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단위 새 시대 열렸다···"전문가서 대중에게로"

[대담] 표준연 물리표준본부 박사 3인
20일 세계 측정의 날, '물리 법칙·상수' 기준으로 4개 단위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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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정 기자 - 2019.05.19

"이제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표준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진정한 표준의 독립이죠."
 
전 세계에 '단위 재정의'가 발효될 오는 20일 세계 측정의 날. 기본단위 킬로그램(kg·질량), 암페어(A·전류), 켈빈(K·온도), 몰(mol·물질량)이 모호한 기준에서 벗어나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기본상수'에 따라 새롭게 정의된다. 특히 기본단위 7개 중 유일하게 금속 덩어리 '원기(原器)'를 기준으로 삼았던 질량의 단위는 130년 만에 원기에서 독립한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 박사 세 명은 이날이 곧 '표준의 독립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제 원기가 없는 국가나 민간 연구소·기업도 물리학 법칙과 기술력을 갖추면 얼마든지 더 정확한 표준 정의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1년 전부터 단위 재정의를 국민에게 알려 온 이호성(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박연규(물리표준본부장)·양인석(열유체표준센터장) 박사를 만나 재정의의 의미를 들어봤다.
 
◆ "기술 발전만큼 측정 정확도 높아질 것"
 
세계 과학자들은 단위 재정의를 위해 25년을 준비했다. 단위의 정의가 바뀌어도 일상생활과 산업계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고정된 값, '상수'를 찾는 것이었다. 이 박사는 "과학자들은 측정 기준이 될 상수를 찾으려 노력해왔고 점점 그 불확도가 줄어들고 있었다"며 "결국 그 값이 수렴해 단위 재정의에 충분한 불확도를 달성했다고 보고 이번에 값을 고정했다"고 설명했다.
  
질량(kg)·온도(K)·전류(A)·물질량(mol)의 기준이 될 상수는 각각 플랑크상수(h) 6.62607015×10-34 J·s, 볼츠만상수(k) 1.380649×10-23 J·K-1, 기본 전하(e) 1.602176634×10-19 C, 아보가드로상수(NA) 6.02214076×1023 mol-1이다.
 
-상수와 단위는 어떤 관계인가?

이호성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 <사진=한효정 기자>이호성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 <사진=한효정 기자>
이호성(이하 이)
: 플랑크상수는 키블저울을 통해 계산됐다. 이 저울의 한쪽에 1 kg 원기를 놓고 중력을 받게 하고 다른 쪽은 전자기력을 받게 하면서, 저울이 균형을 이룰 때 전자기력을 측정하면 플랑크상수를 알 수 있다. 플랑크상수는 역학적 물리량과 전자기적 물리량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박연규(이하 박) : 암페어는 플랑크상수를 측정하며 나온 데이터를 종합해 자연히 정의됐다. 양성자 하나가 가진 기본 전하 e의 값을 고정하고, 1초에 통과한 전하량을 측정해 전류를 알아낸다.
 
양인석(이하 양) : 볼츠만상수는 기체 분자의 운동 에너지와 온도를 연결한다. 이 상수를 이용하면 물질이 어떠한 에너지 상태에 있어도 온도를 정확하게 구할 수 있다. 아주 낮거나 높은 온도에서 물질의 전기적 성질과 복사 에너지 등을 관찰할 때도 쓰일 수 있다.
 
: 몰은 그동안 '탄소-12'라는 특정 원자가 12 g일 때 들어 있는 원자의 개수로 정의됐다. 이번 재정의에서는 격자(cell)로 이뤄진 실리콘 구체에 들어 있는 실리콘 원자의 수와 원자의 질량을 측정해 아보가드로상수를 결정했다.
 
