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원 원자력연 박사, 원전사고 로봇 '암스트롱' 미션 5가지
삽질부터 바닥·2m 높이 물건까지 자유자재···"사람에게 맞췄다"
"재난에 당장 투입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 목표"

# 불길이 치솟는 화재현장. 건물이 붕괴되면서 사고현장 속 피해 인명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구조원들은 인명 구조에 1분 1초와 사투다. 하지만 불길 속에서의 구조원 생명도 장담할 순 없는 상황. 이때 로봇 한 대가 들어선다. 몇백 kg에 이르는 잔여물을 한 손으로 거뜬히 들어 치우는 이 로봇은 바로 '암스트롱(ARMSTRONG)'. 이름에서부터 파워가 느껴지는 이 로봇은 바닥부터 2m에 이르는 영역까지 자유자재로 몸을 굽혔다 일으킨다. 이동 속도도 6km/h 수준이다. 그렇게 암스트롱은 보란 듯이 불길 속에서 부상자를 구조한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 암스트롱이 재난 상황에 투입될 시 이야기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응용연구부에서 개발한 암스트롱은 본래 원전사고, 전쟁 같은 익스트림 로보틱스가 주분야다. 그중에서도 가장 극한 상황으로 알려진 원전사고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일반 건설현장에도 암스트롱은 적용 가능하다. 원자력사고 대응 로봇 암스트롱. 그의 A부터 Z까지 파헤쳐본다.  

# MISSION 1. 삽질로 자재물을 옮겨라!
 

삽질하고 있는 암스트롱. 힘과 정교함, 섬세함을 구비했다. <영상=박종원 박사 제공>

5~600m 내에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조작기에 의해 움직이는 암스트롱은 사람이 삽질하는 모션을 취하면 그대로 따라한다. 사람만큼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암스트롱은 정확히 자갈을 삽질해 포댓자루에 옮겨 넣는다. 로봇에게 삽질은 여간 보통 일이 아니다. 센 힘은 물론, 순발력과 섬세함, 정교함이 있어야 한다. 암스트롱은 정교한 각도와 힘 조절로 완벽하게 삽질을 해낸다. 

# MISSION 2. '섬세함'이 관건···랜선을 연결해라!
 

랜선을 연결하는 암스트롱. 힘과 정교함을 둘 다 지녔다. <영상=박종원 박사 제공>

보통의 로봇들은 힘이 세거나 정교하거나 둘 중 하나지만 암스트롱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200kg을 양손에 드는 암스트롱은 적당한 힘과 정교함으로 랜선을 연결한다. 랜선 연결은 정확한 입구를 겨냥해야 하는 고도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은 실제 현장에서 끊어진 전선이나 통신망 선을 복구할 때 활용될 수 있다.

# MISSION 3. 바닥부터 2m까지···물건을 운반해라!
 

바닥에 놓인 타이어를 트럭에 싣는 암스트롱. 최대 2m20cm까지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영상=박종원 박사>

바닥에 놓인 타이어를 납작 엎드려 든 뒤 1m 높이의 트럭에 키를 늘려(?) 싣는다. 암스트롱은 바닥부터 2m 이상 높이의 물건까지 손이 닿는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은 재난로봇이 준비돼 있지 않았다. 이에 미국의 군사로봇 중 하나인 '팩봇(Packbot)'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팩봇은 바닥에 붙어 다니는 수준이기에 활용성이 떨어졌다. 박종원 박사는 "암스트롱은 중장비의 큰 힘과 사람의 유연성을 섞은 로봇으로, 실제 사람이 현장에서 의자 등을 밟고 높은 곳의 물건을 내리고 올리는 행동에 맞춰 개발됐을 뿐더러 360도 회전도 회전이 가능하다"며 "사람에게 최적화돼야 실제 사고 현장에서 로봇이 이를 대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MISSION 4. 밸브를 잠가라!
 


밸브를 잠그는 암스트롱. 영상과 같은 산업용 밸브는 일반인이 잠그고 풀기 쉽지 않다. <영상=박종원 박사>

거대밸브도 암스트롱에겐 끄떡없다. 손을 밸브 안으로 넣은 뒤 정확한 힘과 속도로 밸브를 잠근다. 밸브의 위치도 문제는 되지 못한다. 암스트롱의 자유자재 높이 조절로 지면에서부터 2m 높이의 밸브까지 단번에 잠그고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정용 밸브는 어린이들도 쉽게 조작이 가능하지만 영상과 같은 산업현장 밸브는 일반인이 잠그고 풀기엔 쉽지 않다. 암스트롱은 가스 폭발 사고 등에서 해당 밸브를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

