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미과학문화상 받은 이덕환 교수, '과기부 무용론' 작심발언
"극심한 관료화로 과기계, 과기부 없는 시대 준비해야 할지도"
"바이러스연, 필요하다면 전부 오픈해 과기계 합의 끌어내야"

"과학기술부의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은 전쟁 터진 와중에 부대 만드는 것과 같다. 당장 싸움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예산, 인력 결국 기존 출연연에서 데리고 올 게 뻔한 황당무계한 발상이다. 약물재창출, 연구소 설립 등은 잘못하면 과학기술계 전체가 비난받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지난 26일 올해 유미과학문화상을 받은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대덕넷과의 현장 인터뷰에서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과 관련,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과학기술계에 아주 불쾌한 사안'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과학기술계에 합의 없는 신규 연구소 설립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본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은 이상한 구석이 많다. 그는 "이런 주장을 반공개적으로 하는 것부터 비리"라고 지적했다.

2008년 과기부와 교과부가 통합 출범할 당시 이 교수는 과기부의 해체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대표적 과학자다. 하지만 그는 최근 과기부의 극심한 관료화 행보에 적잖은 아쉬움을 느낀다. 이 교수는 "그동안 과학기술계는 과기부로 인해 많은 에너지 소비를 해왔다. 과기계도 앞으로 과기부 없는 시대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기행정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에 '과기계에 아주 불쾌한 사안'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과학기술계 합의 없는 신규 연구소 설립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과기계가 연구소 설립이 아니라 지역감염을 대비해 집단감염 스크리닝 기술에 힘을 쏟을 때라고 말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설립에 '과기계에 아주 불쾌한 사안'이라며 일침을 가했다. 과학기술계 합의 없는 신규 연구소 설립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과기계가 연구소 설립이 아니라 지역감염을 대비해 집단감염 스크리닝 기술에 힘을 쏟을 때라고 말했다. <사진=김지영 기자>
Q. 코로나 이후 보건부, 과기부가 각자 바이러스 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A. 우선 바이러스의 기초연구라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바이러스 연구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노벨상 받으려는 것도 아닌데 왜 기초연구인가. 우리가 바이러스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지금처럼 말썽을 일으킬 때 대응하려는 것이다. 기초연구보다 현재의 RNA 진단키트에서 항원과 항체 키트 등을 만드는게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새로 연구소를 만들고자 한다면 전부 공개하며 이야기하고, 과기계 합의도 끌어내고, 법도 개정해서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반공개적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비리 아닌가. 합리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계에서 해선 안 되는 일이다.

Q. 지금까지 新 연구소를 세우는데 정부가 과학계와 논의를 해왔다는 건가.

A. 잡음은 있었지만, 합의는 있었다. 지금의 바이러스연구소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결국, 복지부 연구소나 과기부 연구소 누가 가겠나. 필요한 사람은 같다. 예산도 인력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 개정 등 어려우니 연구소 세우기 위한 꼼수처럼 보인다. 전쟁은 터졌는데 앉아서 부대 만드는 꼴이다. 싸움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잘못하면 과기부 무용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Q. 과기부가 3대 치료제 후보물질로 지정해 지원 중인 파스퇴르연 약물재창출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A. 약물재창출하겠다는 약물들을 살펴봤다. 다른 기업에 명백히 소유권이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 먼저 연구개발한 약물을 한 두 달 늦게 한다니. 상식적으로 우리가 해선 안 된다. 하려거든 대안을 함께 가져가야지 제도적 걸림돌이 있는걸 알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닥쳐서 해결하려는 정부 정책은 안된다고 본다.
 
과기계가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뒤죽박죽 얽힌 상황에서 과기부는 신중해야 한다. 약물재창출, 연구소 설립 등은 잘못하면 과기계 전체가 비난받을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Q. 그렇다면 정부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나.

A. 집단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집단 스크리닝 기술'의 안정적 생산이다. 이제 사회적 확산이 시작됐다. 감염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쫓는 게 의미가 없다. 인구집단을 스크리닝해 어느 지역과 어느 집단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지 봐야 한다. 하지만 집단면역 확인은 지금과 같이 한 사람씩 감염 여부를 따지는 RNA 테스트로는 어렵다. 임신 진단키트처럼 피 한 방울로 코로나19 면역력을 가진 사람을 빠르게 판별할 수 있는 항원, 항체 스크리닝 기술이 필요하다. 

