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기자기표준그룹 박재성 박사·채동훈 박사·김완섭 박사
세계최초 그래핀 기반 양자홀 고저항 어레이 소자 제작 성공

측정표준 분야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측정표준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즉 우수한 기술이 있다고 해도, 이를 검증할 수 없다면 측정표준이 성립될 수 없다.

전기 표준체계 중 한 축을 담당하는 '저항표준체계'는 정확한 표준저항소자 구현과 검증 시스템 구축이 어려운 분야 중 하나였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박현민) 역시 2008년 양자홀 저항 정밀측정시스템을 확립해 유지하고 있었지만 표준저항소자를 확보하지 못해 수급을 받고 있던 상황, 전기자기표준그룹 연구팀이 고품질 그래핀 기반 차세대 양자홀 표준저항소자 공정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 직접 전수받은 핵심 기술···그래핀 성장 장비 구축에 성공하다

현재 저항표준체계는 GaAs(갈륨비소) 반도체 기반의 양자홀 소자를 표준저항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선 1.5 K(켈빈) 이하의 극저온과 10 T(테슬라) 이상의 고자기장의 환경이 필요해 구현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이 꿈의 소자라 불리는 '그래핀'이다. 그래핀으로 표준저항소자를 만들 경우 독특한 물리적 성질로 인해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4.2 K 이상)와 낮은 자기장(5 T 이하)에서 작동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문제는 그래핀으로 고품질의 표준저항소자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박재성 박사는 "조그맣고 단순해 보이는 단결정을 만드는 것이 사실 어렵고 복잡하다"라며 "고품질 그래핀을 얻는 데만 2년의 시간이 걸렸고, 또 이를 원기용 소자로 만드는 데까지도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표준저항소자가 표준으로 활용되기 위해선 항상 일정한 품질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실험과 검증을 통해 공정과정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전기자기표준그룹 김완섭 박사, 박재성 박사, 채동훈 박사. 연구팀은 2013년부터 표준저항소자 연구과제를 진행했으며, 이번 성과를 통해 세계최고 수준의 독자적 표준저항체계 확립에 성공했다. <사진=이원희 기자>
왼쪽부터 전기자기표준그룹 김완섭 박사, 박재성 박사, 채동훈 박사. 연구팀은 2013년부터 표준저항소자 연구과제를 진행했으며, 이번 성과를 통해 세계최고 수준의 독자적 표준저항체계 확립에 성공했다. <사진=이원희 기자>
김완섭 박사는 "그동안 표준연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양자홀 저항 정밀측정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표준저항소자까진 자체적으로 구현하지 못했다"라며 "이번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수준의 저항표준체계 소자기술과 측정시스템을 모두 갖췄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것은 장비였다. 당시 프랑스 장비회사에게서 받은 비용견적은 20억 원이었다. 장비 제작비용과 함께 핵심 기술에 대한 특허비용까지 포함된 비용이었다. 표준저항소자는 구현이 어려워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기 때문에 덩달아 높은 비용이 요구된 것이다.

연구팀이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장비를 '구입하자'가 아닌 '만들자'였다. 이를 위해 핵심기술의 보유자였던 독일의 Thomas Seyller 교수를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를 직접 장비화 하는데 3~4년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그만큼 비용절감과 함께 표준연에 딱 맞는 핵심장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채동훈 박사는 "조교수 시절 알게 된 인연이 맺은 연구결실이다"라며 "2년 전 표준연에 초대해 전수받은 기술로 이룬 성과를 보여주고, 발전 및 보완방향을 논의하는 연구협력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고품질 탄화규소 그래핀 성장장비. 연구팀은 독일에서 기술을 직접 전수받아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장비를 제작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고품질 탄화규소 그래핀 성장장비. 연구팀은 독일에서 기술을 직접 전수받아 우리나라 환경에 맞는 장비를 제작했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 세계 최고 수준의 독자적 표준저항체계를 확립하다

전세계에서 자체적으로 고품질 탄화규소 그래핀을 성장시켜 양자홀 단일소자까지 구현한 곳은 독일의 PTB(Physikalisch-Technische Bundesanstalt)와 미국의 NIST(National Institute of Standards and Technology) 두 곳뿐이었다. 표준연은 1600 ℃ 이상의 고온에서 고품질 탄화규소 그래핀을 이용한 소자 공정기술개발에 성공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세계최초로 단일소자를 이용해 그래핀 기반 양자홀 단일 표준 저항(12.9 ㏀)과 10개의 소자가 직렬로 연결된 '129 ㏀의 그래핀 기반 양자홀 고저항 어레이(array) 소자' 제작에 성공한 것이다.

그래핀 기반 단일 표준 저항 소자(좌), 고저항 어레이 소자(우).<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그래핀 기반 단일 표준 저항 소자(좌), 고저항 어레이 소자(우).<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그래핀 고저항 양자홀 소자 이미지와 양자홀 효과(위). 4 X 10-8 불확도의 특성을 지닌 온도와 자기장 영역(아래, 파란색 영역).<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그래핀 고저항 양자홀 소자 이미지와 양자홀 효과(위). 4 X 10-8 불확도의 특성을 지닌 온도와 자기장 영역(아래, 파란색 영역).<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제공>
박 박사는 "정밀측정용 어레이 소자는 단순히 소자를 이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다"라며 "이를 이용하면 저저항부터 고저항까지 다양한 표준저항체계를 확보할 수 있어 전기 표준체계 연구에 응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발빠르게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김 박사는 "표준저항소자로서 의의를 갖기 위해선 최종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라며 "우리가 개발한 표준저항소자를 해외의 측정표준기관에 보급해 비교와 검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 박사는 "이번 성과는 세계최고 수준의 표준저항소자를 확보했다는 것과 함께 세계로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는 데도 의의가 있다"라며 "완전한 국가저항표준체계의 확립을 통해 산업계와 과학기술계에 영향력과 경쟁력을 갖춘 측정표준 강대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강조했다.

박 박사는 "단일소자의 품질향상과 함께 어레이의 개수를 늘려가는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예정이다"라며 "이를 통해 차세대 양자전기표준체계의 표준화를 선도할 수 있는 표준연의 저항표준체계를 견고히 갖춰나갈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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