# MISSION 5. 최대 200kg에 달하는 드럼통을 옮겨라!

한 개에 약 20kg에 달하는 드럼통을 옮기는 암스트롱. 벽돌과 타이어, 주머니도 옮긴다. <영상=박종원 박사>

핵물질은 주로 드럼통에 옮겨져 운반된다. 보통 꽉 찬 드럼통은 대략 200kg. 일반인이 들기엔 가볍지 않은 무게다. 이는 한 손에 100kg까지 드는 암스트롱에겐 거뜬하다. 정확하게 드럼통을 잡고 알맞은 위치로 옮기는 암스트롱. 로봇이기에 중간에 놓쳐 2차 사고를 도래할 걱정도 없다. 또한 트럭문을 열고 벽돌과 주머니, 타이어도 능숙하게 옮긴다. 주머니를 넣은 드럼통을 지게차에 옮겨 트럭으로 싣는 암스트롱은 트럭 문을 닫고 인사를 건넨다. 일종의 서비스다.

이러한 암스트롱은 '오늘 당장 재난 상황이 발생 시 투입될 수 있는 정도'로의 개발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게다가 재난사고 중에서도 극한으로 꼽히는 원전사고 로봇인 만큼 갖춰야 할 요건도 상당수다. 실험을 위한 사고현장 구현도 쉽지 않다. 박종원 박사는 "원자력 재난은 아이언맨에게도 어려울 정도의 재난"이라고 표했다. 

그렇기에 암스트롱은 무거운 것도 들고 섬세한 작업도 해내며 이동도 가능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의 편의도 고려해야 한다. 암스트롱은 이 모든 것을 갖췄다. 조작기도 초등학생이 직접 조종할 수 있도록 개발됐다. 연구진은 더 나아가 열에 취약한 로봇 장비의 단점을 극복하려 최근엔 가장 더운 낮 시간에 일부로 야외에서 실험한다. 박종원 박사는 "지금은 개발 초기 단계의 로봇이지만 부족하더라도 부족한 대로 현장에 즉각 투입될 수 있도록 최대한 실제 환경에 맞춰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작년 5월, 후쿠시마를 방문해 현장의 처참함을 느낀 박종원 박사는 '로봇이 아니면 정말 안 되겠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국내에선 없었으면 하지만 항상 재난은 갑작스럽게 오는 것이니 대비는 하자는 것. 박종원 박사는 "현재는 최대한 많은 시험을 통해 로봇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시험하고 있지만, 원전사고 로봇에 걸맞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라며 "사고는 사람이 머물던 공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문고리 위치나 계단, 천장 등 사람에 맞춰 꾸준히 업그레이드 중"이라고 말했다.

◆ "현재도 로봇은 인간과 공존 중···재난로봇에 관심을"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응용연구부원. (왼쪽부터)임기홍 박사, 박종원 박사, 박재범 학연학생, 임도현 학연학생, 이진이 박사. 오른쪽은 재난 대비 로봇 암스트롱. <사진=이유진 기자>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응용연구부원. (왼쪽부터)임기홍 박사, 박종원 박사, 박재범 학연학생, 임도현 학연학생, 이진이 박사. 오른쪽은 재난 대비 로봇 암스트롱. <사진=이유진 기자>

로봇이 인간과 함께하는 소재의 영화를 보며 사람들은 생각한다. 언제쯤 로봇이 인간의 일상에 스며들까. 박종원 박사는 이미 인간의 일상 속 로봇은 함께하고 있다 말하며 그 예시로 로봇 청소기를 들었다. 그는 "집에 있는 최첨단 제품 중 대부분이 가전제품이 아닌 로봇제품이다. 그중 가장 베이직한 로봇 기술을 잘 모아놓은 것이 로봇 청소기"라며 "로봇 청소기 내에 AI, 센서기술 등이 모두 접목해있다. 이미 우리는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도래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로봇은 빠질 수 없는 분야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는 "AI, IoT 등이 중요하긴 하지만 실제 액션을 취하는 것이 바로 로봇"이라며 "AI와 IoT, 로봇은 4차 산업혁명에 있어 찰떡궁합"이라고 진단했다.

끝으로 그는 로봇공학자로서 국내 로봇연구계에 희망 사항을 표했다. 그는 "로봇 연구가 당장의 이익으로 연결이 안 되는 분야기에 정부에서도 연구 지원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재난이나 안전 대비 연구를 확대하고 관심을 가져주면 다른 분야로도 파생돼 로봇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