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 이민화下]흩어진 구슬 꿰며 세계 개척 '총력'

기술에 의한 세계 도전 감행···현장 중심 '속도경영' 펼쳐
"메디슨은 맏형 역할···초기 벤처기업에 해외 영업망 공유"
마지막도 독서···책상 위 '100년 기업, 실패 통한 성공' 책 놓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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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한 기자 - 2019.09.02

이민화는 세계 시장을 개척하며 '속도경영'을 펼쳤다. 그는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등은 현장 요구가 제품에 반영되는데 1년이 걸렸지만 메디슨은 3개월 이내에 고객 요구를 반영했다. 속도경영만이 우리의 살길이었다"고 했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이민화는 세계 시장을 개척하며 '속도경영'을 펼쳤다. 그는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등은 현장 요구가 제품에 반영되는데 1년이 걸렸지만 메디슨은 3개월 이내에 고객 요구를 반영했다. 속도경영만이 우리의 살길이었다"고 했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대덕넷은 지난달 3일 영면한 故 이민화 회장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보았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공동체를 우선시 여겼고,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개척자였습니다. 시대를 앞서 보며 끊임없이 미래를 그렸습니다. 고인의 정신을 계승해 고인이 꿈꿨던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자 독자 여러분께 두 편의 기사를 전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편지>

"우리가 주로 스티브 잡스처럼 외국에 있는 분을 선구자로 기리는데요. 대한민국에서 진정으로 기려야 할 분은 이민화 회장이 아닌가 합니다."

이장우 idea doctor 회장(前 경북대 교수)의 말이다. 이 교수 말대로 이민화는 선구자였다. 그는 1985년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로 국내 시장을 개척하고, 세계로 나아가는 도전을 감행한다. 도전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 창업가들이 겪지 않도록 길을 만들어줬다.

이민화는 늘 현장 속에 있었다. 세계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필연적 몸부림이었다. 현장에서 그는 '속도경영'을 강조했다. 이민화는 "미국의 GE, 독일의 지멘스 등은 현장 요구가 제품에 반영되는데 1년이 걸렸지만 메디슨은 3개월 이내에 고객 요구를 반영했다. 속도경영만이 우리의 살길이었다. 철저한 경쟁사 기술 분석, 현장 목소리 신속 반영, 영업 능력은 경쟁력의 근간이었다"고 했다. 

메디슨은 창업 3년째인 1988년부터 세계 무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시장 지향적으로 설계된 소형 초음파기기는 미국 FDA 승인 이후 본격 수출된다. 1991년부터는 수출액이 국내 시장 매출액을 넘어섰다. 이후 전 세계 7개국 자회사와 70개국 대리점을 확보하며 전 세계 판매망을 구축했다. 

1980년대 후반 기술에 의한 세계도전, 속도 경영을 강조한 기업 전략은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봤는지 증명한다. 지난해 기업가치 평가액 539억 달러(약65조 3100억원)를 기록했던 '샤오미'도 현장 의견 신속 반영, 기술 중심, 세계 시장 개척 등을 기업 전략으로 삼았다. 샤오미보다 25년 앞서 창업한 메디슨이 샤오미가 추구하는 기업 모델의 전신이었던 셈이다. 

이민화는 해외시장 개척 의미를 "세계화를 구축하면 전 세계 영업망을 바탕으로 기술혁신이 가속화되고, 전 세계 서비스망을 바탕으로 고객의 문제가 파악된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시장과 기술의 연결망이 벤처기업의 궁극적인 핵심 역량"이라고 말했다.

◆ "후배들에게 해외 영업망도 공유"

이민화는 상생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이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생전 "시장은 공짜가 아니다. 세계시장 개척비는 연구개발비보다 훨씬 많은 시간, 비용, 노력이 들었다. 세계시장을 갖는 것이 기술보다 더 중요한 가치다. 새로운 의료 벤처기업들이 메디슨처럼 생고생을 반복할 이유가 없다. 이들에게 시장을 공유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한국 벤처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1999년 창업한 뷰웍스(당시 레이시스)는 실감나는 사례다. 김후식 대표는 "메디슨이 일본 도시바와 거래를 하면서 '우리 자회사가 있으니 거래를 해보라'고 연결해줬다. 기업 간 거래는 신뢰가 쌓여야 하고, 신뢰 안에서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창업 초기 메디슨이 활로를 개척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영업망을 확보하게 됐다. 네트워크 형성은 R&D 비용보다 훨씬 큰 비용과 노력이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뷰웍스는 2000년대 초 메디슨 소개로 도시바와 거래를 시작해 관계를 지속하다가 2004년 슬림팩(의료영상획득장치) 개발 비용 24억원을 지원받았다. 메디슨이 해외 영업망에 물꼬를 터주면서 해외 시장 개척도 본격화됐다. 뷰웍스는 2006년 2월부터 해당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2009년 4월 코스닥 상장까지 이뤄냈다. 지난해 매출액은 1300억원을 기록, 디지털 X레이 등 최첨단 의료영상 처리 장비 분야에서 세계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메디슨 출신으로 메디페이스를 창업했던 최승욱 아이알엠 대표도 "당시 메디슨이 앞에서 맏형 노릇을 하면서 해외에서 초음파 진단기를 팔고, 타 기업 의료 제품·서비스를 소개했다"면서 "메디슨이 해외 시장 개척에 도움을 준 것을 기반으로 각 기업들이 자체 역량을 키우고 또 다른 활로를 개척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당시 메디슨처럼 큰 회사가 초기 벤처기업을 도와줘 연합전선을 구축하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게 됐다. 메디슨은 돈을 벌면 자회사도 키우고, 자회사 아닌 기업에 투자하고, 심지어 경쟁사와 관계도 맺었다. 자기 회사를 넘어 의료기기 산업 전체를 키우려고 했다. 메디슨이라는 회사가 의료산업, 한국 벤처 생태계에 준 영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이민화 "외국에 종속될 수 없어···국부창출 목표"

