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한림원, 해방이후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
기계·에너지·정보통신·건설·바이오분야 등 선정
400여명 집필진 참여해 4년간 작업

국내 최초의 동력경운기, 국산 고유모델 승용차 시대를 연 포니자동차, 국내 B형 간염 퇴치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백신 개발, 에너지 자립이 가능하게 된 원자력 기술, 한국을 정보통신 강국 반열에 올린 전자교환기 TDX-1 등. 한국의 각분야 산업별 시초 기술과 분기점이 된 제품이 선정됐다. 

대한민국 산업기술의 발전 과정이 집대성됐다. 1945년 이후 70년간 국내 모든 산업 분야를 총망라한 산업기술발전사가 처음으로 발간됐다. 과학기술 불모지 국가로 미국과 일본의 기술을 베끼던 한국이 광복이후 70년을 지나며 원자력, 반도체, 인터넷 등 첨단 기술 강국으로 우뚝 섰다.

한국공학한림원(회장 권오경)은 해방 이후부터 2015년까지 국가 10대 산업의 기술발전 과정을 총 10권 1세트로 담아 '한국산업기술발전사'를 발간했다.

권오경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3일 열린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산업기술발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기록해 그 경험을 후대에 전수하고,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연구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한국산업기술발전사'를 발간하게 됐다"고 편찬 목적을 설명했다.

이어 권 회장은 "산업기술 개발 주역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국 특유의 산업기술 발전모델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책자가 산업계, 연구계, 학계 전반의 귀중한 기초 연구자료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공학한림원은 3일 서울에서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사진=강민구 기자>
한국공학한림원은 3일 서울에서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사진=강민구 기자>
◆대동공업 경운기 개발 등 대표 전환점 기술로 제시

이날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편찬기획위원과 산업별편찬위원장들은 전환점이 된 대표 기술들을 꼽았다. 

기계 분야에서는 대동공업의 경운기 개발과 창원 기계공업단지 조성 등이 선정됐다. 소재 분야에서는 포항제철 주도의 철강기술 개발, 바이오 분야에서는 바이오시밀러와 항체치료제 산업이 각각 제시됐다.

에너지·자원 분야에서는 원자력 기술이 선정됐다. 김도훈 서강대 명예교수는 "개발도상국을 자주 방문하면서 에너지 자급이 없었으면 산업기술 발전이 안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면서 "원자력기술은 지난 1950년대부터 기술력을 키워오면서 에너지·자원의 대표적 업적이 됐다"고 말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외국전자교환기 의존에서 벗어나게 해준 국내 최초 소용량 전자교환기(TDX-1) 개발이, 섬유·식품 분야에서는 폴리에스터 타이어공업화, 스판덱스 사업화가 선정됐다. 권욱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기·전자 분야 사례를 제시하며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TV, 음향영상기기, 가전, 세탁기, 냉장고 등을 개발하며, 산업 후발주자서 수출국으로 거듭났다"면서 "진공관라디오부터 4K, 4MB D-RAM 등을 분기점 기술로 본다"고 강조했다. 

건설 분야에서는 성수대교 붕괴가 기술 전환점으로 제시됐다. 장승필 서울대 명예교수는 "건설은 지난 1960년대부터 조국 근대화에 기여했던 기술로 성수대교 붕괴 직후 20여년간 안전기술을 확보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면서 "이순신대교 건설로 자력 기술을 확보한데 이어 미래 인프라를 위한 건설기술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부고속도로, 대동공업 동력경운기, 헤파박스, 경성방직, 포항제철, 대한제분, 연탄화덕, 포니자동차, 금성사 라디오, TDX-1 개발, 충주비료공장.(왼쪽부터)<사진=한국공학한림원 제공>
경부고속도로, 대동공업 동력경운기, 헤파박스, 경성방직, 포항제철, 대한제분, 연탄화덕, 포니자동차, 금성사 라디오, TDX-1 개발, 충주비료공장.(왼쪽부터)<사진=한국공학한림원 제공>
◆韓 산업발전과정 연구 부족···400명 집필진 4년간 작업끝에 완성

공학한림원에 의하면 그동안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장은 국제적 관심을 받았지만 발전과정 연구는 거의 전무했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이미 18세기부터 산업기술 발전과정을 주제로 연구를 활발히 진행했고, 일본도 산업기술사자료정보센터를 중심으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지속적으로 도출해 왔다.

