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기술 가운데 80% 정도 사장...매칭펀드에 대한 부담

국내 IT업계 상당수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으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합니다. ETRI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IT분야의 최고 국책연구기관인데 이런 현상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요. 참으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TRI와 공동연구를 하면 많은 이점이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IT업계가 ETRI와 공동연구를 기피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연구개발을 하더라도 사업화로 연결이 안되기 때문이랍니다. 모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ETRI 등이 개발한 기술 가운데 80%정도가 사장된다고 합니다. 공동연구를 꺼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ETRI와 공동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정작 필요한 기술이라면 독자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는 업계의 자신감도 공동연구 기피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A업체 관계자는 "국내 중견기업의 경우 필수기술이라면 ETRI를 끼지 않고도 단독으로 개발할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굳이 ETRI와 공동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공동연구를 하면 괜히 피곤하다고 전합니다. 그는 "과거에는 ETRI 도움없이 기술개발이 안된다는 생각이었지만 현재는 ETRI를 앞선 기업도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ETRI와 공동개발을 꺼리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업체의 경우 연구비의 10%는 현금을 내고 나머지 40%는 현물을 출자하는 등 매칭펀드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이에 대해 업계가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설령 공동연구를 통해 성과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특허권 등 지적재산권을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향후 발생하는 수익금을 나눠야 하는 불편함도 공동연구 개발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ETRI의 경우 공동연구 개발부서가 국책연구기관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른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등 중복과제로 인해 업계와 개발 템포를 맞추지 못하는 것도 큰 이유중의 하나랍니다. 이럴 경우 당초 개발계획보다 늦어지는 것이 다반사라는 것이지요.

업계는 당초 개발계획보다 일찍 마무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ETRI와 공동개발을 할 경우에는 반대로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 향후 사업추진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B업체 관계자는 "예년에는 정보통신부와 ETRI의 눈치를 보느라 하는수 없이 공동개발을 한 것도 사실이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정부의 눈치를 보는 풍토가 사라져 공동연구는 많이 줄어 들고 있는 추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ETRI의 예산중 민간수탁사업으로 인한 수익금은 2000년 694억원에서 올해는 640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정부수탁사업은 2000년 1천849억원이었지만 2001년에는 2천218억원으로 대폭 늘어났지요. 무려 369억원이 늘었습니다.

하여튼 국내 IT업계가 ETRI와 공동연구를 꺼린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업계가 외면한다는 것은 ETRI 존재이유에도 치명적일 수 있지요. ETRI가 국내 최고의 IT국책연구기관에 걸맞게 업계의 구애(?)를 받을 수 있는 날을 기원해 봅니다.

<아이뉴스24 최병관기자 ventu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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