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①]어공만 과학자, 늘공은 연구 문외한
보건복지부, 의사 특채로 주요 보직 순환 전문성 확보
​과학자들 "과기부 존재해야 하나" 탄식

코로나 사태로 세계가 비상이다. 전시상황으로 비유된다. 위기 때 실력이 나타난다. 능력자는 빛을 발하고, 문외한은 치부가 드러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각국 정부의 실력을 한 눈에 알게 했다. 한국은 숨겨진 실력이 드러난 축에 속한다. 반면 유럽과 미국, 중국, 일본은 숨겨진 난맥상이 들춰졌다.

한국은 특히 의료시스템과 신속한 진단체계가 돋보였다. 질병관리본부가 과학적 근거 기반의 공중보건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하며 주목받고 있다. 의료체계에 빛이 들은 것과 대조적으로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곳이 있다. 과학계이다.

연구비가 20조 이상 들어가는 과학계는 위기 때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료계와 과학계가 뚜렷하게 명암이 갈린 것이다. 왜 그럴까? 어디서 시작해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대덕넷은 4월 과학의 달을 맞아 코로나로 드러난 과학기술계 실체를 취재했다. '업그레이드 사이언스코리아' 기획특집 보도시리즈를 과학 전문성, 기술의 축적, 협력 문화 순으로 3편에 거쳐 보도한다. 문제해결을 돕기위해 각 편에서 현장 의견을 토대로 한 정책 방향성이 담긴 대안을 제시할 예정이다.<편집자의 편지>
 
바이오 관련 한 정부출연연구기관 K 과학자.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가장 바쁜 연구자가 됐다. 두 달이 넘도록 과학기술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들과 마주하느라 당장의 연구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K 연구원에게 갑질한 것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큰 정책적 그림을 그리느라 바빴던 것도 아니다.
 
연구원이 힘 빠지는 상황이 바로 이 점이다. 무엇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상황. K 연구원이 연구를 제쳐놓고 매달린 일은 세균이 뭐고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박테리아와는 무슨 차이인지 기초지식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그는 코로나19에 대한 신속 대응이 필요하고, 해당 공무원이 당연히 기초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상세하게 차근차근 설명한다.
 
문제는 그 설명이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아니다. 사무관을 설득시키면 그 윗 상사 과장한테 연락이 온다. 그때부터 다시 과장한테 기초부터 설명한다. 과장이 이해되면 국장한테, 국장을 설득시키면 실장‧차관‧장관 순으로 이어진다. 끝도 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보고라인을 넘길수록 전문가적 판단은 희석된다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과 사무관을 거쳐 과장‧국장‧장‧차관 등 위로 갈수록 처음 과학자가 이야기했던 정책은 사라진다. 정치적, 정책적으로 판단이 개입된다.
 
과학자 이야기를 듣는 공무원도 바쁘다. 설명 들을 시간도 별로 없다. 기껏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본격적인 사업 이야기를 나누겠다 싶으면, 해당 공무원은 파견을 나가고 없던가 다른 담당자로 바뀐다. K 연구원에 따르면 담당 사무관이 1년에 4번 바뀌었단다. 비단 바이오 분야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우리에게 가장 슬픈 일이 무슨 일인지 아느냐?"
K 연구원은 한 선배 연구자의 이같은 질문과 자답이 서글펐다.
그 선배는 "비전문가한테 전문가가 과학에 대해 계속 설명해도 바뀌지 않는 우리 과학계의 현실이 가장 슬픈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현장 연구자들은 기초과학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기술 주무 부처의 비전문성에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 기초과학의 특성상 정책 추진은 전문적 식견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정책의 연속성이 발휘되지 않으면 진흥은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정책, 예산, 인력 등 모든 권한이 아이러니하게도 비전문가들이 포진한 과기부에 집중돼 있다.
 
