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글 - 유상연 과학칼럼니스트

비행기도 아니다? 배도 아니다.? 1976년 미국의 첩보위성이 카스피 해(海)에서 ‘괴물체’를 발견하고는 그 정체성을 놓고 논란에 빠졌다. 당시 괴물체는 물 위에 낮게 떠 시속 500km 정도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배로 보기에는 너무 빨랐고, 그렇다고 비행기로 보기에는 너무 낮게 떠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훗날 밝혀진 이 괴물체의 이름은 ‘위그선’(Wing-In-Ground Effect Ship)이었다. 구 소련이 군사목적으로 1960년대부터 개발하기 시작한 위그선은 이후 러시아 독일 중국 등에서도 해상구조용, 레저용으로 개발이 진행됐지만 아직까지 부분적으로만 실용화됐을 뿐이다.

위그선 관련 기술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러시아 과학기술 교류사업을 통해 국내에 소개됐는데, 지난 2002년 해양연구소는 국내의 한 벤처기업과 공동연구 끝에 4인승 규모의 레저용 소형 위그선 시험운항에 성공 했다.

갈매기호로 명명된 이 위그선은 해면 2m 높이에서 시속 120㎞로 날아갈 수 있으며, 연료 소모량은 일반 모터보트의 50%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해양부가 총사업비 1200억원을 들여, 대형 위그선(200인용)을 개발하겠다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최대 5m 높이로 떠서 수면 위를 날아가는 위그선은 국제해사기구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와 국제 민간 항공 기구(ICAO: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의 협약에 의해 배로 분류되긴 했지만 움직이는 원리는 오히려 비행기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날개에서 양력(lift)을 일으켜 공중에 떠서 고속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비행기와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비행기와는 달리 ‘해면효과’를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다. 해면효과란, 날개가 해면과 가까울 때, 날개 밑의 공기가 갇히는 현상 때문에 양력이 평소 보다 더 많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사실 위그선은 해면효과가 없다면 비행기처럼 떠 있는 것이 불가능 하다. 물론 비행기도 수면이나 지면 가까이 낮게 날게 되면, 위그선 처럼 해면효과를 받기 때문에 날개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양력이 발생 한다.

문제는 비행기는 수상기나 비행정을 제외하면 물 위에 닿을 경우 매우 위험하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공중에 뜨는 기본원리는 유사하지만 애초에 물 위를 다닐 수 있는 목적으로 설계된 위그선과 공중을 날아다니도록 설계된 항공기는 ‘진화방향’이 다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위그선 최대 약점도 바로 이 지면효과에서 나온다. 고속으로 비행하는 위그선은 해면효과로 인해 비행기 앞쪽 부분이 파도 치듯 위아래로 흔들릴 수 있는데 이런 진동이 강해지면 비행기가 추락하여 수면과 충돌하거나 공중에서 뒤집히는 현생이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초기 위그선 설계 기술은 호수나 강에서는 운항이 가능하지만, 파고(波高)가 높은 해상에서는 지면효과가 불안정해져서 이착륙이 불가능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제어기술의 발달로 이런 문제점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형 위그선의 경우는 아직까지 개발된 사례가 없는 상황이어서 또 다른 난제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만약 해양연구소의 연구가 성공해 대형 위그선이 실용화 된다면, 수송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선박으로는 불가능한 시속 200~500㎞ 이상으로 운항할 수 있는데다, 연료비 측면에서도 기존 항공기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위그선은 비행기처럼 공항 같은 거대시설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동북아 물류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와 물류가 많으면서도 공항설비가 없는 중국의 위해, 연태, 청도, 대련 등지와의 여객 및 항공화물의 연계수단으로는 위그선 만큼 좋은 것도 없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중국동부 연안과 일본을 1~3시간 이내에 항공요금의 절반정도로 물류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 파급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는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험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첨단 과학기술 하나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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