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자원연구원 소식지 97호, 글 : 남욱현 선임연구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산크리트 언어로 '히마'는 만년설, '마라야'는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즉, 히말라야는 만년설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다. 히말라야는 인도 대륙이 남쪽에서 서서히 올라와 티베트와 충돌하면서 생겼다. 인도 대륙과 티베트가 충돌한 충돌선은 지금은 하나의 작은 강이 되었는데, 이 강을 중국말로는 '아루짱부강', 인도말로는 '브라마프트라강'이라고 한다. 이 강은 티베트 고원을 가로질러 히말라야 동쪽을 돌아서 벵골만으로 빠져나간다.

남북으로는 약 200 km, 동서로는 약 2800 km에 걸쳐 펼쳐지는 히말라야 산맥에는 8000 m가 넘는 산봉우리가 14개가 있는데, 그 중에 8개가 네팔에 위치한다. ① 에베레스트 (8848 m), ② 칸첸쥰가 (8598 m), ③ 로세 (8516 m), ④ 마카루 (8481 m), ⑤ 다우라기리 (8167 m), ⑥ 마나슬루 (8156 m), ⑦ 쵸오유 (8153 m), ⑧ 안나푸르나 (8091 m) 등이 그것이다.

히말라야의 나라, 신들의 나라, 네팔은 인도의 북쪽, 히말라야 바로 남쪽에 위치하며, 히말라야의 북쪽에는 티베트 고원이 있다.

▲남욱현 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
ⓒ2007 HelloDD.com
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네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JICA (일본 국제협력기구)의 NHG (Nepal Himalayas Geo-traverse) 라는 네팔 일대의 지질조사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네팔은 강한 몬순 기후를 보이기 때문에 여름에는 계속 비가 오고, 겨울에는 가뭄이 이어진다. 따라서 네팔을 방문하려면 겨울까지 기다려야 한다.

네팔에 가려면 비행기로 갈 수도 있고, 인도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또, 중국 티베트 자치구에서 히말라야를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 홍콩, 싱가폴, 방콕 중 한 곳을 경유해서 간다.

나는 타이항공으로 먼저 방콕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Kathmandu)로 들어가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오른쪽 창가에 앉으면, 맑게 갠 날에는 에베레스트 (네팔 이름 Sagarmatha, 중국 이름 Chomohungma)를 볼 수 있다.

구름 위로 까만 봉우리가 올라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에베레스트이다. 너무 높고 바람이 세서 눈조차 쌓이지 않아, 검은색의 변성암 (편암, 천매암)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카트만두 국제공항은 지형적으로 대단히 위험하다. 구름이 낀 날에는 비행기가 히말라야와 충돌하기 일쑤라고 한다. 어쨌든 나는 무사히 착륙했다.

우리나라의 1940년대 생활상과 비슷하다는 네팔의 그 가난한 사정은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공항에서 나와 거리로 나선 순간 문화적인 충격은 어쩔 수 없었다. 길거리는 무척이나 낡고 지저분했고, 공기는 무척 탁했으며, 여기저기 소가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곧바로 숙소로 가서 짐을 풀었다. 내가 머문 곳은 꽤 고급 호텔이었는데도 전기와 수돗물 사정은 심각했다. 수압이 약해서 수돗물은 잘 나오지 않고, 전기도 격일제로 들어온단다.

저녁 8시가 지나니 거리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약간 더웠던 낮 기온이 내려가면서 제법 추워졌다. 멍한 상태에서 보낸 첫날밤이었다. 도착한 다음날에는 네팔 이민국에서 비자 연기신청을 했다. 이민국 직원이 비자 발급에 6시간이 넘게 걸린다면서 슬쩍 3달러를 요구했고, 이에 응하자 30분 만에 비자가 나왔다. 덕분에 시간이 많이 남아서 느긋하게 걸어 카트만두 시내를 구경했다. 시내는 무척 혼잡했다. 자동차는 별로 없었지만, 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 '릭싸',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삼륜차로 만든 '뚝뚝'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주로 외국인 관광객용이고, 네팔사람들은 합승버스를 타고 다닌다. 버스 요금은 60원 정도. 인력거는 20원 정도에 1 km 이상 달릴 수 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나이의 소년이 무거운 인력거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냥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당신 같은 사람이 인력거를 타야 저 사람들도 먹고 산다"라는 말을 듣고서는 열심히 타게 되었다.

