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소, SNS에서 추모 이어져···"나보다 타인, 국가 미래 생각한 분"
"벤처 창업 생태계 조성이라면 손해 감수, 먼 길 달려와 무한지지"
고인, 생전 '기업가정신' 강조···9월부턴 KAIST서 수업 앞두기도

[故 이민화 회장이 영면했다. 5일 저녁 7시 추도식이 거행됐다. 유족과 지인들의 추도사가 이어졌고, 평소 고인이 즐겨 부르던 '선구자'를 합창하며 추도식이 마무리됐다. <영상=대덕넷>]

지난 3일 오전, 벤처기업협회 설립자인 이민화 명예회장이 영면했다. 생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길, 경제가 도약하는 길은 벤처 창업에 있다고 강조해온 고인은 이 사실을 몸소 증명했던 실천가였다. 1985년 초음파 진단기 제조 업체이자 벤처 1세대 기업인 메디슨(現 삼성메디슨)을 창업하고, 없던 길을 개척하며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 창업가들이 줄일 수 있도록 벤처기업협회라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벤처 생태계를 위해 '밀알'을 자체했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은 결코 외롭지 않았다. 벤처 기업가뿐 아니라 국가 미래, 경쟁력을 고민하며 이 회장과 소통했던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이 빈소를 찾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민화 회장에게 기업가정신 교육, 영재 교육을 받았던 후배 창업가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이민화 회장님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학습하셨던 분"이라며 "무엇보다 벤처 생태계 조성에 헌신했다"고 했다. 故 이민화 회장은 1995년 벤처기업협회를 구성해 초대 회장을 맡아 5년간 봉직했다. 벤처 기업이 융자받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1996년 코스닥 설립과 1997년 '벤처기업특별법' 제정을 주도하며 벤처 생태계의 토양을 단단히 했다.

벤처기업인들과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고인에 대해 하나같이 나보다 공동체·지역·국가를 고민하며 미래를 고민했던 '대부'라고 입을 모은다. 또 실력과 리더십을 기반으로 후배 양성에 집중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현정 회장은 "실력, 리더십이 탁월했고 후배 양성에 집중하셨다"면서 "어려운 시기에 조성한 벤처 생태계에서 지금의 벤처들이 뛰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우 idea doctor 회장은 "공학도지만 인문 사회적인 감각을 지녔고, 학습을 꾸준히 하신 분"이라며 "미래를 내다보는 질문과 어젠다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도록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故 이민화 회장이 지난 3일 오전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각계각층에서 고인의 빈소를 찾고, SNS에서도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대덕넷>
故 이민화 회장이 지난 3일 오전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각계각층에서 고인의 빈소를 찾고, SNS에서도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대덕넷>
◆"벤처 생태계 조성이라면 손해 감수, 먼 길도 마다 안 해"

故 이민화 회장은 생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벤처 창업이 활성화되고, 민간에서 주도하는 창업 생태계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벤처들에 아낌 없는 투자를 하며 수많은 기업가를 탄생시켰다. 그 사례 중 하나가 X선 영상장치와 산업용카메라를 만드는 뷰웍스다.

김후식 뷰웍스 대표는 "1999년 대기업을 떠나 '광학식 디지털 엑스선' 사업의 협력자로서 메디슨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메디슨에 투자를 요청했었다"며 "사업계획서만 가지고 무작정 메디슨을 찾아갔는데 메디슨에서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故 이민화 회장은 뷰웍스 공동창업자들이 모은 자본금 6000만원보다 10배 이상의 자본금과 제품 개발비를 투자했음에도 공동창업자들이 70% 이상 지분을 유지하게 했다. 창업자들이 개발한 기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그들이 벤처 정신으로 독자적인 책임 경영을 하도록 한 것이다.

김후식 대표는 "협력의 방식에 있어서도 뷰웍스는 메디슨이 판매하는 시스템에 포함된 핵심 모듈을 함께 개발해 납품했는데, 그 실행 방식은 단순한 수직 계열화가 아닌 상호보완 형식의 공동 사업이었다"면서 "이렇게 개발된 두 가지 품목은 창업 후 4년간 뷰웍스가 생존한 기반이 됐고, 세계적인 의료기 제조사에 큰 규모로 제품을 개발, 납품할 수 있는 추천서가 됐다"고 언급했다.

