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좌담회] 연구재단, 이지현·조은혜·허정은 단장
"현장 관련 부처·기관, 오라는 곳 없어도 자주 방문"
"신뢰 기반 권한과 책임지는 연구 문화 필요"

한국연구재단 내 국가연구개발 과제를 이끌고 있는 여성단장 3총사 이지현 단장, 조은혜 단장, 허정은 단장(사진 위 왼쪽부터 이름순)과 자유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연구현장을 누비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R&D의 역할, 제도 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사진= 길애경 기자>
한국연구재단 내 국가연구개발 과제를 이끌고 있는 여성단장 3총사 이지현 단장, 조은혜 단장, 허정은 단장(사진 위 왼쪽부터 이름순)과 자유 좌담회를 가졌다. 이들은 연구현장을 누비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R&D의 역할, 제도 등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사진= 길애경 기자>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사회문제 해결 중심 연구를 기획하고 성과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회문제는 현장을 알아야 기획이 가능하거든요. 아무도 반겨주지 않아도 공공기술이 필요한 부처, 기관 등 찾아 다니며 문제를 파악합니다.(웃음)"(허정은 공공기술단장)

"연구비를 받기만 하다가 평가하고 선정하는 역할을 해보니 우리나라 평가시스템이 아주 잘 갖춰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객관적 틀이 잘 만들어졌으니 이제 정성적 평가 요소도 들어갈 수 있는 시기도 됐다고 봅니다."(조은혜 뇌·첨단의공학단장)

"융복합의 필요성은 다들 공감하는데 융복합 연구개발이 활성화 되기 위한 기반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사업 제안서에는 선택의 폭을 넓혀놨는데 평가분야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상태입니다."(이지현 문화융복합단장)

국가연구개발(R&D) 전반을 진두지휘하며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여성 단장 삼총사.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부터 과거와 현재 연구환경 변화, 앞으로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제안 등 거침없는(?) 대화가 이뤄졌다. 예정된 2시간이 눈깜짝할 사이로 느껴질 정도로 빨리 지나갔다. 

이들은 각자의 경험, 의견에 서로 공감을 표하고 덧붙여 설명하는 등 국가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애정이 대화 내내 끊이지 않았다. 대덕넷은 지난달 25일 한국연구재단의 분야별 연구단장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지현 인문사회연구본부 문화융복합단장, 조은혜 국책연구본부 뇌·첨단의공학단장, 허정은 국책연구본부 공공기술단장(이름 순)과 자유좌담회를 가졌다.

이지현 단장은 건축과 전산을 전공, 국내 1호 융합연구자로 평가된다.  2007년부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국내 융합연구의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다. 조은혜 단장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교세포와 뇌염증에 대한 연구를 30여년간 수행하며 100여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 뇌과학분야 역량을 인정 받는다. 허정은 단장은 2003년부터 한국연구재단에서 국책기술전략팀장, 인문사회연구총괄기획팀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연구개발 전반의 전문성을 갖췄다.

◆ "복잡한 사회, 재난 문제 해결의 시작점 '현장'"

"소방 현장에 필요한 기술은 무엇일까요? 스프링쿨러 설치? 화재감지 센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허정은 단장은 화재 현장을 예로 들며 현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소방 현장에 필요한 기술은 한가지가 아니다.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어도 작동이 안되면 의미없고 화재감지 센서도 오작동 등 불편으로 스위치를 꺼 놓으면 실제 화재시 아무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서 봐야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알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우리나라 화재 현장에 가면 상당수가 화재감지 센서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꺼 놓은 경우가 많다"면서 "스프링쿨러, 감지센서가 없는 곳은 설치하면 되지만 이미 설치돼 있는 곳은 이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이를 119로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장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허 단장은 "재난 현장에 과학기술을 적용하려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화재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평가위원에 이런 분들이 참여 할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평가 상피제로 실제 전문가가 많이 참여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분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지현 단장 역시 허 단장의 애로에 공감했다. 우리나라에 융합연구지원사업이 도입된 것은 2007년 기본방침 마련 후 2009년부터. 하지만 그동안 융복합 연구 기획단계 평가에서 분류조차 마련되지 못했다. 이 단장은 "오자마자 융복합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그동안은 그리고(and)만 가능해 또는(or) 키워드를 넣었다. 융복합 분야별로 가능하다"면서 "이 분야는 인공지능이 키워드를 뽑아주면 도움을 받아 진행할 예정이다. 하반기에 사람이 평가한 결과와 비교해 볼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융합연구는 인력풀이 한정돼 있는데 상피 0%로 해야 한다. 평가위원을 구성하기도 어렵다"면서 "연구개발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한 평가부분도 논의하면서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은혜 단장은 정성적 평가를 위한 전문가 인력 확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은 점점 세분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그에 따른 전문가 풀이 필요한데 우리는 예산은 늘었지만 연구자 풀은 적은 편이다. 분야별로 전문가 풀을 구성하기에는 전체 인원이 적다"고 분석했다.

