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병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실장·'과학자의 글쓰기' 저자

대덕넷은 수요일 격주로 '최병관의 아·사·과'를 연재합니다. '아주 사적인 과학'이라는 의미로 과학 도서를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저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홍보 실장으로 올해 '과학자의 글쓰기'를 집필하는 등 과학 대중화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최병관 작가의 과학 서평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최병관 지질자원연 실장.
최병관 지질자원연 실장.
"뭐라고? 거북선이 세계 첫 철갑선이 아니라고?"

문중양 서울대 교수의 '우리역사 과학기행'은 '우리 과학 문화, 어떻게 읽을까?'라는 제목의 머리말이 상당히 길다. 11페이지다. 왜 그럴까?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책 내용 때문이다. '우리역사 과학기행'에는 예전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의 전통 과학을 역사적 사실과 다르지 않게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자면 근대 과학이라는 필터를 제거하고 전통 과학을 역사 속의 하나의 산물로서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전통과학을 그것이 처해 있었던 특정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contexts)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중략)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곧,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이 특정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역사적 배경을 초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pp 7~8)

'우리역사 과학기행'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에 대해 과거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이 담겨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경고(?)한다. 우리 과학 문화의 우수성과 우리 민족의 과학적 역량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이 책을 펼쳤다면 다른 책을 읽을 것을 주문한다. 거의 협박수준이다.
필자도 저자가 우려하는 사람에 속하지만 "책을 덮으라"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나갔다. 일견 국 교수의 말에 공감을 하기도 하면서 '우리역사 과학여행'을 살펴봤다.

그도 그럴 것이 국 교수는 우리가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으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쏟아 낸다. 예를 들면 거북선은 세계 최고의 철갑선이 아니고, 첨성대는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가 아니라고 주장이다. 매일매일 쓰고 있는 한글 자음은 발음기관의 형상을 본뜬게 아니라고 덧붙인다. 멘붕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대표적 국립대학인 서울대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우리역사 과학기행'은 국 교수의 이같은 관점에 따라 첨성대, 석불사 석굴, 훈민정음, 앙부일구, 금속활자, 거북선, 수표교, 혼천시계, 천하도 등 18가지의 유물 및 유산에 대해 그 의미를 짚어간다.

차근차근 문 교수가 주장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여기에서는 지면의 한계로 인해 첨성대, 거북선, 금속활자 등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중고교 시절 수학여행때 항상 보던 첨성대를 뗘올려 보자.

첨성대는 이름이 지니는 사전적 의미, 즉 별을 보는 구조물와 천문에 대해서 묻던 구조물이었다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을 "천문을 관측했다"로 이해해 현대적 의미의 천문대로 와전됐다.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의 주장을 중국 과학사학자 조피프 니덤이 받아 쓰면서 정설로 굳어졌다. 첨성대는 구조 및 외양으로 볼 때 불교적 제단, 혹은 토속적 염원을 담은 조영물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고 문 교수는 주장한다. 고대 천문대의 역할이 천문 관측이 아니라 천문을 물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벌컥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해한다. 우리는 역사 시간에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교육받아 왔다.

거북선에 이르러서는 점입가경이다. 문약한 조선사회에서 영웅 이순신과 무적의 철갑 거북선은 일본인 학자들과 박정희 군사정부가 주입시킨 식민사관의 결과다. 실제 거북선은 조선함대의 주력인 2층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것일 뿐, 기동성과 위력에서 판목선에 미치지 못하고 일본 수군의 전열을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위력의 바탕은 어디까지나 기왕의 판옥선과 우수한 화약무기다. 임진왜란 중 3~4척만 제작된 것도 그런 까닭이라는 것이 문 교수의 주장이다. 거북선이 그와 같은 엄청난 화력을 지녔다면 많은 수를 제작해 적과 싸웠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는 반박한다.

우리는 그동안 고려의 금속활자에 대해 독일의 구텐베르크 인쇄술보다 200년이나 앞선다는 사실에만 의미를 부여해왔다. 그렇게 암기해왔다. 하지만 구텐베르크 인쇄술이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불러와 유럽 근대화의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 것과는 달리 금속활자는 역사적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금속활자는 고려와 조선이라는 중세기의 한 복판에서 등장했다는 차이점이 있으며, 조선의 성숙한 유교문화를 꽃피우는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특히 여러 종류의 지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직방세계'를 다룬 전통 세계지도가 조선후기 과학적인 세계지도 못지 않게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공계 출신 저자인 문 교수는 화제의 인물이다. 그는 서울대 국사학과에 처음 부임할 때 과학자가 한국사 전공교수가 되었다며 10여개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많은 한국사의 영역 중에서 단지 전통 과학을 주제로 삼아 연구하는 학자라고 말한다.
 
최근 국내에서는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과학기술인의 과거 역할과 미래의 임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우리역사 과학여행'을 통해 한-일의 과학기술에 대해 살펴보고,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사를 살펴보고, 앞으로 과학기술의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중장기적 비전을 설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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