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