◆ "과학기술은 미래 준비, 일괄 연구비 아닌 현실에 맞게"

허정은 단장(사진 왼쪽)의 이야기에 이지현 단장, 조은혜 단장도 공감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2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사진= 길애경 기자>
허정은 단장(사진 왼쪽)의 이야기에 이지현 단장, 조은혜 단장도 공감하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2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사진= 길애경 기자>
"이공분야 연구 규모가 커지고 있고 인건비는 올라가고 있어요. 연구비 총액은 늘었는데 실제 연구자들이 쓸 수 있는 연구비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일괄 연구비 지급보다 연구에 맞는 예산이 지급되도록 보완이 필요합니다."

조은혜 단장은 "창의과제가 생기면서 연구비 규모도 커지며 우리나라 연구도 한단계 올라섰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교수들은 연구비를 받고 학교에 오버헤드를 내고 나면 77%수준 남는다. 1억 받으면 7700만원이 연구비인데 인건비, 동물실험비 등을 내면 연구 재료비 구입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연구비 1억원을 받으면 석사생 2명과 연구를 할 수 있는데 3년 후 다시 연구비를 받지 못한다"면서 "이유는 석사생들은 6개월동안 실험 테크닉을 익히고 1년되면 논문 쓰고 나가야한다. 결국 질 높은 성과가 나오지 못하면서 논문도 임팩트팩터수 낮은 저널에 내게 되고 3년뒤 연구비 받기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조 단장에 의하면 일부 교수는 평가를 낮게 받아 승진에서 떨어지고 학교를 그만두고 나가기도 한다.

조 단장은 중견연구자의 경우 연구비로 4억원정도는 받아야 학생 4~5명의 인건비, 재료비 충당이 가능하고 성과도 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KAIST와 SKY 대학을 제외하면 우수한 학생들 확보도 어렵다. 교수 스스로 사력을 다해 일하지 않으면 힘든게 현실"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지현 단장은 연구자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연구비 배분 필요성을 피력했다. 또 연구개발 시 시작부터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의 협업 문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융합연구 과제는 바텀업으로 진행돼 문화가 만들어지면 연구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공과 인문이 협력하는 융합 교육이 많이 늘고 있다. 희망적이다. 하지만 인문연구자의 연구비 규모가 너무 적어 일부에서는 신청을 안하기도 한다. 분야별 적정한 연구비가 필요하다"면서 "인문하는 분들도 기술을 알아야 한다. 기술이 먼저가고 제도가 뒤에 가니 어렵다"고 지적했다.

◆ "신뢰 기반 권한과 책임지는 연구 문화로"

허 단장은 인류의 지속가능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단기가 아닌 장기 과제를 기획하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야광조끼 사례를 들며 사회문제 해결 과제 평가는 논문, 특허보다 현장 적용 여부를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에 의하면 연구자가 야광 조끼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 방문한 횟수는 연 60회나 된다. 일주에 1번 이상 간 셈이다. 하지만 평가자들은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었다.

허 단장은 "평가자들은 논문, 특허가 없다는 지적을 했다"면서 "야광조끼가 현장에 적용되기까지 연구자가 얼마나 현장을 찾으며 연구에 집중했는지 등 그런 부분이 높이 평가받고 그런 사업 평가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허 단장은 "재난은 물, 불, 붉은 수돗물, 블랙아이스 등 다양하다보니 관련 부처, 청, 지자체등 연관 기관이 10곳이 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높은 벽"이라면서 "연관기관에서 '왜 왔어요?' 라고 떨떠름하게 나와도 자주 간다. 그러면서 신뢰가 쌓이기 때문이다. 신뢰 기반의 문화가 만들어지면 일이 진행되는 속도로 빨라진다. 벽을 낮추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연구분야를 맡은 조 단장은 우리나라 뇌연구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뇌 연구는 어느 부분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2000년 초 뇌연구 촉진법이 만들어지고 연구를 하고 있어 과학기술 선진국과 출발선이 비슷하다"면서 "결국 투자의 문제인데 미국과 중국이 많이 한다. 또 우리는 적용분야에 규제가 많은데 국제 공동연구를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단장 부임 3주가 지난 그는 "3주간 SRT 이용횟수가 평생 탄거보다 많을 정도다(웃음). 예산 설명회에 들어가보니 분야도, 업무도 많지만 연구현장을 알아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다 싶어 가능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간다"고 말했다.

이지현 단장은 자율차, 인공지능 등 과학과 인문의 융합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인공지능, 자율차의 도덕성, 위상 논문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기술 중심  연구자들만 들어가는데 가치는 인문 분야에서 해야한다. 시작부터 같이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이들은 전문성 인정과 책임, 신뢰의 연구문화 확산을 희망했다. 이들은 "우리는 서로 균형과 견제는 잘하는데 책임지는 구조는 안되고 있다. 연구단장은 그 분야 연구개발 전반을 아우르는 전문가인데 권한도 별로 없지만 책임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우리 시스템 잘 돼 있다. 권한을 주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질 수 있는 신뢰기반의 연구 문화가 안착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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