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 겸직 등...인사처리, 예산 집행 '지연'

로버트 러플린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이 너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KAIST 수장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 집무를 하고, 또 각종 강연과 행사 등 바쁜 일정때문에 주위에서는 학교 경영에 차질을 우려한다.

17일 러플린 총장은 자신의 업무지를 KAIST에서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로 옮겼다.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으로서의 계약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계약에 따르면 아태이론물리센터 소장직은 3년 임기로 1년에 1달 이상 석학교수 신분으로 포항공대에 상근하기로 돼 있다.

문제는 학교 사립화와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KAIST 학생들과 교수 등 내부 조직 구성원들이 듬직한 리더를 갈망하며 정신적 공황을 느끼고 있는 것. KAIST 한 교수는 "학교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중요한 시점에서 총사령관이 외부 일정을 중시하고 내부 상황을 간과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며 "과학계의 히딩크 답게 현장에서 있으면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러플린 총장의 바쁜 일정이 계속되면서 학교 예산 집행과 인사권 처리문제 등 산적해 있는 학교 경영 문제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있어 학교 내부에서는 행정 공백에 대한 우려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예산 집행. 이미 학교 전체 예산 심의를 위해 지난해 말 거쳤어야 할 학교 이사회가 소집되지 않아 예산 집행이 헛바퀴를 돌고 있다. 임시방편적으로 내부 규정에 따라 전년도 기준 50% 범위 내에서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최소한 소극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지난해 12월 28일 이사회가 개최되기로 예정됐었으나, 러플린 총장이 개인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일정이 취소됐다. 이사회는 오는 24일 열릴 예정이다. 주요 보직에 대한 인사권 처리 문제도 지연되고 있다.

지난해 말 학교 주요 보직자가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관련 부서 후임자를 선임하는 문제가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러플린 총장은 한 달이 넘도록 관련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관련 부서 직원들은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데 수동적인 움직임만 보이고 있으며 올해 업무의 장기적 차질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KAIST 뿐만 아니라 포항공대 아태이론물리센터에서도 러플린 총장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들에 대해 종종 행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포항에서 담당자가 결제를 받으로 KAIST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KAIST 한 대학원생은 "요즘 학교가 연구중심 대학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논의로 어수선하다"며 "이럴 때일수록 학교의 리더가 중심을 잡고 내부 구성원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며 미래 비전을 같이 정립해가야 된다"고 말했다.

또 KAIST 한 교수는 "러플린 총장이 내부 구성원들과 논의한 사안들을 간과하고, 외부에서 보기에 적대적이고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진정으로 한국 이공계 대학의 미래를 고민한다면 내부 구성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한편 KAIST 학생자치단체(대학원총학생회, 학부총학생회, 카이스트신문사, 카이스트헤럴드)는 공동으로 17일 밤 교내에서 '학교 비전 학생 토론회'를 개최해, 향후 학교 발전방향에 대해 논의를 펼치기도 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