발간사 10권.<사진=한국공학한림원 제공>
발간사 10권.<사진=한국공학한림원 제공>
이에 비해 한국은 양적 성장과 확장에 치중하며 그 과정 연구를 등한시해 왔다. 해방 이후 분야별로 발전을 주도한 개발 주역들이 고령화되면서 성과와 발자취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공학한림원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2016년 편찬기획위원회를 구성하고 4년에 걸쳐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 작업을 수행해 왔다. 

편찬기획위원회는 전체 산업을 11개 분야로 분류했고, 이를  ▲기계 ▲소재 ▲운송 ▲전기전자 ▲정보통신 ▲화학 ▲바이오·의료 ▲에너지·자원 ▲건설 ▲섬유·식품 등 11개 분야를 총 10권으로 나눠 발간하는 편찬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11인의 분야별 편찬위원장과 부문별 집필진을 선정해 편찬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집필진이 대규모로 꾸려졌다. 10개 분야의 대분류는 약 50개의 중분류와 170여 개의 소분류로 세분화됐다. 산·학·연 전문가들이 총망라된 부문별 집필진 277명이 선정됐다. 

각계 원로들이 포함된 100여 명의 공학한림원 감수위원이 사실확인과 함께 배경의 해석, 사건의 첨삭 등 행간 등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4년 동안 집필한 분량만 원고지 약 3만 매. 소설책 크기의 단행본 30권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다. 현업 종사자, 원로 관계없이 국내 최초로 편찬되는 산업발전사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감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척박한 기반과 6·25 전후 폐허 속에서 맨손으로 고도성장을 일궈낸 산업기술인들의 자랑스러운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방대한 문헌과 자료들을 처음부터 다시 들춰보며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역사를 작성했다.  
  
각기 다른 부문의 수많은 집필진과 감수진이 원고를 집필하면 서술 형식과 목차 체계가 저마다 달라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편찬위원회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리 ▲기술도입기 ▲기술체화기 ▲기술선도전환기 ▲기술선도기로 이어지는 4단계 서술 체계를 제시했다.
 
기술개발 과정과 주체, 핵심내용, 위기극복, 기타 산업에 미친 영향, 수상 내역, 흥미로운 에피소드 등 필수 구성요소들을 정리해 원고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문체와 표기의 통일을 위해 기술사 전공자, 편집자들을 투입해 윤문과 교정·교열 과정도 진행했다. 이처럼 체계 정립과 각종 조율을 위해 초기부터 개최된 총 272회의 편찬회의를 거쳐 탄생했다.  

편찬기획위원과 산업별편찬위원장들이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편찬기획위원과 산업별편찬위원장들이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편찬위원장들 "과거 되새기며 국가 미래 이끌 것" 당부

편찬기획위원과 산업별편찬위원장들은 이번 산업기술발전사 발간 의미도 강조하며, 침체기에 빠진 한국 산업계가 이를 참고하며 대응해 나가기를 당부했다. 

최항순 서울대 명예교수 겸 한국산업기술발전사 편찬기획위원장은 "해방 이후 70년간 산업기술 노하우를 집대성한 귀중한 사료"라면서 "대한민국 산업기술인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새로운 혁신 동력을 찾아볼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으며, 후대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고도성장을 이뤄낸 선대 산업기술인들의 노력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해외에서 과학기술을 도입해 이를 산업기술로 연결, 수출해서 국가 발전을 이끌었다"면서 "이제 과거와 달리 독자기술로 세계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시점에서 선배들의 노하우와 과정을 되새기며 산업기술의 새로운 '시대적 과제'를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항구 소암시스텔 회장은 "외산 수입에서 벗어나 지난 1980년대 전자교환기 국산화 기술이 산업체로 확산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앞당겼다"면서 "중국의 추격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통신·인터넷 분야 강국으로 자리잡게 한 사례를 되새겨봤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손욱 前 삼성종합기술원장은 "대동공업 등 훌륭한 기업가가 이끈 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한 사례를 보며 리더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면서 "훌륭한 기업가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산업기술발전사 책자는 무상으로 대학도서관, 주요 연구원 등에 배포될 예정이며, e북 형태로 한국공학한림원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에 참여한 편찬기획위원과 산업별편찬위원장들의 단체 사진.<사진=한국공학한림원 제공>
'한국산업기술발전사' 발간에 참여한 편찬기획위원과 산업별편찬위원장들의 단체 사진.<사진=한국공학한림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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