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플라자호텔서 LG 출신 100여 명 모여 소식 주고받아
LG에 바이오 씨앗 뿌린 최남석 전 소장과 국내 바이오·의약 기업인들 참석

"1980년대 당시 사람 키우는 일밖에 할 게 없었지. 그 사람들이 지금 이렇게 (성장해)..."
(최남석 전 럭키중앙연구소 연구소장)

지난 5일 저녁, 서울 더플라자호텔에 국내 바이오 벤처 거장들과 기업인, 연구자 1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LG생명과학을 퇴사한 동문. 40년 전 최남석 전 소장이 만든 럭키(전 LG화학) 유전공학사업부를 시작으로 럭키 의약품사업부, LGCI, LG생명과학, LG화학 의약품사업부에서 이어온 '바이오 연구'에 몸담았던 사람들이다. 이 자리에는 1980년대 최 전 소장과 함께 바이오 연구의 기틀을 닦았던 주역들부터 최근 근무자들까지 여러 세대가 섞여 있다. 

동문 회원들은 LG를 떠난 후 산업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중 바이오 벤처를 창업한 사람은 국내 신약개발 1세대로 꼽히는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등 30여 명이다. 기업의 연구 분야는 단백질·항체·저분자물질 치료제, 진단 등 다양하다. 의약품 유통, 임상시험, 벤처캐피털, 경영으로 진출한 이들도 있다.

동문들은 부지런히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만난 동료, 새로운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기 바빴다. <사진=동문회 제공>
동문들은 부지런히 연회장을 돌아다니며 오랜만에 만난 동료, 새로운 사람들과 소식을 주고받기 바빴다. <사진=동문회 제공>
동문회는 특별한 행사 없이 옛 동료들과 만남에 의미를 둔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의자 없이 스탠딩 식탁만 준비되는 이유다. 2013년 동문회를 처음 발족한 이정규 바이오브릿지 대표는 "모여서 식사하는 게 전부지만, 여러 분야에서 종사하는 옛 동료들을 만나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편히 대화할 수 있어서 많은 분이 꾸준히 오시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김인철 전 LG생명과학 대표도 "국내에 이런 자발적인 기업 동문 모임은 없는 것 같다"며 "오지 말라고 해도 올 정도로 다들 동문회에 애정이 크다"고 말했다. LG에서 23년을 보낸 김 전 대표는 현재 임상 전문 기업인 씨엔알 리서치의 감사를 맡아 기업인의 바이오 벤처 창업과 해외 진출을 돕고 있다.

이 모임이 활발한 이유를 묻자 김 전 대표는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고, 공통 관심사가 비슷해서 정보를 교류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동문회에서 나눈 대화가 협력과 계약으로 이어지거나 인력을 소개받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민창희 비욘드바이오 대표는 "당시 LG에서 우수한 역량 있는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분야에 몰두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는데 결과적으로 신약개발에 필요한 전 분야 전문가들이 여기 다 모였다"며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관계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태규 신약개발지원센터 센터장은 편안함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이 센터장은 "여기 오면 LG에 근무할 당시 연구 프로젝트나 행정 일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다 있다"며 "자기소개를 하지 않아도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아는 친밀한 사이"라고 설명했다.

최남석 전 소장과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가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 전 소장은 1984년 탄생한 럭키 중앙연구소의 미국 현지법인인 LCB(럭키바이오텍) 연구소장으로 조 대표를 선발했다. 이후 조 대표는 럭키의 초기 유전공학 제품들 출시에 기여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최남석 전 소장과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가 옛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 전 소장은 1984년 탄생한 럭키 중앙연구소의 미국 현지법인인 LCB(럭키바이오텍) 연구소장으로 조 대표를 선발했다. 이후 조 대표는 럭키의 초기 유전공학 제품들 출시에 기여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일부 참가자들은 LG생명과학에서 창업가가 많이 배출된 배경에 최남석 전 소장의 인재 양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는 "최 소장님은 훌륭한 인재를 발탁해 성장하게 도와주셨다"며 "LG에서 일할 때 신약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 연구를 자유롭고 주도적으로 연습할 수 있었다. 현재 사업에 도움이 되는 고마운 경험"이라고 밝혔다.

김인철 전 대표는 "지금 50~60대 나이인 박사들은 당시 최 소장님이 뽑으신 사람들인데 굉장히 똑똑한 분들"이라며 "소장님은 이들에게 신약개발이라는 쉽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할 수 있는 능력과 창업 정신을 길러주셨다. 그것이 결국 이렇게 많은 벤처를 낳지 않았나 싶다"고 해석했다.

이날 최남석 전 소장은 최근 기업을 상장한 손미진 수젠텍 대표와 유진상 파멥신 대표에게 감사패를 수여 했다.

손미진 대표는 "창업이 쉽지 않아 마음고생도 많았는데 7년 만에 상장하고 이 자리에 서니 감개무량하다"며 "LG 동문이 늘 옆에서 도와줘서 큰 힘이 되었고 외롭지 않았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손 대표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LG생명과학에서 근무하다 2011년 체외진단 전문 기업 수젠텍을 세웠다. 당시 LG생명과학에서 손 대표와 함께했던 유승범·김은경 연구원이 창업에 동참해 현재 각각 수젠텍 부사장과 이사를 맡고 있다.

유진산 대표는 "첫 직장 LG에 다닐 때 불만도 참 많았는데 돌이켜보면 훌륭한 선배와 동료가 있어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유 대표는 LG생명과학 항체센터 센터장을 역임하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거쳐 2008년 항암 항체 치료제 개발 기업 파멥신을 설립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양흥준 전 LG생명과학 대표는 "최남석 소장님이 LG생명과학뿐만 아니라 LG화학의 기틀을 닦고 새로운 무대를 만들기 시작한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며 "우리가 LG생명과학의 발전에 더 기여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어찌 보면 이렇게 많은 영웅을 배출하게 된 것이 개인·국가·세계에 더 성공적인 것 같다"고 피력했다.

양 전 대표는 "지금까지 많은 동문 창업가들이 IPO에 성공했는데, 40년 전 생명과학 비즈니스가 이런 규모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오늘날 희망과 활력이 있는 곳은 우리가 하는 생명과학 분야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빛나는 신약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더 힘을 내자"고 격려했다. 

LG생명과학 신입 퇴사자(2015년 이후)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동문회에는 입사 년도나 근속 년수에 상관 없이 LG생명과학을 거쳐간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진=한효정 기자>
LG생명과학 신입 퇴사자(2015년 이후)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도 있었다. 동문회에는 입사 년도나 근속 년수에 상관 없이 LG생명과학을 거쳐간 사람들로 구성된다. <사진=한효정 기자>

2019년 LG생명과학 동문 모임 단체사진. <사진=동문회 제공>
2019년 LG생명과학 동문 모임 단체사진. <사진=동문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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