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및양자공학과 1월 말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결성
탈원전 전화위복 계기로 삼고···원자력 알리기 운동 나서
시민들에 '과학' 전달하며 과학계 정치 진출 필요성 '통감'

어려움이 전화위복 계기가 됐다.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학생들 이야기다. 정부가 급격하게 탈(脫)원전을 선언하며 60년 동안 쌓은 원자력 자립 기술은 한순간에 적폐로 몰렸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원자력을 공부하는 학생들 몫이 됐다. 

하지만 학생들은 현실에 굴하지 않았다.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원자력을 바로 알렸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원자력 안전성·경제성·환경성도 설명했다. 자료 찾기, 콘텐츠 만들기는 평일 저녁 시간, 주말 시간을 활용한다. 본분인 학업·연구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1월 22일 KAIST 학생들은 서울대·POSTECH·한양대 등과 연대해 녹색원자력학생연대를 결성했다. 현재 15개 대학까지 늘어났다. 학생들은 원자력을 바로 알리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거리에서 학생들 뜻에 공감해 서명한 이들이 벌써 4만5000명이 넘는다. 서명 시작으로부터 넉 달이 지났다. 지칠 법도 했지만 학생들은 주어진 여건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극제로 삼았다. 

"원자력을 공부하다 보면 좁은 범위를 집중적으로 공부합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면서 스스로 원자력을 왜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죠. 10년 가까이 원자력을 공부해 왔지만, 저 스스로 답을 못 내린 부분이 많았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오히려 원자력이 안전하고 앞으로도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깊고 넓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조용흠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은 거리로 나간 소회를 묻자 이처럼 웃으며 답했다. 탈원전 정책이 오히려 원자력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사람들에게 우수한 원자력 안전성·경제성·환경성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는 의미다.

거리에서 펼치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서명 운동'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학생들 앞에서 아무 근거 없이 반핵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고, 호통을 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학생들은 사람들과 소통 방식에 변화를 줬다. 과학·공학하는 입장에서 원자력을 전달하지 않고, 원자력을 통해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과학, 국민 속에 다가가려면? "공급자 아닌 수요자 시각으로 정보 전달해야"
 

 

왼쪽부터 위선희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 조용흠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사진=김인한 기자>
왼쪽부터 위선희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 조용흠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사진=김인한 기자>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대표(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졸업생)는 "초창기에는 정보 전달에 초점을 맞춰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설명해야 돼'라는 지극히 공급자 입장에서 접근했다"면서 "서명 운동을 독려하거나 전반적인 활동 전략에 있어서 너무 설명하려 들지 말고 키워드 몇 개만 전달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리에선 간결하게 원자력을 소개하지만, 가짜뉴스에 대응할 땐 과학적 사실, 데이터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재완 대표는 '핵을 인정하는 싸이언스'(핵인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키워드, 이미지를 활용해 원자력 관련 콘텐츠를 발신하고 있다.

위선희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은 "원자력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없다는 점을 설명하며 시민들의 이해를 도왔다"면서 "노점상을 하시는 분도 반핵이었지만, 거리에서 5~6시간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원자력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근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말하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과학 필요성 설득하기 위해 과학계 정치 진출 필요 

"과학하는 사람들이 정치권에도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가, 인류를 위해 과학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건 정치권이기 때문이죠. 결국 과학계의 목소리를 정치권에서 잘 전달해줄 수 있는 분들이 많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국민들과 넉 달간 소통해 온 조재완 대표는 '과학계의 정치권 진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학계가 적극적으로 의견 피력을 하고, 국민에게 원자력, 과학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위선희 박사과정생은 "정치권에서 에너지 정책을 중립적으로 갈 수 있게끔 국민들도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면서 "그러기 위해선 더 많이 알리고 소통해야 한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없고, 현재 24시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이라는 점, 수출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해 원자력이 왜 필요한지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용흠 박사과정생은 "일반인들에게 과학, 원자력이 다가가야 하는 이유는 과학이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며 "과학도로서 과학이 살아남아 의사결정을 과학적으로 할 수 있다면 인류에 득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현재까지 직접 서명을 받은 숫자는 4만 5000명이다. KAIST 이외에도 ▲경성대 ▲경희대 ▲단국대 ▲부산대 ▲서울대 ▲세종대 ▲영남대 ▲전북대 ▲제주대 ▲조선대 ▲중앙대 ▲한양대 ▲POSTECH ▲UNIST (가나다 순)가 참여하고 있다.   
 

◆왜 원자력, 과학을 해야 하나?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 <사진=김인한 기자>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 <사진=김인한 기자>
조재완=미세먼지, 온실가스 배출 없고 가장 안전하고 저렴하다. 그러면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위선희=원자력이라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전기가 개발됐다. 과학기술은 전세계 난제를 풀어가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에너지는 중요한 문제다. 인류가 양질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전기를 싸게 공급할 수 있다는 건 '에너지 복지'와 연관이 있다. 밤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할 수 있고, 산업 시설 가동이 가능하다. 과학, 원자력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본다.

조용흠=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은 인권 신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에는 누군가 불필요한 노동을 했다. 과학은 우리가 조금 더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닐까. 과학은 역사적으로 그런 역할을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원자력이란?
 

 

왼쪽부터 조용흠·위선희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사진=김인한 기자>
왼쪽부터 조용흠·위선희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박사과정생. <사진=김인한 기자>
위선희=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아 졸업하면 환경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원자력이란 온실가스, 미세먼지를 저감하기 위해 지금 당장 5~6기를 짓고 싶은 존재다.

조용흠=원자력 사태를 겪으면서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비난을 받으면 화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아 내가 이 분야를 좋아하구나'라고 느끼게 됐다. (그래서 원자력은 여자친구인가?) 원자력, 여자친구는 아니고 사랑이다.(웃음)

조재완=원자력은 사명이다. 학부 시절부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언젠가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줘야 할 시기가 올 거라고 본다.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식량과 전기라고 생각한다. 가장 필요할 때 제가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사명이다. 평생에 걸쳐 이 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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