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현 남선기공 회장, "우주 등 첨단산업의 시작 공작기계"
"32년간 교류하며 신뢰 기반으로 한장 한장 기술 확보"
"한국 너무 공부 안해, 지속성 위해 독서 필요"

"공작기계 기술은 일본기업과 꾸준히 교류하고 그들의 기술을 존중하면서 조금씩 얻을 수 있었어. 그들은 정말 가까워져야 주거든. 이젠 기술 교류도 어렵게 됐어. 문제는 기계 기술은 여전히 일본에 10~20년 뒤진 상태라는 거야. 휴···."

그의 한숨은 깊었다. 우리나라 공작기계 기술의 산증인인 손종현 남선기공 회장의 목소리에는 우려가 가득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그에 따른 우리의 대응 등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한동안 산에서 머물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남선기공은 공작기계 분야 히든챔피언으로 손꼽힌다. 공작기계는 쉽게 말하면 기계를 만드는 기계로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부터 자동차, 우주선, 선박 등 모든 제조업의 기본이 된다. 남선기공은 1950년 3월 1일 손종현 회장의 부친인 손중만 1대 회장이 기계산업 발전을 위해  '만중'이라는 주물사업으로 시작, 올해로 창업 69년째를 맞는다. 손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남선기공에 입사했다.

남선기공의 공작기계 국산화는 일본의 대표 밀링 기업 '시즈오카'와의 기술제휴로 시작됐다. 손 회장은 "공작기계 국산화를 위해 일본의 이름있는 기업 500개 이상을 둘러봤다"면서 "겸손한 자세로 그들의 기술에 존경을 표했다. 그들도 우리의 한결같은 자세에 마음을 열었다"며 당시를 소회했다.

◆ 공작기계 분야 작지만 제조업의 필수요소 

공작기계의 산 증인인 남선기공에서 제작한 우리나라 첫번째 공작기계. 기술과 인력, 네트워크를 중히 여기며 남선기공은 우리나라의 정밀기계 기술을 끌어 올리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사진= 대덕넷 DB>
공작기계의 산 증인인 남선기공에서 제작한 우리나라 첫번째 공작기계. 기술과 인력, 네트워크를 중히 여기며 남선기공은 우리나라의 정밀기계 기술을 끌어 올리는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사진= 대덕넷 DB>
"공작기계 분야는 아주 작지. 그렇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분야야. 우리도 노력하고 있는데 지금은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의 제품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우리나라 제조업이 주춤하면서 공작기계 산업도 긴 불황에 빠졌어. 그런데 너무 길어. 1년 훨씬 넘게 지속되는 것 같아. 90년대 IMF, 2008년 금융위기에도 10개월을 넘기지 않았는데 말야. "

그는 경험에서 오는 직감으로 우려를 표했다. 손 회장은 설립자인 부친의 '개인은 가도 기업은 영속해야 한다'는 기업철학에 따라 기술과 사람을 중히 여기며 국산화에 집중해 왔다고 밝혔다.

남선기공은 1979년 일본과 미국에 공작기계 선반 40대를 수출하며 우리나라 공작기계의 역사가 됐다. 1982년 컴퓨터 수치 제어(CNC)화 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등에 수출길도 열었다. 국내 공작기계 기술을 해외에 알리는데 큰 역할이 됐다.

손 회장은 1987년 회사 운영에 직접 나선 이후부터 한일 공작기계 기업인 간 모임에 32년 동안 한 해도 빠지지 않았다. 일본기업인들도 그의 그런 모습에 감사해 했다. 기술교류와 공유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1998년 대리점의 연쇄부도, 금융사고, IMF까지 겹치며 승승장구했던 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건강이 악화됐을 때도 일본과의 교류에 빠지지 않았다. 손 회장은 당시 기술과 인재 기반의 전략으로 위기를 떨치고 무차입 기업으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그는 "학교 다닐때도 우등상은 못받았어도 개근상은 꼭 받았는데 그런 습성때문인지 일본과의 교류에도 한번도 빠지지 않았더니 20년째는 도요타 사장이 기념패를 주고 30년째는 금으로된 기념패를 주며 신뢰를 다졌다"면서 "한일 기업인의 관계는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되고 있다. 기계기업인은 특히 우직한 성품으로 더욱 그런것 같다"고 설명했다.

◆ 한국 기계산업, 독일 일본에 10~20년 늦어

손종현 남선기공 2대 회장. 올해 72세인 그는 여전히 책읽고, 어학을 공부한다. 그러면서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책 읽기를 권한다.<사진= 대덕넷 DB>
손종현 남선기공 2대 회장. 올해 72세인 그는 여전히 책읽고, 어학을 공부한다. 그러면서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책 읽기를 권한다.<사진= 대덕넷 DB>
"독일 기업이 만드는 정밀기계는 20g에 2억원이야. 우리가 만드는 공작기계는 1.5톤에 같은 금액이고. 우리의 특성이 있지만 그 프레임을 넘어서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손종현 회장은 한국의 기계산업이 발전했지만 일본에 10~20년 뒤져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는 50이 있으면 70, 80이 있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100이 있으면 50정도만 이야기 한다. 그들의 내공일 수도 있고 일본의 특성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언젠가 일본의 시마즈제작소에 갔어. 회장과 간부진이 나와서 한국 기업인들을 공항에서부터 극진하게 예의를 다하는데 감사했지. 회장이 회사를 소개하는데 직원이 노벨상 받았다는 이야기는 빼더라고(2002년 다나카 고이치 노벨화학상 수상). 그래서 한국 방송에 다나카 씨가 자전거를 타고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니는 모습이 방영돼 봤다고 하니 그냥 웃고 말더라고. 그들은 그래.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력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어도 다 보이지 않아."

손 회장은 "공작기계는 원자력, 자동차, 조선, 우주선 등 모두 분야에 꼭 필요하다. 공작기계가 없으면 안되는데 사람들이 이를 간과한다. 공작기계는 작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일본기업들도 기술을 쉽게 공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조업이 흔들리면 산업 전반이 위험한데 우리나라가 지금 그런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소재 부품 장비 개발에 예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면 기술은 개발하겠지만 그들도 그만큼 앞으로 갈것"이라면서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교류를 통해 협력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업에게는 특히 그렇다"고 조언했다.

올해 72세의 그는 여전히 어학을 공부한다. 악기 연습과 책 읽기도 빠지지 않는다. 인생 선배로서 그는 꼭 당부하고 싶은게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빠른 시간안에 성장했지만 이제 겨우 10위권에 들어왔어. 김형석 교수께서 책에서 이야기 했듯이 유럽의 작지만 강한 나라들이 그렇게 된데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책을 많이 본다는데 있더라. 그런데 우리는 거의 책을 안보고 있어. 정치인들도 공부를 너무 안해. 우리나라는 아직 공부하는 문화와 분위기가 필요해. 만들어 가야지."

남선기공 내 설치된 벽곡관.(사진 위) 우리나라 공작기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있다.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남선기공의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손 회장은 기술을 국산화하기까지 500개의 일본 기업을 둘러 봤다고 밝혔다.(사진 아래)<사진= 남선기공>
남선기공 내 설치된 벽곡관.(사진 위) 우리나라 공작기계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있다.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남선기공의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다. 손 회장은 기술을 국산화하기까지 500개의 일본 기업을 둘러 봤다고 밝혔다.(사진 아래)<사진= 남선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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