이민화는 시대 사명을 자기화했다. 관찰자가 아닌 적극적인 해결사를 자처했다. 1987년 5월 이민화는 "메디슨맨이 초음파 진단기를 발굴해 빛을 발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종속될 수밖에 없다. 초음파란 보석을 우리가 캐내어 연마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은 우리 마음의 보석이다. 찬란한 보석은 게으른 자 눈에 갑자기 나타자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분발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 목표 달성을 위해 그는 '국부창출'과 '인간존중'을 내세웠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개인이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고, 이 과정에서 자아실현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개인의 목적 달성으로 조직은 성과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부를 창출한다는 목표였다. 메디슨 출신 한 기업 대표는 "당시에는 정말 미친 듯이 일했고, 주인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조직은 개인에게 자율성을 주고, 개인은 미친 듯 일하면서 뛰놀았다"고 회상했다.

메디슨은 조직원 자아실현, 기업 성과 달성, 국부창출이라는 기업 사명을 실현했다. 메디슨 사내벤처, 자회사 등 100여 개사와 합종연횡하며 세계시장을 개척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 의료기 산업 전체 성장률은 연간 7%에서 21%로 급증했다. 김후식 대표는 "메디슨 영향을 받아 뷰웍스에선 '담당자가 왕'이고, 자기 목표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다"며 "뷰웍스도 사내벤처를 장려하고, 사업 동반자로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 이민화는 끝까지 실패에서 배움을 찾았다

KAIST 도곡캠퍼스 내 위치한 창조경제연구회. 고인의 집무실에는 학습과 소통을 강조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진=김인한 기자>KAIST 도곡캠퍼스 내 위치한 창조경제연구회. 고인의 집무실에는 학습과 소통을 강조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진=김인한 기자>

그의 집무실은 1200권이 넘는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세상을 뜨기 전날까지도 책을 놓지 않았다. <사진=김인한 기자>그의 집무실은 1200권이 넘는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세상을 뜨기 전날까지도 책을 놓지 않았다. <사진=김인한 기자>

이민화의 집무실은 적막함만 가득했다. 집무실은 1200권이 넘는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한켠에는 그가 사람들과 교환했던 명함들이 놓여 있었다. 평소 학습과 소통을 강조하던 흔적 그대로다. 책상 위에는 그가 최근까지 읽었던 것으로 보이는 '써먹는 실패학', '마쓰시타 고노스케:오사카의 장사꾼에서 경영의 신으로' 책 두 권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도 책을 놓지 않았다. 그 내용은 '실패 분석을 통한 성공 추구가 조직과 나라 성장까지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와 '100년 기업을 만든 마쓰시타 고노스케 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이민화는 척박했던 의료 산업 토양에서 세계 시장 개척을 꿈꿨다. 이전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원 개개인이 불가능에 대한 도전을 장려했다. 조직원이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해 자아실현하며 조직 성과로도 이어지게 했다. 이후 100개 이상의 자회사와 함께 연합전선을 구축해 세계를 개척했고, 나아가 국부까지 창출했다. 

이민화는 한국벤처에 화두가 될 수 있는 수많은 유산을 남겼다. 지금이 이민화 정신을 되짚어보고 보다 구체화된 화두를 던져 그가 꿈꿨던 미래를 미약하게나마 그려야 할 시점이다.
 
고인과 학습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고인과 학습 모임에 참여했던 이들.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KAIST는 2009년 6월 30일 '이민화홀' 명명식을 갖고, 기념행사를 열었다. 맨 왼쪽 앞자리에 위치한 이민화.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KAIST는 2009년 6월 30일 '이민화홀' 명명식을 갖고, 기념행사를 열었다. 맨 왼쪽 앞자리에 위치한 이민화. <사진=창조경제연구회 제공>

*도룡벤처포럼, KAIST 창업원, 대덕넷이 오는 19일 오후 6시 30분부터 KAIST 본원 이민화홀에서 故이민화 회장의 추모 모임을 거행합니다. 고인의 정신과 넋을 기리고 싶은 분은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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