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뎀고로독 신비의 베일을 벗다...이방인에서 친구로

시베리아에 다녀왔습니다.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 편 밖에 없는 까닭에 지난 4일에 가서 11일에 돌아왔습니다.그곳에서 머물던 1주일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베일에 가려졌던 신천지를 엿보고 가슴 뛰는 느낌이었습니다. 가기전 상상했던 시베리아와 가서본 실상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특히 시베리아와 대덕밸리가 연계될 경우 엄청난 가능성을 지닐 것이라는게 동행한 대덕밸리인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하얀색으로 생각됐던 그곳은 짙은 푸른색 일색이었습니다.동토(凍土)가 아니라 적당한 기후에 홍수도 한발도 없는 낙토(樂土)였습니다. 백야(白夜)도 보았습니다. 밤11시까지 해가 지지 않고, 새벽 3시에 해가 떠 하루종일 낮인 말로만 듣던 하얀밤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건너뛰어 시베리아가 갖고 있는 보배는 기초 기술력입니다.

뉴튼이 만유인력을 탐구하던 과학정신이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듯한 실험실과 과학자들의 모습은 러시아가 현재는 상황이 어렵지만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님을 깨닫게했습니다.그러면서 러시아의 기반기술과 한국의 응용기술을 결합시키면 실리콘밸리에도 견줄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도 들었습니다. 아카뎀고로독(Akademgorodok)에 다녀온 일주일간의 기록을 싣습니다.

(1)아카뎀고로독을 아십니까,(2)아카뎀고로독의 숨은 실력,(3)시베리아와의 바람직한 협력방안 등의 순으로 싣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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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뎀고로독을 아십니까. 러시아말로는 학문도시란 이름입니다.이름 그대로 이곳은 러시아 기반기술의 생산기지입니다. 1957년에 건설되기 시작해 세계 최초로 세워진 과학도시입니다. 위치는 시베리아 평원의 한 복판.러시아 3대도시인 노보시비리스크의 한 구역에 해당됩니다.

한국에서는 인천공항에서 뜨는 직항기로 5시간을 날면 도착하는 곳입니다. 시베리아에 위치한 이유는 냉전중에 미국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이 도달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구 5만에 이중 과학자들은 1만여명.핵폭탄 및 수소폭탄을 만들고 광 가속기를 개발한 핵물리학연구소를 비롯해 30여개의 연구소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1985년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모스크바와 상페테스부르크의 과학자들이 서방으로 물밀듯이 빠져나간데 반해 시베리아의 과학자들은 고스란히 남았습니다.러시아 과학기술의 본거지 역할을 하는 것이죠.

때문에 이곳의 출입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최근에도 러시아 비자를 받을 때 연구소의 초청이 없으면 절차가 매우 복잡할 정도입니다. 6월의 아카뎀고로독은 녹음이 우거집니다.마음속에 상상됐던 흰색은 중앙아시아 평원을 날면서 푸른 색으로 자연스럽게 바뀝니다.

추울것으로 예상해 가져간 두꺼운 긴 팔옷은 트렁크에 그대로 남을수 밖에 없습니다.시베리아에도 여름이 있는 것이죠. 6월부터 8월까지로 낮아도 25도 내외이고 높으면 35도에 달합니다.특히 여름의 시베리아는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와 적송으로 이뤄진 숲은 경탄을 자아냅니다. 아카뎀고로독은 그중에서도 독특합니다.

대덕연구단지 반 정도의 규모에 도시 전체가 하나의 캠퍼스입니다. 대덕연구단지처럼 각 연구소가 영토를 갖고 그 안에 성을 짓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 도시건설의 총책임자였던 라브렌티예프 박사의 이름을 딴 라브렌티예프 거리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연구소가 자리잡으며 건물 이외의 공간을 시민들에 내주었습니다.

도시는 하나의 숲속에 자리잡은 마을을 연상하면 됩니다. 아카뎀고로독에서 일하는 과학자는 1만여명입니다.총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지요.이들은 학생에서부터 박사,국가박사,아카데미션 등의 구분이 있습니다. 박사란 연구소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고,이들중 연구업적이 뛰어나고 저술 활동이 활발한 사람에게는 국가박사 칭호가 부여됩니다. 이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아카데미션. 러시아 전역에 1천여명이 있고,이중 시베리아에는 1백명 남짓의 아카데미션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명예와 함께 주택과 높은 봉급 등의 부와 연구소의 인사 및 예산과 같은 권한이 주어집니다. 아카뎀고로독내 연구소는 모두 러시아 과학원의 시베리아 지부 소속입니다. 지부는 철저하게 자치가 인정되어 있습니다. 아카뎀고로독 박사들 가운데 지부장이 선출되고 이 사람에 의해 전체 연구소가 협력하면서 연구를 합니다.

특히 연구소장을 비롯한 책임자급은 거의 종신직입니다.핵물리학 연구원장인 쉬린스키는 광 가속기를 개발한 공로로 34세에 과학자 최고의 영예인 아카데미션에 임명됐습니다. 이후 41세에 연구원장에 올랐고, 65세인 지금도 원장직을 맡고 있습니다.자그만치 24년간의 원장직이죠. 종신직을 맡는 만큼 관료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들은 상상이상으로 유연성을 갖고 있습니다.

소장이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전원을 연결하고 기기를 조작하는 것 등 대부분을 자신이 합니다.아랫사람들도 소장과 이야기할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의견을 주고받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학도시안에는 노보주립대학(NSU)이 있습니다.러시아내에서 모스크바 대학에 이어 실력이 인정되며 카이스트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 학교는 연구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교수의 80%가 연구원들이고,학생들은 도제(徒弟)처럼 교수인 연구원의 연구실에 가서 연구를 합니다. 또하나 특기할 것은 과학자의 홀입니다. 식당과 전시공간, 세미나실을 갖추고 과학자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대덕연구단지의 대덕롯데호텔과 과학문화센터가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활동이 극히 미약한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시베리아 사람들의 정서도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친근하게 여기는 미국이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건널수 없는 거리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들은 달랐습니다.본인들도 스스로 아시아인이라고 말합니다.모스크바에 대해서는 시베리아를 식민지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며 거부감을 나타냅니다.그러면서 시베리아는 아시아의 일부로 아시아와의 공존을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있다고 책임자급이 스스럼없이 밝힙니다.

한국에서 5시간이나 떨어진 아카뎀고로독은 가기전에는 완전한 이방이었지만 함께간 일행 모두에게는 이웃으로 새롭게 비쳐졌습니다.다음회에는 아카뎀고로독의 실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덕넷 이석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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