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 ETRI 박사 "인간은 분류기로 태어났지만~"

"인간은 세상을 색칠하며 물체를 구분합니다. 얼굴을 인식해 사람을 구별하기도 하죠. 이는 인간만의 고유 능력입니다. 하지만 AI가 인간을 초월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어요." 

인간은 색상을 통해 물체의 주연과 조연을 구분한다. 가령, 넓은 바다 한 가운데 빨간 보트가 있는 그림이 있다고 한다면 인간은 색상을 통해 그림에서 '주연'인 보트과 '조연'인 바다, 즉 배경을 구분해낸다. 이정원 ETRI 박사가 말하는 인간의 '분류기'적 특성이다.

인간에게 있는 분류기적 특성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구분하거나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별도의 학습이나 교육 없이도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인간만의 고유의 능력이다. 

이정원 ETRI 박사가 AI 학술세미나에서 '사피엔스와 AI'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홍성택 기자>
이정원 ETRI 박사가 AI 학술세미나에서 '사피엔스와 AI'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 홍성택 기자>
올해 첫 AI학술세미나 연사로 나선 이 박사는 "그림은 물감이 묻은 단순한 얼룩일 뿐이지만 인간은 그 속에서 주인공과 배경을 구분해낸다"면서 "인간이 태생부터 분류기로 태어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색상을 나타내게 하는 빛은 파장에 따라 여러 빛들이 물체에 반사돼 우리 눈에 들어오는게 된다. 망막의 시세포를 건드린 빛은 시신경을 지나 뇌를 거치며 우리는 비로소 색을 인식하게 된다. 

빛은 우리 눈에 들어와 신호로 바뀌며 뇌에서 '웨어 패쓰웨이(Where pathway)'와 '왓 패쓰웨이(What pathway)' 두 갈래로 갈라진다. 웨어 패쓰웨이의 경우 명암과 위치 정보가 전달되고, 왓 패쓰웨이에는 색에 대한 정보가 전달된다. 사람 얼굴을 구분하는 기능이 있는 FFA(Fusiform Face Area)도 왓 패쓰웨이에 존재한다. 

이 박사는 "왓 페쓰웨이처럼 색을 통해 사물 간의 구분을, 사람 얼굴 등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인간 고유 특징 중 하나"라면서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색상 개념으로 세상을 색칠하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강아지가 빨간색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색상이라는 개념은 자연계에 있는 속성이 아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처럼 만들어진 색상 개념을 통해 물체를 구분하며 인간으로서 분류의 능력을 스스로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의 분류기는 완벽하지 않다. 뇌에 문제가 생기면 오작동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웨어 패쓰웨이에 문제가 생기면 사물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왓 패쓰웨이에 문제가 생기면 색맹·색약이나 안면인식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뇌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도 분류기가 오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구름을 바라볼 때 사람의 얼굴과 같은 형태를 본다거나 토끼그림에서 오리가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는 그림에서 인간의 분류기는 오검출된다. 

이 박사는 "자연계에 없는 색깔을 분류하고 사람얼굴 같은 사물들을 보는 등 인간의 분류기는 비교적 '형편없는' 수준"이라며 "현재의 인공지능(AI)은 인간의 분류기를 뛰어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딥러닝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사진에 담긴 사물 또는 사람을 인식하기 시작하며 영상에서도 여러 사물을 동시에 인지할 수 있다. 인지를 넘어 이미지를 실제처럼 생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간이 가진 고유의 기능을 뛰어넘고 있다는 것이 이 박사의 말이다. 

이 박사는 "초음파 영상을 가지고 아기 얼굴을 만들어내는 기술, 사진·영상에서 입술모양을 마음대로 바꿔주는 기술, 특정 사람의 목소리로 문장을 읽어주는 기술 등 이미 다양한 AI 기술이 나오고 있다"면서 "지금 인간 얼굴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수준(AI)은 우리의 분류기를 속일수 있을 정도는 이미 돼 있다"고 말했다. 

◆ 인간은 '인과율 제조기'로 태어난다?

분류기와 마찬가지로 '인과율 제조기' 역시 인간만의 고유 특징 중 하나다. 그가 말하는 인과율 제조기란 모든 현상에 대해 원인을 밝히고 그것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이해를 바탕으로 현상에 대한 개념을 습득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박사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유추하듯 이를 너무나도 쉽고 당연하게 인과율을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원인에 대한 궁금증과 답을 찾는 과정 즉, 인과율 덕분에 과학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인과율은 사실상 벌어진 일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기 어렵지만 반복된 현상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기는 비교적 쉽다. 이러한 인과율 특성을 반영한 기술이 바로 AI '강화학습'이다. 

강화학습이란 머신러닝의 한 종류로 알고리즘이 다양한 시도를 거치며 최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조합을 찾아내게끔 하는 학습법이다.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칠 때 다리를 어떤 각도로 몇 초 동안 움직이라고 알려주지 않지만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 움직여야 넘어지지 않는지 몸으로 익히며 최적의 방법을 찾아낸다. 

이 박사는 "인과율 작동매커니즘은 반복 사건에 대한 인과관계를 만든다"면서 "본래 인간은 분류기와 마찬가지로 태어날 때 부터 인과율 매커니즘을 이해하며 적용해왔고 이제는 AI가 강화학습을 통해 인과율 제조기로서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AI의 강화학습은 게임에서 그 성능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바둑에서 이세돌을 꺾고 모두를 놀라게 한 알파고처럼 포커, 체스, 스타크래프트 등 이미 세계적 선수들을 웃도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박사는 "AI는 이미 강화학습을 통해 인간보다 뛰어난 인과율을 보이며 게임에서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인간 수준보다 뛰어난 인과율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게임뿐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한편 지난 8일 열린 AI학술세미나에서는 70여명이 참석해 이 박사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다음 AI학술세미나는 오는 22일 박수철, 소준섭 모두연 박사가 나서 'AI로 작곡한 음악'을 주제로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자세한 일정과 참가문의는 페이스북 'AI프랜즈' 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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