첫날의 인상과는 달리,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척 순박하고 친절했다. 토산품을 사라고 옷깃을 잡아끄는 사람들과도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여유 있는 분위기였다. 토산품에는 정말 여러 가지가 있었다. 티베트 스타일의 옷이나 모자도 많았고, 네팔 전통의 인형, 탈, 악기, 칼 등도 있고, 네팔의 지질학적인 특성상 보석도 많았다. 보이는 것이 모두 신기하고 새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 토산품을 살 때가 재미있다.

길을 걷고 있으면 행상들이 물건을 보이며 열심히 설명을 한다.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정말 끈질기게 끝까지 따라와서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 금방 반 이상이 내려간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려고 하면, 반의 반 이상이 내려간다. 그 때쯤이면 약간 비싸게 주고 샀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꼭 사고 싶은 것이라도 흥정을 위해서는 관심 없는 척 연기도 해야 한다. 물건을 사주면 금세 친구가 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바가지를 씌웠다고 친절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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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한 끼 식사는 약 30원 정도다. 길쭉하고 푸석푸석한 쌀밥에 멀겋고 노란색의 카레, 그리고 야채복음 - 네팔말로 '달·바트·달카리'라고 하는 음식인데, 이것이 네팔 사람들의 주식이다. 카레는 우리나라의 카레와는 달리 특별한 맛은 없다. 다만 진한 카레향이 날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카레향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따로 주문하면 닭고기나 양고기를 주기도 하는데, 음식이 생각보다 꽤나 괜찮았다. 외국인은 특별대우를 해서 그런지 값도 몇 곱절인 150원을 받았다.

그런데 한번은 식당 종업원이 걸레 하나로 식탁도 닦고, 의자도 닦고, 접시와 숟가락까지 닦는 것을 보고 너무 지저분해서 항의를 했다. 접시가 너무 더러우니 깨끗하게 닦아 달라. 그랬더니 그 걸레로 다시 한 번 정성들여 닦아주는 것이었다.

외국인 전용의 고급식당에 가면 상황은 다르다. 3000원 정도면 정말 두꺼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으며, 통닭구이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그것도 최고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말이다. 지질조사를 도와줄 사람들을 고용했다. 원래는 히말라야 등반에 따라가는 직업 등산인들로서, 셸파 (Sherpa)라고 알려진 사람들이다. 셸파는 원래 몽고계 고산민족의 이름인데, 짐꾼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1953년 존 헌트 (John Hunt)가 이끄는 영국 탐험대의 에드먼드 힐러리 (Edmond Hillary)는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반한 사람인데, 이 때 함께 오른 네팔의 영웅 텐징 노르게이 (Tenzing Norgay)도 셸파였다.

이 셸파들에게는 등급이 있는데, (1) 안내자, (2) 주방장, (3) 주방보조, 그리고 (4) 짐꾼이다. 안내자는 산에서 길을 선택하고 캠프장소를 정한다. 날씨 변화도 감지하고, 일행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다. 주방장은 요리를, 주방보조는 여행의 살림을 맡는다. 짐꾼은 그야말로 짐을 지어 나른다. 우리는 짐꾼을 고용했다. 우리 일행이 3명, 고용된 사람이 3명, 한사람에 한명씩 보조가 붙은 셈이다. 이들의 임금은 하루 20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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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에서의 준비를 마치고, 짐꾼들과 함께 텐트와 식량을 챙겨서 지질조사 지역으로 향했다. 카트만두에서 남서쪽으로 약 400 km 정도 떨어진 부투왈 (Butwal)이라는 곳으로 가는데, 무려 14시간이 걸렸다. 길도 버스도 엉망이었다. 자리가 너무 좁고 흔들려서 앉아있기조차 힘들었다. 어쨌든 부투왈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북쪽으로 5 km 더 가서 도반 (Dobhan)이라는 조그만 마을 옆 강둑에 텐트를 쳤다. 드디어 지질조사를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아침 7시가 되면 짐꾼이 차를 끓여와서 "Good morning, sir."이라며 텐트로 들어온다. 차는 홍차에 우유를 탄 것이었다.

