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특구 과학자와 예술인의 '문화 대화'

"박사님. 커피 한잔 어떠세요?" 커피 향이 짙게 감도는 아주미술관 카페 뮤제. 대덕특구에서 '커피도사'로 통하는 김근식 아주미술관 이사의 한마디에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조양구 박사는 머리에 쌓여버린 눈을 훌훌 털어내고 창가에 앉았다. 조 박사는 연구소에서 커피방을 운영해 '커피박사'로 불린다. "늦겨울 하우스 브랜드를 맛보고 싶네요."

낯선 만남의 어색함이 감돌 틈도 없이 '커피박사'와 '커피도사'는 갓 내린 커피의 향긋함에 똑같이 푹 빠졌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얘기할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라는 김 이사. 예술인다운 감성적인 말에 후렴구를 붙이듯 조 박사가 말했다.

"커피는 계절 따라 맛이 변하지 않죠. 항상 그대로 입니다. 아마 좋은 사람과의 만남도 그럴 겁니다." 재료물성학을 전공한 과학자와 문화와 함께 살아가는 예술인. 서로 다른 전공이지만, 이날 두 사람은 함박눈이 내리는 창가에서 커피라는 공통된 주제로 끝없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짙은 원두커피향이 감도는 오후의 특별한 만남을 따라가 봤다.

◆ 내 인생의 커피 사연?

조 : 연구소에 커피방을 만들게 된 계기는 연구원들이 열심히 연구하는데 그에 맞는 혜택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양질의 커피를 마시며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김 : 저는 사람들이 미술관에 와서 단순히 전시회를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을 느끼도록 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맛있는 차를 마시면서 미술관 전시에 대한 여운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최고의 전시와 어우러질 수 있는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왔습니다. 

조 : 표준연에 커피방 만들었을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반 자판기 커피와 가격도 비슷하게 맞춰야 했고요. 그래서 초기에 무료 시음기도 거쳤죠. 막상 무료 시음기가 끝나고 마시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지금은 다시 많아졌습니다.

김 : 뮤제에서도 이런 저런 일이 있었죠. 하루는 어떤 손님이 '카라멜 마끼야또'라는 커피을 시켰는데 잘못됐다고 하더군요. 왜 아니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책에서 봤는데 이런 모습이 아니더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아직까지는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 별로 없다 보니까 이런 일도 당하게 되더라고요. 조 : 저희도 커피방을 만들고 반년 정도 있다가 여직원들에게 '바리스타(커피를 제조하는 사람)' 교육을 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커피방 내에 커피관련 서적들을 비치해놓고 있죠. 그냥 마시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만, 제대로 알고 마실 때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정신을 살찌우는 행위"

김 : 가끔 손님 중에는 우리가 왜 비싼 돈 내고 차 마시냐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뮤제의 경우 차 값이 비싸다고 많이 말씀하시죠. 그럴 때면 전 밥은 육체를 살찌우기 위한 것이지만, 커피는 당신의 영혼과 정신을 살찌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조 : 맞습니다. 커피와 차는 모두 우리 정신을 살찌울 중요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는 자기 문화를 정말 잘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역사는 길지만 좋은 문화가 이미 많이 훼손됐고, 그나마도 일본에게 빼앗겼죠. 특히 차 문화는 현대에 들어 멸종하다시피 했습니다.

그 예로 녹차를 대부분 일본식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사실은 녹차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이고 다기도 우리나라 것인데 그걸 다시 되찾고 지키려는 노력 없이 그저 문화민족이라고 자존심만 세우고 있습니다. 김 : 문제는 그것 뿐이 아니죠. 우리나라는 커피 소비가 전 세계 14위입니다. 그런데 일본과 우리의 커피수준은 흔히 30년 차이라고 말하죠. 우리가 그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미국의 저급 커피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60년대 커피수입을 금지시켰을 때 미국 PX의 인스턴트커피를 수입해서 먹게 된 게 문제였죠.

조 : 그 당시는 미국의 모든 걸 받아들일 시기였기 때문에 미국식이 고급이라고 생각했던 탓도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기업가들이 잘못된 커피 문화에 대해서 한번도 시정할 생각을 안했다는 것도 문제죠.

◆ "커피로 술 문화 밀어내자"

조 : 커피방에는 커피를 즐기자는 취지도 있었지만, 서로 함께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자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밤에 거기 모여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토론해 좋은 실험 아이디어 얻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있어서 커피란 사람과 사람사이의 '매개체'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지요.

김 : 저는 커피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좋은 향기 좋은 맛, 좋은 만남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서 많은 만남이 이뤄지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좋네요. 조 :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가 반만년 역사의 문화민족이라고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뭔가 빠져 있습니다. 그 무언가를 채워주고 우리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요소가 '커피' 등 '차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김 : 중국이 차를 마시는 게 술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는 군요. 술을 마시면 쉽게 취해서 상대방에게 실수하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커피 또한 마시면서 취하지만 이는 기분 좋게 대화에 취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커피를 통해 술 문화를 밀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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