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는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민간연구기관, KAIST, 딥테크 기업들이 밀집해 있어 서로 협력하면 큰 파급효과가 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지만, 사실상 서로 데면데면했던 분위기다. 아무래도 중앙 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다보니 지자체 등 지역 주체들도 연구단지를 '남의 것' '중앙 자원' 정도로 여겨 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전시는 과학도시를 표방하면서 실질적인 과학기술계와의 협력에는 소극적이었다. 출연연 역시 지자체와 협력에는 적극 나서지 않는 모양새였다. 출연연은 오히려 대전 이외에 타 지자체에서 지역산업 육성을 위한 분원 유치 등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는 등 가지각색 지자체 요구 대응에 분주한 편이다. 

그런 가운데 최근 대전시를 비롯한 지역 구청들이 과학계와 적극 소통에 나서고 있다. 대전시는 과학산업국을 중심으로 과학계와 호흡하며 계획을 구체화 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점에 맞게 출연연의 연구성과를 통한 사업화, 제품화를 위해 각 분야 연구자, 기업인과 소통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문창용 과학산업국장을 비롯해 박장규 과학산업과장, 오승철 과학정책팀장, 정진제 특구협력팀장 등이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과학특보를 신설, 민병권 대전테크노파크 팀장을 영입해 시와 대덕연구단지 협력 전반의 일을 재설계하고 있다. 
 

유성구, 대덕구도 과학을 활용한 사례가 주목된다. 유성구는 출연연과 KAIST가 속한 지역의 이점을 살려 과학문화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꿈나무 과학멘토 사업 뿐만 아니라 과학캠프, 과학강연, 연구단지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중이다. 이은아 유성구 교육과학과장과 김모세 주무관을 중심으로 이영섭 팀장, 배지현 주무관, 지정구 주무관 등이 활약하고 있다. 

대덕구는 지난 10월 조직개편을 통해 과학팀을 신설했다. 팀장과 팀원 3명이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연계사업 모델 발굴에 나서는 등 출연연과의 협력을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 지역 대학 총장들의 러브콜 "대덕과 적극 협력"

최근 지역의 대학 신임 총장들의 비전 공약에 과학이 공통적으로 담겼다. 특히 과학계와의 협력 의지를 표명했다. 각 대학마다 과학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손 잡기에 나섰다. 과학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건축공학과 교수인 이진숙 충남대 총장 1순위 후보는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는 등 과학계에 관심이 높다. 그는 핵심 공약에 대덕연구단지와의 연계 조직 설치를 들며 과학계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또 연구·산학 부총장제 도입을 언급했다.

이진숙 총장 1순위 후보는 '학·연·산·지역 협력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지역협력본부를 설치하고 지역대학, 지자체, 기업체가 협력하며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 CNU혁신파트를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장 당선자는 내년 3월 취임 후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역 기업 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협력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그는 "단과대학별 특성화와 교육·연구 융합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글로벌 협력 브랜드 구축으로 교육과 연구성과를 극대화해 대학 핵심지표 상승과 국제화를 이끌어 내겠다"면서 "대학의 여건에 맞는 국책사업 수주와 혁신파크 사업의 안정적인 운영을 통해 선도적 산·학·연·관 협력대학의 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봄 한밭대 수장으로 선출된 최병욱 총장은 대학-기업-대덕연구단지의  협력으로 프로젝트 기반 교육 플랫폼 완성에 시동을 걸었다. 최 총장은 "대덕에 밀집된 출연연, 민간연은 중요한 자원이다. 이들과 연계된 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스로 주도하는 인재 배출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 총장은 교수-학생-기업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통해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 남을 수 있도록 지역 기반 상생 플랫폼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대덕단지는 출연연과 민간연을 비롯해 KAIST, UST 등의 특성화 대학, 기술기반 벤처 등이 밀집돼 연구하기 좋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라며 "이곳에서 한밭대 학생들이 역할을 펼치도록 기반을 마련하겠다"면서 적극적인 협력 행보를 펼치고 있다.

◆ KAIST-로컬 특화 미온적,  UNIST-울산시 GIST-광주시처럼

지속 가능한 대전지역 활성화를 위해서는 어느 기관보다 이공계특성화 대학의 맏형인 KAIST의 분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KAIST 역시 창업원 운영 등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나서며 협력 물꼬를 넓혀가고 있지만, 지자체와 출연연과의 관계는 여전히 미온적이라는 평이 적지 않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와 울산시, GIST(광주과학기술원)와 광주시가 긴밀한 관계로 지역 생태계 활성화의 중심축이 되는 것에 비해 KAIST와 대전시는 연결고리가 여전히 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평이다. 

최근 지역 대학과 대전시, 출연연, 기업커뮤니티 간 모임을 갖고 딥테크 대덕생태계 활성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KAIST의 참여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KAIST도 로컬 커뮤니티와 서로 협력하며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흐름에서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UNIST와 울산시는 긴밀하다. 울산시와 울주군은 UNIST 설립시기부터 매년 150억원 규모를 지원하며 학교 발전에 적극 참여해 왔다. UNIST 역시 지역 발전에 적극 나서며 협력한다. 지자체와 과학계의 대표적 협력 모델이다.

광주시는 GIST와 협력해 올해초 지역의 100년 미래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학자 그룹인 GIST는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삶과 산업의 변화를 공무원, 경제인, 시민에게 지속적으로 설명했다. 지자체는 과학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공지능 중심 산업융합 집적단지 조성사업' 선정은 광주시와 GIST가 2년여간의 지속적인 만남이 이뤄지며 가능했다. 광주시와 GIST 관계자는 "각각 소속은 달랐지만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는 소명의식은 같았다"고 성공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골목상권 지역경제 활성화 전문가인 모종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로컬 브랜드가 기업과 인재를 모으고 있다. 일, 주거, 놀이가 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자생적인 도시산업 생태계가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면서 "대덕도 기술보다 지역 특색이 담긴 로컬 브랜드로 승부하기 위해 지역의 주체들이 많은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