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신규 예산 집행중지 해제···연구 활동 '숨통'
출연금 미지급액 3172억원 중 983억원 정상 확보
"과학계, 문제 공동 인식해야···R&D 유행 따르면 독"

 

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출연금 미지급액 3172억원 중 983억원이 긴급 편성돼 각 연구기관에 이달 3일 지급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출연금 미지급액 3172억원 중 983억원이 긴급 편성돼 각 연구기관에 이달 3일 지급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지난 3개월간 정부로부터 지급받지 못한 출연금 3172억원 중 1000억원 가량을 긴급수혈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취재결과 연구기관별로 평균 50억원 내외의 출연금이 지급됐다. 일부 출연연에서 시행되던 신규 예산 집행중지가 해제됨에 따라 연구 활동에 숨통이 트이게 됐다. 

1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출연금 미지급액 3172억원 중 983억원이 긴급 편성돼 각 연구기관에 지급됐다. 전체 미지급액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과기부는 지난달 말 출연연별로 기관 운영에 긴급하게 필요한 예산 수요를 조사하고, 이를 취합해 이달 1일 기재부에 예산 집행을 요청한 바 있다. 기재부는 검토 끝에 과기부에 예산을 전달했다. 각 출연연에는 지난 3일 출연금이 흘러 들어갔다. 출연금은 각 연구기관에서 인건비, 시설비, 운영비, 연구비 등으로 쓰이는 안정 예산이다. 

앞서 20개가 넘는 출연연이 지난 3월부터 매달 지급받는 정부 출연금을 계획 대비 절반 이하만 지급 받으며 논란이 일었다. 기관별로 적게는 90억원 많게는 300억원 받지 못했던 상황. 예산 규모가 작으면서 출연금 비율이 높은 기관은 당장 연구 용역을 주거나 연구 장비를 구입하는 각종 계약을 미뤘고, 임금체납 직전까지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예산 규모가 큰 기관은 출연금 미지급분을 연구과제 수주, 정부 수탁과제 예산으로 돌려막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연구 현장에선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자세를 납작 엎드렸다. 예산 규모가 큰 기관들 입장에선 다른 예산으로 출연금 미지급액을 채울 수 있어 당장 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기관에 문제가 없는데 목소리를 내 상부에 찍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 규모가 작은 기관들은 당장 출장이나 연구비 집행 등 신규 예산 집행을 보름간 중지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문제를 체감하는 상황에서도 어느 기관도 함께 목소리 내지 않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 그러다가 최근 문제가 해결돼 연구 활동을 재개하며 고무된 모습이다.

이처럼 파편화된 모습을 보며 과학계 원로와 중견 연구자들이 "내 문제 아니면 함께 목소리도 안 내는 과학계 이제는 변해야 한다" "과학계가 생태계 차원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접근해야 한다"와 같은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 소·부·장, 감염병 등 연구개발 예산집행 유행 지나치면 '독'

연구 현장에선 코로나 사태를 틈타 연구 자금을 부풀리는 일이 있다면서 연구개발(R&D)이 지나치게 유행을 타선 안 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통상 5월은 출연연이 내년 예산 계획을 수립하고, 상부 기관과 협의해 예산을 편성하는 시기다.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고자 관련 연구 과제도 늘리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식'의 연구 과제 수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 예산 담당 A 부장은 "지난해에는 소재·부품·장비, 올해는 감염병 연구처럼 연구개발이 유행을 탄다"면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긴급하게 연구 과제를 편성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너무 한 쪽으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A 부장은 "코로나 사태에서 관련 없는 연구 분야까지 감염병과 연결 지으려는 모습이 있다"면서 "과학기술은 분야별로 고유한 특성이 있고,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 분야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도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과학계 지속 투자 받으려면 함께 목소리내야"

코로나 사태로 국격을 드높이고 있는 K-바이오 기업들도 초창기에는 정부의 마중물 투자로 수혜를 입은 곳이 다수다. 정부의 초기 투자로 기업 생존에 필수적인 연구개발(R&D)을 진행하며, 기술을 고도화해 나갔다. 연구 현장도 과학계에 대한 예산은 지속적으로 투자돼야 하고 이를 위해 과학계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출연연 B 부원장은 "코로나 사태에 기여한 분들이 의료계인데 과기계가 그만큼 역할을 못 한 건 게으르거나 과학자로서 사명감이 없어서가 아니다"면서 "아직은 과기계가 최고 수준까지 다다르지 못한 부분이 더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B 부원장은 "결국은 바이오 선진국에 도달하려면 체면 불고하고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미국·유럽은 축적한 게 많다. 우리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려면 국가적으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연구비가 지원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다른 출연연 C 부원장은 "과학계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현 상황에서 배부른 소리 하는 입장으로 비칠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면서 "연구 성과를 보여주면서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알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기부는 나머지 출연금 미지급액 3분의 2에 해당하는 금액도 기재부에 수시 배정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수시 배정은 기재부에 수시로 필요한 만큼 예산을 배정받는 절차다. 현재 과기부 연구기관지원팀이 기재부에 출연연 상황을 공유하고 예산 배정을 요청하고 있다. 

한성일 과기부 연구기관지원팀장은 "6월 정기자금도 곧 집행될 예정"이라면서 "혹시나 기관별로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금이 더 있는지 수요를 조사해 6월 말에 수시 배정을 한 번 더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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