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체험기32]글 : 김준식 ETRI 선임연구원

길고 복잡하게 늘어져 있던 선.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정보검색을 위해서는 랜선이 불가피하게 필요했다. 집 안 곳곳, 사무실 곳곳에 연결돼 있는 수많은 선들을 보고 있자면 때로는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필요하면서도 골칫거리인 계륵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랜선이 아닐까 한다. 이런 저런 단점과 함께, 무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길게 늘어져 있던 랜선들도 조금씩 꼬리를 감추고 있다. 무선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면서 갖가지 프로토콜 역시 개발되고 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원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수시로 하드웨어를 바꾸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은 것이다. 오늘날 무선 인터넷 인프라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저마다 다른 표준을 세워둔 상태다.

당연히 소비자는 하나의 단말기로 다양한 프로토콜을 누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동통신단말기의 유지와 관리, 업그레이드에 대한 소비자의 열망,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가 커지면서 그 해결책으로 등장한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SDR기술이다.

하나의 단말기로 소프트웨어를 재구성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무선 규격과 접속할 수 있게 한다. 지난 8월, 찌는 듯 한 더위로 지칠 대로 지친 무렵 '필아이티'의 파견 요청을 받게 됐다.

그동안 진행하던 과제가 끝나고 새로운 과제를 준비하던 때라 상황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것도 '필아이티'에서 요청한 근무 기간이 3개월이라 필자의 빈자리를 감내해야 할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돌덩이처럼 얹혀 있었다. 다행히 개발 및 시험 환경이 ETRI에 구성돼 있었다.

주로 ETRI 실험실에서 파견 업무를 진행하는 조건으로 중소기업 파견 업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필아이티'는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정보통신업체로 2000년 1월에 창업했다.

모바일폰, 스마트폰, 근거리 무선통신 등 최근 각광받고 있는 최첨단 기술에 주력하면서 삼성전자, SKT, KT, 노키아 등 이동통신 전문기업들과 함께 수익모델을 창출하고 있었다.

ETRI와 SDR 단말 미들웨어 사업을 함께 추진했던 까닭에 '필아이피' 직원들과는 이미 안면이 있었다. 어느 정도 팀워크가 형성되었으니 손발을 맞추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필아이티'가 필자에게 요구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었다. '필아이티'는 미들웨어 플랫폼을 실제 환경에 적용하기 전에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미리 찾아 해결하고 싶어 했다.

궁극적으로는 독자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개발체계와 시험환경 구성, 그리고 그간 ETRI에서 제공한 미들웨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목적이 있었다. 개발환경과 시험환경이 ETRI에 마련되어 있으니 시험환경 구성이라든지, ETRI의 기술 이전은 쉽게 진행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필아이티' 구성원과의 소통이었다. 통신기기가 많이 발전되어 있다 하더라도 마주보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따라오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필자의 걱정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애초에 예견했던 소통의 어려움은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시간의 힘 덕에 별다른 문제를 남기지 않았다. 3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파견 업무가 성공적으로 끝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필아이티'를 떠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파견 업무를 잘 마쳤다는 뿌듯함이 남아 있다. 조금 더 욕심을 내 본다면 필자의 역할이 '필아이티' 도약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DR나 미들웨어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고 앞으로 발전할 터전이 잘 마련되어 있는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의 부족한 기술 수준이나 비용부담만 해결할 수 있다면 말이다.

필자의 파견 기간 동안 본의 아니게 부담을 짐 지울 수밖에 없었던 ETRI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고, 새로운 기술을 볼 수 있었던 이런 기회를 동료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다. 그때는 그들의 빈자리를 필자가 채워주고 싶다.
 

김준식 ETRI 선임연구원은.

1990년 서강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으로 학사학위를, 2년 뒤에는 같은 학교에서 ‘다중 버스 시스템을 위한 수정된 팬디드 프로토콜 및 성능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효성 그룹의 전자통신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99년 ETRI로 자리를 옮겨 SDR, WiBro, 이동 통신 단말 등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IT 첨단 기술 분야에 몸담고 있다.

2007년에는 충북대에서 'Software Defined Radio'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명실상부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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