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大해부]촌동네 이미지, 첨단으로 바꾼 '과학자'

'정읍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 호남평야가 시작되는 곳. 쌀농사를 바탕으로 농경산업이 발달한 곳. 쌀 가격 폭락, 한미FTA 등으로 경제가 힘 없이 주저앉아 27만 인구가 13만으로 줄어든 곳. 전라북도 정읍. 지금 정읍은? 더이상 촌동네 정읍이 아니다.

첨단 과학동네. 방사선, 생명공학 등 첨단 과학산업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곳. 과학기술이 주민들의 생활 속에 묻어나는 곳 등으로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정읍이 이러한 이미지를 구축하기까지 끊임없이 이유 있는 고집을 지켜온 사람이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정읍 방사선 연구원의 변명우 박사다. 그의 리더십을 해부한다.

◆ 고집 1 '뚜렷한 비전'…미래에 대한 확신, 절대 포기마라

원자력 분야 연구개발이 '발전(發電)'에만 총력을 기울였던 1990년대. 변 박사는 원자력연구소 간부회의에서 앞으로 '방사선 연구'를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냉담뿐. 속된 말로 '뉘집 개가 짖는구나'하는 꼴이었다.

'미래인들은 방사선과 함께 살아 간다'는 믿음을 절대 굽히지 않았던 변 박사. 선진국은 1980년대부터 원자력과 관련해 비 발전 분야 투자가 진행된 것을 보아도 이미 대세는 '방사선 연구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변 박사는 캐나다 사스카툰을 찾았다. 벤치마킹을 위해서다. 농업중심지였던 사스카툰은 정부의 적극 지원 아래 농업 특성을 효과적으로 살려 세계적인 바이오 클러스터로 성장했고, 세계가 주목하는 단일 기술 집적단지로 자리 잡았다.

귀국한 뒤 변 박사는 반드시 캐나다 사스카툰 클러스터를 정읍으로 옮겨오겠다고 작심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선 우리나라 방사선 연구의 실력부터 입증해 보여야 겠다고 판단했다. 반대하는 연구원들 마인드부터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변 박사는 방사선 관련 분야에서 매년 15~20여 편의 논문을 쏟아냈다. 20여 년 동안 연구를 진행하면서 해외 논문 게재 건수만 200여 편. 국내 논문 게재 건수까지 총 5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변 박사의 연구성과는 연구원 자체 평가에서 10년 동안 줄곧 최우수 과제에 선정됐다.

이렇게 역동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변 박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구원들 사이에서 '방사선 연구'가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변 박사가 처음 방사선 연구원 설립 아이디어를 낸지 10여년이 흐른 뒤, 방사선 연구원이 정읍이라는 도시 위에 새롭게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변 박사는 방사선 연구원 설립에 앞서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 고집 2 '커뮤니케이션'…반대를 움직이는 방법? '마음과 마음 맞닿는 것'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 '방사선'이라고 하면 인체에 위험한 것인줄로만 알았던 주민들이 연구원 설립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건물 공사 자체를 방해하는 것은 물론, 시청이나 역 앞에서 반대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정읍 농부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 변 박사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변 박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각종 지역 반상회와 모임을 찾아 다녔다. 주민들이 '오면 가만 안놔둔다'고 협박해도 쳐들어 갔다. '방사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득 작업을 필사적으로 펼쳤다. 방사선 연구원 설립 공청회, 연구 설명회, 간담회, 토론회 등 온갖 방사선 연구 홍보를 위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나갔다.

1년 반의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주민들의 마음이 열렸고, 연구원 건립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결국 지난 2006년 10월 수백여명의 주민들이 동참한 가운데 연구원 개원식을 가졌다. 현재 방사선 연구원은 정읍 시민들의 보물로 여겨진다. 정읍 택시를 타고 '방사선 연구원 가자'하면 가격을 할인해줄 정도.

◆ 고집 3 '성과체크'…성과 못내면 연구원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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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박사는 철저한 성과중심 마인드 보유자다. 그가 생각하는 연구원의 성과는 연구를 통해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거나, 국민의 복지에 기여를 하거나,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것. 연구를 통해 이 세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는 만족해야 그것이 진정한 연구라는 것이다.

변 박사는 신입 연구원들에게 "2년 안에 연구원으로서 성과를 못내면 연구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교육 시킨다. 또, 객관적이고 철저한 능력 위주의 평가를 통해 나이의 적고 많음이나 경력의 적고 많음에 관계치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을 과제 책임자 자리에 앉힌다.

여기에 매달 두 번에 걸쳐 진행하는 '방사선 융합기술 연구회'를 만들어 연구원에서 진행되는 모든 분야의 연구를 전 연구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업, 환경, 농업, 식품 등 전 분야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면서 융합 기술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연구회 뿐 아니라 매달 한 번, 전 연구원이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토론의 일관된 주제는 '연구원이 나가야될 길'. 전 연구원이 사업화 마인드를 갖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변 박사는 "사람들이 너무 연구원들을 쪼아대는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연구원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들이고, 그러한 마인드가 연구원이라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변 박사는 교육과 토론 시간 운영과 함께 직접 연구원 개개인을 찾아 고충이나 의견을 듣는 일을 병행한다. 각 연구실을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연구를 진행하면서 드는 고민에서부터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연구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이제 연구원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달려와 이야기해준다.

◆ 고집 4 '자기계발'…늙을수록 할 일 더 많아진다

방사선 연구원을 성공적으로 건립하고 방사선 연구원을 '방사선 기술 사업화 밸리'로 키워나가면서 정읍이라는 도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변명우 박사.

정년을 9년 앞둔 변 박사는 새로운 포부를 또 다시 그려나가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 방사선 동위원소 생산센터를 꼭 건립하고 싶다'는 꿈이다. 전세계 방사선 동위원소 생산은 캐나다와 영국이 독차지 하고 있는데, 앞으로 동북아 시장은 한국에서 생산되는 동위원소가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변 박사의 목표다.

변 박사의 또 다른 목표는 '우주 방사선 연구를 위한 기술개발 시스템 완비'. 변 박사는 "앞으로의 시대는 우주를 바라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주를 향한 연구들이 속속 나와야 한다. 그러한 연구를 잘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 그의 계획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설립되는 벤처기업들이 '시민주' 공모에 의해 탄생해 지역과 과학산업이 함께 부를 창출해 가는 신 모델을 만드는 것. 그는 경영 도서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연구만 잘 해서는 안된다는 그의 확신 때문이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꿈을 이루게 한다고 믿는 변 박사. 그는 지금도 새로운 꿈을 위해 책장을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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