고인은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벤처 생태계 조성에도 무한지지를 보냈다. 김채광 도룡벤처포럼 회장(現 충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 조정협력과장)은 "이민화 회장님께서 민간 주도의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면서 도룡벤처포럼이 잘 될 수 있도록 어려울 때마다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도룡벤처포럼 일이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해주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집안에 어려울 때 어르신이 생각나고, 국가가 어려우면 명재상이 생각나는데, 국가적으로 어려울 때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가야 할 시기에 이민화 회장님께서 떠나셨다"면서 "벤처, 스타트업계를 넘어 국가의 한 지도자를 잃었다. 과연 앞으로 우리에게 미래의 이정표를 줄 수 있을까 걱정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는 "KAIST 대학원 시절 벤처기업의 창시자인 선배님을 보고 창업에 도전하게 됐다. 메디슨을 만들어 글로벌 대기업이 하는 사업에 과감히 도전하시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창업의 꿈을 심어줬다"며 "벤처인들이 투자를 받으려면 나스닥 같은 기술 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코스닥을 만들자고 정부에 건의하셨던 분이다. 선배님이 하신 많은 일들이 IMF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정책 만드시고, 책도 쓰셨는데..."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고인 올 9월 KAIST서 '기업가정신, 창업' 강의 계획했으나...

고인은 마지막까지 후배 창업가 양성을 위한 '기업가정신' 교육에 끈을 놓지 않았다. 이달 말부터 시작되는 KAIST 가을학기에서 K-School의 '창업 융합 특수 논제'라는 과목에서 '유니콘 창업'을 학생들에게 교육할 예정이었다. 수업 내용은 기업가정신 교육을 비롯해 창업과 관련한 아이디어 개진·설계 방식을 논의하는 수업이었다. 

안성태 K-School 원장은 "9월부터 12월까지 총 3개월간 풀타임 강의를 해주시기로 했는데 먼저 세상을 떠나셔서 애석하다"며 "고인께선 전략과 철학이 굉장히 뛰어났고, 벤처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큰 그림을 보셨던 분"이라고 말했다.

故 이민화 회장은 2009년 KAIST 교수로 부임해 IPCEO(영재기업인교육원)를 설립했다. KAIST가 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차세대영재기업인을 육성·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식재산기반의 영재 기업인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였다.

빈소를 찾은 박건희 IPCEO 1기생은 "한국 교육에서 창업을 가르치는 교육은 없었다"며 "이민화 회장님께선 '기업가정신'이 모든 곳에서 근간이 돼야 한다는 취지로 교육을 하셨다. 어린 시절 받았던 교육을 통해 꿈, 진로, 가치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10년 전부터 이민화 회장님께서 4차 산업혁명을 말씀하셨다. 당시의 교육을 지금 받아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만큼 앞선 교육을 받았다"면서 "스킬이 아닌 가치관을 가르쳐주셨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쳐 주셨다. 기억에 남는 점은 항상 모든 사람이 기업가정신을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한다는 정신을 물려주셨던 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황동규 前 창조경제연구회(KCERN) 직원은 "IPCEO 교육을 통해 회장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며 "이민화 회장님을 만나 교육을 받은 시점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가치관이 통째로 바뀐 시기였고, 세상을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됐던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황 씨는 "이민화 회장님을 가까이 보면서 사회적 미션을 가진 분이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움직이게 되면 얼마만큼 사회를 바꿀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며 "창조경제연구회에서 함께 일 하면서 어떻게 세상을 바꿔야 하고, 왜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를 바꿔나가야 하는지를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정말 안타깝다"고 언급했다. 
 

[故 이민화 회장이 생전 차세대 영재기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강연했던 모습. <영상=KAIST IPCEO>]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전 6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경기도 이천 에덴낙원. 유족으론 아내 이사랑씨, 딸 이준희·이혜정·이다정씨가 있다. 5일 저녁 7시에 유족과 지인들의 추도식이 이어졌다. 아래는 추도사 중 일부.
 

5일 저녁 7시, 추도식이 거행됐고, 유족과 지인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사진=대덕넷>
5일 저녁 7시, 추도식이 거행됐고, 유족과 지인들의 추도사가 이어졌다. <사진=대덕넷>
▲유족
- 빈소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다. 아버지께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했음을 느꼈다. 많은 분들께서 가족들 만큼이나 안타까워하고 애통해 함을 느꼈다. 아버지와 함께하셨던 분들이 아버지께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주시리라 믿는다. 애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린다. 