◆ 복지부와 과기부의 결정적 차이? 전문적 식견 갖춘 정책 영향력
 
코로나 사태로 감춰진 실력을 전세계에 떨치고 있는 질병관리본부의 주무부처 보건복지부는 과기부와 좀 다르다. 직접적 비교가 어렵지만, 적어도 전문성 확보 차원에서는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있다.
 
보건복지부 본부 인력은 850여 명(2020년 현재 기준). 그중 의사 출신은 15명 내외를 오간다. 현재 파견 인력을 제외하면 본부 인원은 12명. 보건복지부·인사혁신처는 '민간경력자 채용'을 통해 보건사무관(5급 이상)을 특별 채용한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채용 기준에 따라 최소 2년에서 6년(서기관), 10년 이상(부이사관)의 경력을 가지고 임관한다. 이들 대부분 국·과장급 주요 보직이나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에서 공공 보건·의료 정책의 중심을 잡고 의사결정한다. 

대표적 인물들이 지금 활약하는 사람들이다. 윤태호 공공보건정책관(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장·차관을 대신해 언론 브리핑을 진행할 정도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 손영래 대변인과 이중규 보험급여과장도 의사 출신이다. 여기에 의료자원정책과·의료정보정책과·질병정책과 등에 의사 출신 보건사무관이 위치해 국가 의료·보건·질병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약사 출신까지 더하면 정영기 건강증진과장, 정은영 보건의료기술과장, 오창현 의료기관정책과장 등도 포함된다.

복지부 소속기관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도 의사 출신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주요 보직에 전문의들이 있다 보니 민간 전문가들과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는 게 복지부 관계자 전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행정직이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라면서 "의사 출신 보직자들의 장점은 민간 전문가들과 모이는 자리에서 그들과 같은 용어를 쓰기 때문에 의견 수렴, 교환에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소속기관은 질병관리본부, 국립 나주·부곡·춘천·공주·마산 병원 등을 포함해 13곳이다. 산하 공공기관까지 합치면 수는 더 늘어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질본을 포함해 산하 소속기관에서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 순환한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R&D) 계획을 포함해 공공 보건·의료 주요 정책 수립과 조정을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확보한 모양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떨까. 인력은 797명(2019년 11월 기준)으로 보건복지부 대비 약간 적다. 다른 점은 현장 연구소 경험을 한 과학자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과기부에 따르면 과학자 출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력은 극소수 고위직이다. 장관 및 정책자문위원,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정확히 말하면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임시직이다. 오래 있지 않는다. 이들을 뒷받침하고, 더 나아가 아이디어를 주는 늘공(늘 공무원)은 극소수다. 단국대 공과대학 교수 출신인 박선호 과장 정도다. 

과기부 운영지원과 인사팀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 출신으로 특별 채용된 인원은 13명 정도다. 이들 대부분 5급 행정직과 동일하게 공직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 과기부가 연구소에 공식 파견 요청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파견 연구원이 하는 일은 정책 방향을 진두지휘하는 게 아니다. 책상에 앉아있다가 공무원이 치료제가 뭐냐 물으면 이해될 때까지 설명해 주는 역할 정도다. 그러다가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내에 연구소로 복귀한다.

최근 한 과기부 공무원이 사석에서 출연연 연구자에게 건넨 이야기도 씁쓸하다. "지난번 신종플루 때는 장관이 비전문가라 액션을 하지 않아서 너무 편했는데, 이번 장관은 과학자라 잘 알아서 너무 피곤해졌어"라고.

현장 연구원들은 과기부가 제대로 가동되려면 전문성 확보 체제로 개혁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대덕넷의 제안 ①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문성으로 무장하라

   <3대 세부 제안>
 1. 공무원과 과학자의 정기적 소통 및 학습 프로그램 실시로 과학현장 이해.

 2. 순환 보직 시스템에서 전문가 양성 시스템으로 인사 원칙 전환.
 3. 과학기술인들을 지속적으로 특채해 과학기술부의 전문성 제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역설.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지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역설.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지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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