-단위의 기준이 상수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지금까지 질량의 표준이었던 1 kg 원기의 공식 복제본은 국가 표준연구소에만 있어서 무게를 아주 정확히 측정하려면 표준연에 와야 했다. 이제는 달라질 것 같다. 한 제약회사에서 현존 키블저울보다 정확한 저울을 만들어 국제 비교에서 인정받으면 이들이 1차 표준을 갖게 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서 누구나 표준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문이 생겼다.
 
박연규 물리표준본부장. <사진=한효정 기자>박연규 물리표준본부장. <사진=한효정 기자>
: 기술력으로 대결하는 시대가 왔다. 이제 한 국가의 질량 표준의 정확성은 키블저울을 만들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 그동안 모든 표준물질은 표준연을 통해 보급됐는데 앞으로 다양한 방법이 생길 것 같다. 선진 표준연구기관이 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
 
: 온도의 경우, 볼츠만상수가 고정되니 무궁무진한 방법을 써서 정밀한 온도를 측정할 가능성이 생겼다. 100년 후를 상상해보자. 기체 분자 한 개를 추적하는 기술이 개발되면, 분자 운동 속도를 계산해 분자의 온도까지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 상수가 있다는 것은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측정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변화다.
 
◆ 표준연, 키블저울·광시계 등 연구···국제 비교 준비 중
 
단위가 재정의 됐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질량의 경우 플랑크상수를 이용해 1 kg 질량을 얼마나 정확히 만들어내는지 국가별로 몇 년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표준연은 올해 있을 질량 국제 비교를 준비 중이다. 박 박사는 "질량의 상대 불확도가 2×10-7 이하가 되어야 하는데 올해는 기대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키블저울보다 더 작은 질량을 측정할 수 있는 '마이크로 키블저울' 개발도 과제다. 또한 다음 재정의 유력 후보인 시간(s)의 기준이 될 '광원자시계' 연구가 여러 나라에서 진행 중이다. 광원자시계는 현재 기준인 세슘원자시계보다 100배 정도 정확하다고 알려졌다.
 
-표준연에서는 단위와 관련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 연구소에서 개발한 1 kg 키블저울을 바탕으로 마이크로 키블저울을 만들고 있다. 책상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이 저울은 1 mg 이하 물체를 잴 수 있다. 아주 정밀한 질량 측정이 필요한 분야에서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 전류의 경우, 전하량 e를 가진 전자의 개수를 세려면 단일한 전자를 생성하고 제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표준연은 전자를 발생시키는 단전자펌프의 소자를 개발 중이다. 또, e는 측정 없이 계산된 값이기 때문에 양자 상태에서도 옴의 법칙이 성립되는지 연구하고 있다.
 
양인석 열유체표준센터장. <사진=한효정 기자>양인석 열유체표준센터장. <사진=한효정 기자>
: 볼츠만상수를 활용한 음향기체온도계를 만들고 있다. 현재 -40 ℃에서 200 ℃까지 측정하는 데 성공했고, 측정 범위를 넓히고 정확도를 올리는 것이 목표다. 국제온도눈금의 정확도 개정에 기여하기 위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 표준연은 이터븀(Yb) 원자를 이용한 광시계를 개발했다. 광시계를 국제 비교하기 위해 국제도량형국은 광시계 한 개를 국제우주정거장에 올리고 이 시계와 지상에 있는 각 국가의 광시계의 시간을 비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표준연도 여기에 참가 신청을 했다.
 
연구원들은 마지막으로 단위의 정의는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필요한 연구라고 강조했다. 한 국가만 측정 결과를 얻어서는 안 되고, 몇 개국이 비슷한 수준으로 우수한 결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 같이 잘해야 표준도 정확해진다는 뜻이다.

박 박사는 "그렇다고 다른 국가의 기술과 능력을 가져올 수는 없다"며 "선진국을 이기는 경쟁력을 갖춰 우리나라가 표준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도록 앞으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세 연구원은 1년 전부터 단위 재정의를 국민에게 알려왔다. <사진=대덕넷>세 연구원은 1년 전부터 단위 재정의를 국민에게 알려왔다. <사진=대덕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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