▲홍석우 前지식경제부 장관 - 사랑하는 벗, 열정을 가지고 대한민국 미래를 함께 걱정했고, 학생들에게 큰 꿈을 가지라고 항상 격려했다. 고인은 중소기업 애로를 현장에서 지극 정성으로 찾았던 사람이다. 고인 자신이 혁신이고 벤처였다. 미소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힘들 때도 멋진 미소로 힘을 줬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항상 고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무 많은 일을 하셨고, 앞으로 하실 일이 많은 분을 하늘에서 데려가셔서 원망스럽다. 존경하는 친구 이민화 회장님, 하늘에서도 멋진 미소로 대한민국 미래, 벤처기업 앞날을 지켜봐주길. 지혜를 주길. 남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테니 걱정 말고 평안히 영면하시라. 

▲김명수 매일경제 부국장 - 이민화 회장을 처음 만난 건 1995년이었다. 24년 전이다. 햇병아리 기자로 중소기업을 담당했다. 기술 사업 아이디어가 있어도 자금난을 걱정하던 시절이다. 중기 해법으로 제시한 것이 한국 경제에 벤처 생태계 혁신이었다. 그 노력으로 지금 살아 숨 쉬는 생태계가 구축됐다. 벤처기업협회를 만들어 지식기반 경제 도입에 앞장섰다. 

한국 벤처 생태계 구축 선구자였다. 현장을 중시한 혁신가였다. 한국에서도 빌 게이츠, 아마존이 나와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말씀하셨다. 전국 대학 창업 붐을 일으키려고 노력도 했다. 20세기판 벤처 새마을 운동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인의 도전 정신에 불을 지폈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 재도약을 이끌어냈다. 국민에게 희망을 줬고, 재기의 에너지를 줬다. 이민화 회장은 앞선 외국 기업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초음파 기기 시장에서 미·일을 추월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에 있지만 일본에 없는 것은 벤처 생태계라고도 했다. 

벤처 대국의 꿈은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규제 혁파는 안개 속이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가시화되며 이제야 움직이고 있다. 이민화 회장의 꿈을 이어가겠다. 편히 쉬시기를.

▲이장우 박사 - 41년 전 무척 더운 날 1979년 대한전선 메디슨 창업을 같이 했다. 40년 세월을 함께 했다. 이민화 회장은 일만 했고, 검소했다. 메디슨을 떠나 골프를 독학으로 배웠고 6개월 만에 스윙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냈다. 와인 공부는 6개월도 안 돼 빈티지 연도까지 맞췄던 분이다. 그만큼 머리가 뛰어났던 분이었다.

이민화 회장은 누구를 원망하거나 편을 짜지 않았다. 항상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언제나 1세대 벤처인들 모두가 벤처 영웅이라고 얘기해왔다. 이민화 회장은 생각이 미래에 있어 항상 외로웠다. 훈장도 많이 받고 상도 많이 받았다. 가장 어울린 명예는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다. 한국 경제를 일으킨 기업인이란 칭호다. 천국에서도 열심히 뛰고 연구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하늘에서는 평안하시기를.

▲한정화 교수 - 이민화 회장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다. 명쾌한 논리로 방향을 제시했다. 혁신 기업가 정신의 아이콘이었다. 개척자이면서 선구자였다. 1980년대 중반 벤처 불모지 한국에서 롤모델이 됐고, 이민화 키즈를 만들었다.

경제 전쟁 시대에 벤처 생태계 만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한국 벤처 생태계 자금 순환, 창업자 연대 보증 철폐 등 제도적 기반 마련에 앞장섰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통찰력을 가지고 방향을 제시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어느 때보다 기술 혁신 전략이 아쉬운 시기다. 기술 보국 정신을 후배들이 계승하자. 새로운 미래 열어야 할 엄중한 시대에 기술 강국, 벤처 강국 만들어 후손들이 잘사는 나라 만들겠다. 편히 영면하시기를.

▲안건준 회장 - 혜안과 격려가 필요한 시기에 안 계셔서 애통할 따름이다. 위대한 선구자였다. 척박한 이 땅에 벤처란 씨앗을 직접 뿌리고 평생 노심초사하며 사셨다. 벤처의 숲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한다.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회장님의 상처와 절망, 아둔한 후배는 이제야 느낀다. 위대한 사회 운동가, 후배 격려하며 수많은 기업인을 키워내셨다. 대한민국 비전과 한민족의 비전을 제시하셨다. 기업, 문학, 역사 넘나든 그 폭과 깊이를 이제야 알겠다.

누가 이민화 회장을 대신할 것인가라는 큰 숙제가 놓이게 됐다. 고인께서 계시지 않는 자리를 후배들이 채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울 따름이다. 선배님이 소원한 벤처대국을 위해 나아가겠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