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한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얼마 전 나주에서 발굴 된 '미라'가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으로 옮겨와 첨단 건강진단을 받았다. 3차원영상을 만들 수 있는 MD-CT로 전신을 촬영하고 X-ray 검사도 마쳤다.

이 '나주 귀부인 미라(가칭)'는 당시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며 화제를 낳았고 그 덕분에 미라를 연구하는 학문인 '고병리학'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된 미라의 수가 많지 않다. 조상의 시신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대부분 화장 되거나 재 매장 됐기 때문인데, 고 병리학이 발전할 여지 역시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미라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학계와 언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미라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세계최초의 임신부 미라인 '파평윤씨 모자미라', 대전 계룡산 인근에서 발견된 '학봉장군' 미라 등이 여러차례 신문, 방송에 오르내려 일반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됐다.

또한 '안동미라'와 '단웅'등의 미라가 학계에 보고되면서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이 밖에 후손이 없이 도로공사나 택지정리 중 우연히 발굴된 무명의 미라들로 '봉미라', '흑미라'등도 소개된 바 있다.

미라는 오랜 기간 보존된 사람이나 동물의 시신을 칭한다. 많은 의학, 역사학 전문가들이 미라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 특히 요즘엔 미라연구에 대한 언론보도가 확산되면서 미라가 발견되면 문중에서 연구자료로 기증해주는 경우가 많아 연구도 더욱 활발해졌다.

이런 미라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 기관으로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단국대 박물관과 안동박물관 등이 있는데 이 중 고려대 의과대학은 완전한 형태의 미라 4구와 반미라형태 2구를 보관하고 있어 가장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미라를 연구하는 것일까? 그것은 수 백년, 수 천년 전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미라는 수 백, 수 천년이 지나도 골격계와 연부조직이 잘 보존돼 있기 때문에 부검을 하거나 첨단 방사선 검사나 의료장비를 이용한다면 사망원인까지도 알아낼 수도 있다.

파평윤씨 미라는 부검을 통해 분만 중 자궁파열로 인한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학봉장군 미라는 기관지내시경검사와 흉강경검사를 통해 폐질환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밝혀낼 수 있었다.

단웅 미라는 B형 바이러스성 간염을 앓았다는 것을 확인해 세계 의학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미라의 질병이나 사망원인을 확인한다는 것은 이처럼 수백 년 전 조상의 의료기록을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의료정보를 통해 선조들의 생활양식 등을 유추할 수 있어서 역사학적인 의미 역시 깊다.

학봉장군 미라의 경우 많은 수의 간흡충(간디스토마)의 충란이 발견돼 조선시대 초기에는 민물고기를 날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라 중 하나인 5300년 전 청동기 시절 시신이 아직까지 보관된 것으로 유명한 '아이스맨 외치' 미라는 다양한 검사를 통해 알프스산지에서 여러 명과 싸우다 화살을 맞고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화살을 이용한 전투방식이 자주 사용됐다는 역사적 증거가 되는 셈이다.
 

▲MD-CT 검사를 받고 있는 나주 귀부인(가칭) 미라. ⓒ2009 HelloDD.com

그렇다면 미라의 사망시기나 원인 등은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 한마디로 필요한 과학기술이 모두 동원되는 과학기술의 종합예술이라고 부를만하다. 학봉장군 미라의 내장에서는 애기부들 꽃가루가 다수 발견됐다.

전자현미경 검사를 담당했던 연구진은 검사 초기에는 익사 가능성을 제시했다. 애기부들은 소시지처럼 생긴 수생식물로서 6월부터 7월까지 연못이나 강가의 얕은 물속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학봉장군'의 직장과 대장에서 다수의 간흡충란이 발견돼 강변에서 천렵을 즐기다가 물에 빠져 사망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제시됐다.

하지만 여름에 익사한 시신을 부검해보면 몇 시간만 방치해도 심한 부패가 진행돼 미라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실제 사망원인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꽃가루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꽃가루 전문가인 김기중 고려대 생명과학대 교수가 이 미스터리를 해결했다.

우리 선조들이 애기부들 꽃가루를 '포황'이라 불렀고 지혈제로 사용했다는 기록을 찾아낸 것이다. 결국 학봉장군 미라는 폐 방사선사진과 기관지내시경검사, 흉강경검사, 폐조직검사 등 최첨단 의료기술을 동원해 피를 토하는 폐질환(기관지확장증 추정)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 과정에 지혈치료를 위해 애기부들 꽃가루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 미라들은 문중에서 관리해 오던 무덤을 이장하던 중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족보나 비문 등을 통해 연대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이번에 발견된 나주 미라도 완산(전주)이씨로서 조선 중종 갑진년(1544)에 출생해 정해년(1587)에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사망시기를 추정하고 있다.
 

▲아이를 낳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평 윤씨 미라. ⓒ2009 HelloDD.com

미라가 만들어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많은 사람들이 미라하면 이집트미라를 떠올리지만 세상은 넓고 미라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남아메리카는 미라의 보고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연환경 때문이다.

세계에서 제일 건조한 아타카마사막이 있기 때문에 건조한 미라가 많이 발생하며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안데스산맥에서는 잉카시대에 산에 제물로 바쳐진 미라들이 발견된다.

'친초로미라'라는, 박제와 인형의 중간형태를 지닌 미라들도 많다. 이 밖에 북유럽이나 스코틀랜드 및 북아일랜드에서는 소위 '보그피풀'이라는 미라가 많이 별견되는데 이는 늪이나 습지가 많은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늪의 화학성분으로 인해 미라가 부패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발견되는 미라들은 독특한 장묘문화 덕분에 만들어진다. 한국이나 중국의 경우 '회곽묘' 라 불리는 일종의 석관을 사용하는 문화가 있는데 산소와 차단된 환경이 제공되다 보니 시신이 오래 보존되는 것이다.

그 밖에는 매장할 때의 풍습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라가 발견된 현장을 찾아가 보면 관안에서 숯가루나 송진 및 왕골 등이 관찰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긴 장례기간 동안 발생하는 초기 부패를 억제하고 역겨운 냄새를 제거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다.

또 시신의 부패를 막아주는 다른 중요한 요소로서 관으로 사용한 소나무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미라에서는 향긋한 송진 냄새가 배어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소나무를 두껍게 켜서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된 이중관의 형식으로 구성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의문점을 풀기 위해 이번 나주미라에서는 나무 재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미라는 수백년 또는 수천년 전에 정보를 전해주는 타임캡슐과 같다. 미라 한 구 한 구가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할 수 없다. 역사학, 고고학, 복식 뿐 아니라 생물학, 지학, 한의학 등 다양한 지식이 총 동원돼야 한다.

하지만 새롭게 나타나는 의문점을 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조상들은 미라를 통해 그들이 살았던 삶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고병리학자들은 '과학수사대 CSI'처럼 상상력이라는 안경을 쓰고 조심스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대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조상들과 만날 준비가 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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