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포 수목원서 영결식...수목원 후원에 관심을

한국의 푸른 보석 천리포 수목원을 일궈낸 민병갈 원장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지난 12일 영결식장은 유난히 바람이 세찼다. 그의 유해를 태운 꽃상여가 지나는 길에 조기(弔旗)로 게양된 태극기는 깃이 떨어져라 펄럭이며 그의 마지막 길에 흰 손수건을 흔들듯 아쉬움을 표했다.

귀화 1호 미국인,임업인 첫 산업훈장 포상,한국의 스피노자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그는 온몸으로 한국을 사랑한 진정한 한국인이었다.

해방이후 한국을 찾은 미국인들은 많았지만 국적을 바꿔가며 한국과 일체가 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민 원장은 58세란, 남들은 고향을 생각할 나이에 국적을 바꾸며 제2의 조국을 찾았다.

40년전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 한 뙈기의 땅을 산 것을 인연으로 당시 남들은 생각도 못했던 수목원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자연미와 전통문화의 그윽함을 누구보다 일찍 깨달은 그는 남들이 파괴할 때 보존 작업에 나선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 소중함을 알 것이라는 생각으로. 수목에 관한 지식도 없었고, 30cm만 파도 염분이 나오는 척박한 곳에서 그는 한국 최고, 아시아 최고의 수목원을 일궜다.

때로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미디어에서 '종의 유출'이라는 심각한 제목으로 천리포 수목원이 한국의 토종 식물을 팔아먹는 것으로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키도 했다. 다양한 품종의 도입을 위해 교환 차원에서 보낸 것을 잘못 이해한 것. 다양한 식물 자원의 확보는 부국의 원천이라는 신념에 따라 국내 토종 식물의 조사 및 분류와, 외래 식물의 국내 수입을 해왔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병상에서 임업인으로는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아 그 노고를 뒤늦게나마 인정받았다.

천리포 수목원에는 전통 한옥들이 남아있다. 서울 홍제동 등에서 뜯어져 버리는 한옥을 아쉽게 여겨 해체해서 이축한 소사나무집과 감탕나무집이 있다. 초가집을 형상화한 본관 및 원장실 두 동의 건물도 명물이다.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세상에 붙들어 맨 것은 천리포 수목원의 불투명한 장래. 본인이 있는 살아있을 때는 보존이 돼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돼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가 사후대비책으로 4년전부터 시작한 후원회의 회원은 현재 5백명 가량. 하지만 절대수가 적을 뿐 아니라 제대로 조직화가 안된 상황이다. 후원회장인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는 "벽안의 민 원장이 한국인에 최고의 유산을 남겨놓고 가셨다"며 "이제는 한국인들의 힘으로 천리포 수목원을 가꿔 후손들에 천년 유산으로 남겨줘야 한다"며 관심있는 사람들의 후원회 가입을 당부했다.

후원회원은 일반인에 개방이 안되는 수목원을 견학할수 있고 식물에 대한 다양한 정보 지원을 받을수 있다. 수목원은 매년 4월에 후원회원의 날 행사를 개최해 희귀 식물을 분양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 영결식은 그가 몇년전 귀의한 원불교식으로 치러졌는데 영결식을 주관한 이는 "경전처럼 살다간 우리 시대의 성자"라고 그의 행적을 표현하기도 했다.

천리포 수목원 후원회원 문의는 041-672-9310,9726으로 하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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