처음에는 맛이 이상했는데 익숙해지니까 정말 좋았다. 조금 있으면 '달·바트·달카리' 아침식사가 나온다. 식사를 하고나면, 큼직한 바위 뒤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다. 네팔사람들은 휴지를 쓰지 않고 왼손으로 강물을 퍼서 씻는다. 휴지를 오히려 더 불결하게 여기기 때문에 휴지는 땅에 묻어버린다. 아침 8시쯤 되어 카메라와 지갑을 들고 나서면 짐꾼이 가방, 망치, 물통, 도시락 등을 들고 따라온다. 짐꾼 한사람만 남아서 텐트를 지키며 빨래를 한다든지, 땔감을 해온다든지 한다. 점심 도시락은 삶은 계란과 '짜빠티'라는 인도식 빵이다. 이 빵을 카레에 찍어먹기도 하고, 버터를 발라서 먹기도 했다.

지질조사는 강가를 따라 산을 올라가면서 강 옆에 노출된 암석 지층을 조사하는 일이다. 지층의 두께를 재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스케치도 한다. 무엇보다 망치로 돌을 부수어 관찰을 한다. 계속 강가를 따라가다 보면 위험한 곳도 나온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 건너야 할 때도 있고, 아슬아슬하게 바위를 기어오르기도 한다. 우리를 따라온 짐꾼들은 그런 험한 길을 다니는데 능숙했다. 들짐승이 다니는 길도 곧잘 찾아내어 안내를 해주며 바위를 먼저 타고 올라가서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지질조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짐꾼들은 우리 옆에서 심부름을 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한가할 때는 강가에서 가재, 게, 심지어는 물고기를 잡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맨손으로 말이다. 그런 날의 저녁식사는 물고기 튀김이 된다. 가끔 닭고기나 돼지고기 파티를 한다. 약 3000원이면 동네에서 가장 큰 닭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다. 힌두교의 나라에서 당연히 쇠고기는 먹을 수 없다. 보통 가정에서 흔히 만들어 마시는 술에는 '록시'와 '창' 두 가지가 있다.

짐꾼들에게 돈을 주고 술을 구해오라고 하면, 동네에 가서 금방 한 병 가득히 술을 받아오곤 했다. 록시는 소주와 비슷한데, 무척 독하고 향이 진했다. 창이라는 술은 록시보다 더 서민적이며 막걸리와 비슷했다. 맥주 작은 것 한 병에 2000원 정도로 비싼 편인데, 모두 수입맥주라서 그런 것 같다. 콜라 한 병에는 1500원이나 했다. 네팔사람들에게는 맥주나 콜라 모두 무척이나 고급음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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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아주 좋은 날에는 강가에서 사람들이 목욕과 빨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편에는 남자들이 모여서 목욕을 하고, 빤히 마주보이는 곳에서는 여자들이 모인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고, 옷을 다 벗는 경우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조금 춥더라도 어둑어둑해지면 강물에 나가 세수도 하고, 간단히 목욕도 한다.

저녁때에는 동네사람들, 대학생, 학교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하러 텐트로 온다. 한국은 어떠냐, 어떻게 하면 네팔도 잘 살 수 있겠느냐 등등을 묻기도 한다. 저녁식사를 하고나면 아주 멋있게 별들이 나오고, 슬슬 추워지면서, 촛불이 꺼지면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슬리핑백에 들어가 잔다. 보통 9시쯤이면 자게 된다. 어쩌다 한밤중에 일어나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들로 가득 찬 것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별똥별도 여기저기서 수시로 떨어지며, 멀리 들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도 무섭다기 보다는 대자연의 위대함의 일부로 와 닿는다. 새벽녘에 아침안개에 쌓여 자태를 드러내는 엄청나게 높은 산들과 함께, 인간의 존재를 초라하게 만든다.

이렇게 모두 4개월을 텐트에서 지냈다. 텐트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설날, 내 생일, 모두 만족할 만했다. 다행히 다친 곳도 없었고, 아픈 적도 없었으며, 위험한 야생동물과도 마주치지 않았다. 좋은 경험이었고, 지질조사 성과도 좋았다. 네팔 사람들은 정말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산다. 문명의 이기에 물들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이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짝 엿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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