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IBS 과학문화센터 개관 기념 장석복 박사와 대담
"사람에게서 살아있는 배움 얻고, 일상 새롭게 바라보라"
역경 극복 방법 묻자···"매일 닥치는 역경을 살아갈 뿐" 답해

김훈 작가와 장석복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은 11일 IBS 과학문화센터 강당에서 대담을 펼쳤다. <사진=김인한 기자>
김훈 작가와 장석복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은 11일 IBS 과학문화센터 강당에서 대담을 펼쳤다. <사진=김인한 기자>
말 속에는 간결함이 묻어났다. 허례허식 없는 이야기에 청중은 몰입했다. 문학, 과학계 두 거장이 대담을 나누는 자리에서다. 소설가와 과학자, 서로 다른 분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복되는 일상을 충실히 임하고, 일상 속 역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사람에게서 생동감 있는 배움을 얻고, 죽음을 인지하며 늘 보던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그랬다.   

11일 IBS(기초과학연구원) 과학문화센터에서 김훈 작가와 장석복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이 대담을 펼쳤다. 김훈 작가는 지금까지도 연필과 지우개만으로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 중이다. 독특한 문체로 책을 쓰며 칼의 노래, 남한산성과 같은 굵직한 작품을 내놓았다. 장석복 단장은 올해 7월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대한민국 대표 과학자다. 이들은 각자의 세계관을 청중과 공유했다. 

김훈 작가와 장석복 단장은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공통으로 말했다. 한 청중이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가치 실현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김훈 작가는 사자(死者)를 화장하는 곳에서의 경험을 소개했다. 

"화장장에 가면 죽은 사람 이름 옆에 화장 중, 화장 완료, 냉각 중, 냉각 완료라는 문구가 떠요. 그게 완료되면 한 되 반 정도의 재가 되죠. 그걸 보면서 까불면 안 되고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도 젊었을 땐 70살이 되고, 죽는다는 걸 생각 못 했어요. 늙어가면서 늘 보던 게 새롭게 보여요. 안 보이던 게 갑자기 보이는 것이 아니고, 늘 보이는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이죠."

김훈 작가는 죽음을 인지하고, 늘 보던 세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석복 단장도 "톨스토이라는 작가는 어떻게 살 거냐는 질문에 '죽음을 기억하면서 성장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개인적인 해석으로는 죽음을 기억한다는 건 삶에 대한 소중함과 오늘 살아있다는 것에 실존적인 감사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창의 원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사람" 

장 단장은 김훈 작가의 말을 인용하며 "일상적으로 보는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과학적으로 창의적인 사람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은 아주 드물다"며 "반복되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도 창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험, 연구 언제든 새롭게 볼 수 있는 부분은 항상 있다"며 "다만 못 볼 뿐이고, 어느 때는 보려고 안 할 뿐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바라보려는 시선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와 장 단장은 이구동성으로 창의와 배움은 '사람'에서 얻을 수 있다고 정의했다. 장 단장은 "과학자로 길을 걸으며 중요했던 계기는 좋은 사람을 만났던 것"이라며 "사람으로부터 인간적인 배움도 얻었지만, 학문적으로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이 따르고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도 공감했다. 김 작가는 "사람을 통해 배운다는 건 책을 통해 배우는 것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제가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지만 한번도 자랑으로 여긴 적이 없다. 책에 어떤 길이 있는 건 아니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게 아니고,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책이 아니라 사람, 사물, 사건을 통해 우리는 더 큰 살아있는 배움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작가는 "공자님이 공부하라는 건 책보고 전공 공부하라는 게 아니다. 마음보를 똑바로 하고 인간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라는 것이지 책 읽으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공자님은 친구가 멀리서 오면 얼마나 기쁘냐고 말했다(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친구가 왔을 때 기쁨을 아는 인간이 되라는 거다. 인간을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역경 극복 방법 묻자···"매일매일 닥치는 역경을 살아갈 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도 역경은 일상에 있었다. 청중이 역경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자 김훈 작가는 "매일매일이 역경이고, 인생이란 늘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잠에서 깨면 눈앞에 흰 종이가 보이는데, 그 종이에 무엇을 채울까 생각하면 무섭다"면서 "매일매일 닥치는 역경 속에서 불완전하고 불만에 찬 그날그날을 지낼 뿐"이라고 공유했다.

IBS는 과학문화센터 개관 기념으로 열린 김훈 작가와 장석복 단장의 대담에는 청중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오는 18일 저녁 7시 IBS 과학문화센터에서는 '지구온난화의 비밀'을 주제로 악셀 팀머만 IBS 기후물리 연구단장이 대중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11일 IBS(기초과학연구원) 과학문화센터 개소 기념으로 열린 김훈-장석복 대담에는 청중 100여 명이 몰렸다. 사진은 대담 이후 청중들이 김훈 작가에게 사인을 청하는 모습. <사진=김인한 기자>
11일 IBS(기초과학연구원) 과학문화센터 개소 기념으로 열린 김훈-장석복 대담에는 청중 100여 명이 몰렸다. 사진은 대담 이후 청중들이 김훈 작가에게 사인을 청하는 모습. <사진=김인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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