이미 꽤 많은 벤처와 출연연이 관련기술을 연구하는 것으로 안다. 여기서 관건은 엄청난 물량을 쏟아내면서도 정확성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가이다. 지난 4월 미국의 민간 기업이 엉터리 항체 키트를 출시해 혼란을 겪은 사례가 벌어져선 안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오지 않도록 과기부가 힘써야 하며, 질본은 이 키트를 활용해 인구집단, 지역별, 나이별로 감염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차단 대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꺼번에 전 국민 대상 스크리닝이 어려우니 위험지역에 집중적으로 차단막을 만들어 조금씩 종식 지역을 넓히는 전략도 필요하다.

Q.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후 수개월이 지났다. 상황을 보면서 가장 아쉬움이 드는 부분은 무엇인가.

A.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와 일반인이 하는 이야기에 차이점이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 국내 확산 초반, 전문가들이 바이러스가 계절에 약해 여름에 잦아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독감의 특성이지 바이러스 자체 특성은 아니다. 풍토병은 주로 열대지방에서 나온다. 

전염병이 인수공통병이고 인간이 자연을 파괴해서 바이러스가 복수한다는 표현도 많은데 전문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전염병 중 인수공통이 아닌 전염병은 거의 없다. 에이즈도 원숭이, 감기도 소와 말 등 가축에서 온 것이다. 도시화 환경파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도시화는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는 것이다. 도시화로 인간은 자연과 거리를 두며 살고 있고, 박쥐를 만날 일도 적어졌다. 오히려 도시화로 자연이 보존됐고, 바이러스들이 신나게 영역을 넓히다 사람과 경계선에 만났다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는 인류보다 먼저 지구에 도착했고, 앞으로도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바이러스 찾아오는 주기가 짧아지고 독해진다는 것도 오류가 있다. 1900년대에는 스페인 독감,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콜레라, 지카 바이러스, 뇌염, 소아마비, 홍역 등 더 많은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피해를 보았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전국적인 전염병 기록은 80개가 넘는다.  

21세기 들어 발생한 전염병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다. 이중 팬데믹은 코로나19뿐 모두 흐지부지 끝났다. 2009년 신종플루의 경우 전 세계 7억 명이 감염되고 70만 명이 죽었다. 백신과 치료제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한 달 사망자는 200여 명이었다. 코로나19 사망자는 5개월 동안 200여 명이다.

Q. 과거보다 잦지도 강력한 바이러스도 아니라고 했는데, 코로나19는 범유행 선언 등 왜 이리 심각한 것인가. 

A. '정치지도자들의 국제적 리더십 실종' 때문이다. 국제적 협력과 공생을 추구하던 세계환경이 각자도생의 길로 급회전했다. 이건 전쟁 직전에나 있던 상황이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등장해 극대화된 것이다. 코로나19가 성가시긴 하지만 과거에 있던 팬데믹보다 심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제질서의 형편없는 재편이 문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Q. K방역, K진단이 세계 주목을 받고 있다. 성공 핵심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A. 진단키트와 교통카드, 신용카드다. 우리는 진단키트를 2주 만에 만들었다. 미국도 비슷한 시기인 3월 초에 만들었는데 잘못 만들어 전량 폐기했다. 사실, 이 기술은 굉장히 교과서적 기술이다. 누구든 아는 원리로 만든다는 것인데 노벨상 받은 미국, 유럽, 일본은 못 만들고 우리는 만들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이 선진국이 아니라는게 드러났고, 우리의 기술력이 일부 월등하게 좋다는 것도 확인됐다.

물론 진단키트, 교통카드보다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은 제도, 즉 전 국민 의료보험이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보도도 많이 나왔지만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수당 받기 전부터 병원들이 움직이지 않았나. 공중보건이 무너진 선진국에서는 정부가 병원에 뭘 시켜도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는 최악의 감염 대국에서 K방역 선진국이 된 이유를 '민주주의'와 '투명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이라 가능했다'고 말한다. 개인 인권을 보호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확진자 동선 등을 개인정보 공개가 상식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 말하는 우리는 동선을 공개했다. 죄짓지 않은 확진자들에게 안심 밴드 착용을 논의했다. 참고로 중국은 더 심하게(개인정보보호를 하지 않는 방향의 정책 등을) 했다.  

Q. 코로나19 종식,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바이러스가 논리적 근거를 가지고 사라진 적은 없다. 누가 잘해서 사라진게 아니라 느닷없이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무책임하게 들릴지 몰라도 코로나19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본다. 

우리는 많은 전염병을 겪었지만, 생활패턴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비대면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제적 리더십 실종으로 경제도 안보도 엉망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하는 것은 세계화 물결을 무너뜨리고 극단적 이기주의로 각자도생의 길로 가는 국제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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