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R&R 일단락,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난항

과학계 현장 "출연연 R&R 재정립 필요, 예산 연결은 아쉬움"
과기부 "그동안 없었던 일, 예산·인력 타당성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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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애경 기자 - 2019.07.03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역할과 책임(R&R) 재정립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R&R에 기반한 인력과 예산 등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출연연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는 각 기관별 R&R을 바탕으로 인력과 예산 등 연구개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에 의하면 중장기 계획을 바탕으로 출연연이 매년 휘둘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과학기술계 현장에서는 R&R에 기반한 중장기 계획에 몇 년 뒤 인력, 예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출연연이 기관 차원의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를 수립하는 것은 과제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러 제도상 연구 책임자 중심으로 진행해오던 과제를 경영진에서 조정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PBS 비중이 높아 외부 수주 과제가 많은 기관은 경영진과 연구자 간 심도있는 고민과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기관장 임기는 3년으로 2~5년 후 중장기 계획을 임기가 상당 기간 지난 기관장이 수립하기에는 부담이 큰 것도 있다. 일부 기관은 예산 삭감을 피하기 위해 R&R을 수정해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를 작성, 기관의 R&R이 모호해지는 경우도 발생한다. 또 출연연 과제는 과기부 이외에도 산업부, 국토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부처의 과제가 맞물려 있어 부처 의견을 반영해 계획을 수립하기는 쉽지 않다.

과기부에서도 R&R과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수립의 어려움을 인정했다. 과기부 관계자는 "출연연이 R&R 재정립과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는 일은 그동안 없었던 일이다. 이번 R&R과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는 내부 구성원, 부처 관계자와 심도있는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만 가능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기부는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과학계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25개 출연연 등 기관별로 5차례의 협약식을 갖고 기관별 정체성, 역할에 대한 목표 수립을 추진해 왔다.  올해 5월 24일과 27일 대전과 진천에서 R&R 성과 공유 시간을 가졌다.

출연연은 지난해부터 내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별도의 팀을 구성해 R&R 재정립에 나섰다. 출연연의 특성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논의하고 중장기 연구개발 계획, 운영 계획 등을 수립하느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과기부는 지난달 말 한국화학연구원, KIST,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6개 기관의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계획을 우선 확정했다. R&R에 기반한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완성도가 높은 출연연은 내년 고유사업비 배정에서 우선권을 받게 된다.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확정은 인력과 예산의 타당성, R&R과의 연계성을 평가해 확정한다. 평가는 과기부와 연구회,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협의회 위원이 참여한다. 과기부 관계자는 "기관에서 수립한 중장기 계획이 쉽게 바뀌지 않도록 하면서도 대외변화, 환경 변화에 대응한 계획인지, 현장 불만을 담았는지 등을 평가한다"고 밝혔다. 

선정된 기관의 경우 출연금 비중이 높은 편이다. PBS 비중이 그만큼 낮아 R&R에 기반한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계획 수립이 수월했을 것이란 의미다.

실제 PBS 비중이 높은 출연연의 경우 R&R과 맞지 않는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로 지적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또 다른 기관은 최근까지 예산이 삭감되지 않는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를 마련하느라 R&R 수정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출연연은 여전히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계획 수립으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출범한 지 수십 년 된 출연연이 아직도 기관 R&R에 맞는 장기운영 계획을 수립할 줄도 모르느냐고 질타할 수 있겠다.

 과학기술계 현장에서도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시기적으로 출연연 R&R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탑다운이 아닌 바텀업의 R&R 재정립도 시의적절하다는 분위기다. 그런데 굳이 예산과 R&R을 엮어서 과기부가 출연연을 옥죄는 게 맞는가에 아쉬움을 표했다. 기관 예산과 직결되면서 R&R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연구 현장에서 기대하는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은 당장의 과제가 아닌 앞으로 기관이 가야할 방향을 수립하는 일이다.  때문에 3년, 5년으로 운영되는 과제 기획이 아닌 출연연의 존재 이유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수다.

출연연의 한 연구자는 "출연연의 존재 이유와 역할, 임무를 분명히 하면서 '해야하는 연구'에 집중하는 기반 마련이 우선돼야 했다"면서 "그런데 예산 확보를 위해 WHY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생각도 못하고 과제 기획하듯이 HOW만 논의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연구자는 "출연연이 R&R 수립과 수익구조 포트폴리오를 못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 방식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라면서 "안되면 누군가 국회, 기재부로 뛰어가야하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할지, 과기부 뿐만 아니라 기재부, 산업부까지 통합형으로 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과학계 관계자는 적극 움직일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관리기관 관계자인 그는 "우리도 예산이 삭감될 뻔 한적이 있다. 담당자가 기재부에 찾아가 필요성을 설명, 공감을 얻으면서 이를 막았다. 현실적인 지혜가 필요한 때도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 연구자들은 중복없이 출연연 R&R 실현을 위해 협의체나 TF 팀 구성을 제안했다. 출연연 관계자들은 "출연연이 가야할 큰 그림을 그리고 출연연간 상호보완 관계도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과학기술 분야 세계적 수월성을 확보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별도의 협의체나 TF팀를 구성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과기부는 이번 달 중순께  6개 기관 이외에 수익구조 포트폴리오 통과 출연연 2~3개를 추가 발표할 예정이다. 또 기관 간 중복 분야는 연구회 차원에서 조정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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