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글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현대 생활에서 색은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세계 유명 패션쇼에서는 화려한 색의 옷들이 선을 보이고 거리로 나가보면 다양한 색과 무늬의 옷들과 건물을 볼 수 있다. 또한 신호의 전달 및 위험, 경고의 용도로 색은 사용되기도 한다.

색은 이처럼 우리 생활과 땔래야 땔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며 삶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인류가 색을 이용한 것은 아주 오래다. 고대 유적지를 살펴 보면 인류의 역사가시작 될 때부터 색을 이용한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프랑스 도르도뉴현에 있는 라스코 동굴벽화를 들 수 있는데 기원전 1만5천년 전에 그려진 벽화에는 아직까지도 들소, 야생마, 사슴 같은 동물 그림이 그 선명한 색을 자랑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 고분에서도 발굴되는 각종 벽화나 그릇들을 보다 보면 다양한 색으로 채색된 수준 높은 그림들을 볼 수 있다. 그럼 고대인들은 이런 색을 만들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을까? 제조 방법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염료는 로마 시대에 타이리안 퍼플(Tyrian Purple) 또는 임페리얼 퍼플(Imperial Purple) 등으로 알려졌던 자주색 천연 염료다.

로마시대에 주로 황제나 고급 귀족들의 의복 염색에 사용되었는데, 지중해에서 많이 자라는 소라고동의 내 아가미 샘에서 분비되는 맑은 체액을 원료로 만들었다. 소라고동의 분비액을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시키고 햇빛을 쪼여 주면 몇 차례 색이 바뀌다가 마침내 모직물이나 견직물에 사용할 수 있는 청색이나 자주색의 염료가 만들어진다.

호기심이 많았던 독일의 화학자인 ‘파울 프리뢴더’가 1906년부터 1909년까지 직접 재현해 보았는데 이 염료를 1.4g을 얻기 위해 그리스의 티레 해변에서 약 1만2천 마리의 소라고동을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영어에 ‘Born To The Purple'라는 속담이 생겼으며 이는 매우 귀한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18세기에는 코치닐이라는 붉은색 염료가 사용되었다. 이는 멕시코에서 자라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곤충에서 추출한 것으로, 1kg의 염료를 얻는 데 이 곤충 10만 마리를 잡아야 했다고 한다.

파란색 천연염료로 가장 중요한 것은 향료 식물인 인디고 염료일 것이다. 이 염료는 우리나라의 쪽(藍, 인디고) 염료와 같은 것으로 햇빛과 세탁에 잘 견디기 때문에 지금은 천연 인디고 염료의 구조를 그대로 모방하여 합성하고 있다.

현재에는 청바지의 염색에 주로 쓰이는 염료로 단일염료로는 가장 많이 생산된다. 18세기에는 그렇지 않아도 모자라는 식량 생산에 쓰여야 할 경작지가 일부 귀족들을 위한 쪽 재배에 쓰임으로써 일반인의 생활을 오히려 더 힘들게 했다.

이밖에도 고대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에서는 꼭두서니라는 식물의 뿌리에서 알리자린이라는 빨간색 염료를 얻는 방법이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이 천연 염료는 대량 생산이 어려워 희소가치가 높았다.

따라서 왕이나 귀족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염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염료 이외에도 백반과 같은 매염제가 필요했기 때문에 염색 기술은 국가 비밀로 취급됐다. 예를 들어서 로마 시대에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염료 공장 밖에서 타이리안 퍼플을 만드는 사람은 사형에 처할 정도였으니 일반인에게 천연 염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유한 사람들은 쪽, 치자, 잇꽃, 오가피, 꼭두서니, 모과, 석류, 산수유 등으로 만든 천연 염료로 물들인 옷감을 입을 수 있었다. 왕이나 관료들은 비단길을 통해서 중국으로 수입된 비싼 염료로 염색한 화려한 옷으로 그 권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흰색의 무명옷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염료만으로 염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천연염료에는 식물섬유에 친화력이 없어 물에 녹지 않는 착색물질의 침전을 형성하기 때문에 섬유에 색을 더 잘 입힐 수 있는 백반과 같은 매염제(媒染劑)가 있어야만 더 좋은 염색을 할 수 있다.

매염제를 쓰면 착염이 잘되고 염색이 잘 될 뿐만 아니라 매염제의 종류에 따라 다른 색상으로 염색이 가능하다. 즉 식물 염료는 한 가지만으로도 매염제에 따라 여러 가지 색상으로 염색할 수 있는 것 이다.

매염제로는 전통적인 천연매염제와 합성 매염제가 있는데 천연 매염제로는 식물을 태운 잿물, 식물의 수피나 탄닌, 사과나 오미자의 과일즙, 금속성분을 포함한 경수,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오줌 등이 있다.

합성 매염제로는 철, 구리, 알루미늄, 주석, 크롬 매염제 등이 있다. 천연매염제는 합성매염제에 비해 매염효과가 약하고 매염제를 만들기 위해 손이 많이 가지만 화학약품에 저항감이 있고 부드러운 색을 낼 때 많이 사용한다.

최근 합성연료 염색물의 인체의 유해성, 염색 과정에서 오는 중금속에 의한 폐수처리 등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천연염료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래서 직접 천연염색을 배우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자연의 색이 인공적인 염료로 만든 색에 비해 연하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자연을 닮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은 바로 이 천연염료에서 나온 색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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