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호 KIST 연구원, 포브스 '韓 차세대 리더' 선정
건조한 대기서 수분 모으는 장치로 세계 첫 입증 
"성과 쫓기보다 실생활에 필요한 연구할 것"

김현호 KIST 연구원이 사막 등 건조한 기후에서 수분을 모을 수 있는 실험을 시연하고 있다.<사진=KIST 제공>
김현호 KIST 연구원이 사막 등 건조한 기후에서 수분을 모을 수 있는 실험을 시연하고 있다.<사진=KIST 제공>
가수 블랙핑크, 배우 김태리, 축구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 등과 함께 아시아 30세 이하 리더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가 있다. KIST 국가기반기술연구본부 물자원순환연구센터 김현호 연구원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해마다 기업가, 과학자, 스포츠 선수, 연예인 등 10개 분야에서 지역별로 30세 이하 차세대 리더들을 선정해 발표한다. 올해는 30세 이하 아시아 리더 300명을 선정했다. 한국 차세대 리더 28명이 포함됐다. 김 연구원은 건조한 지역에서 태양열을 활용해 대기 중 수분을 모으는 장치 작동을 세계최초로 입증한 공로가 인정돼 차세대 리더로 선정됐다.
 
'대기 중 수분을 모은다'는 생각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그는 해당 연구가 실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40도를 웃도는 사막 한가운데서 연구를 시도, 값진 결과를 얻었다.
 
그는 "많은 과학자가 지구온난화와 사막화 등으로 물 부족이 점점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사막화가 심화한 곳이나 물이 부족한 마을 등에 태양열을 활용해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할 만큼의 물을 공급할 수 있도록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뜨거운 사막 열기·오존 경보 속에도 식지 않은 연구 열정
 
"차세대 리더 선정 후보로 선정됐다는 이야긴 들었지만 최종 선발된 건 뉴스 보도를 보고 알았습니다. 막연하게 시작한 연구였는데, 운이 좋았게 논문으로 실리고 좋은 소식까지 듣게 됐네요. 연구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김 연구원이 해당 연구를 시작한 것은 MIT(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대학원생 때다. 석사 시절부터 열저장 관련 연구를 해온 그는 대기 중의 물을 흡착할 수 있는 흡착제를 이용, 물을 얻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연구에 뛰어들었다.
 
사실 대기 중 수분 흡착은 '물먹는 하마'와 같은 습기제거제와 제습기를 등에서도 볼 수 있듯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다만 이 기술들은 습도가 낮아지면 효율도 낮아지기에 건조한 지역에서의 물 공급은 어려웠다.
 

김현호 연구원은 흡착물질과 태양열을 이용해 건조한 환경에서 수분을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 성과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점이 인정되며 그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진행하는 30세 이하 아시아 차세대 리더 300인에 선정됐다.<사진=KIST 제공>
김현호 연구원은 흡착물질과 태양열을 이용해 건조한 환경에서 수분을 모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 성과는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점이 인정되며 그는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진행하는 30세 이하 아시아 차세대 리더 300인에 선정됐다.<사진=KIST 제공>
김 연구원은 건조한 환경에서도 알아서 수분을 모을 수 있는 흡착물질과 태양열을 사용해 흡착한 수분을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로 수확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그에 따르면 개발한 흡착제는 자연적으로 공기 중 습기를 빨아들이게 되는데, 이 물을 수확하기 위해 태양열을 활용해 열을 다시 한 번 가한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흡착된 습기가 빠져나오게 되고 수확장치 안 습도도 높아지면서 이슬점이 상승한다. 이슬점이 주위 온도까지 상승하면 자연적으로 물이 응축되며 액체화 된다.
 
흡착물질은 금속유기구조체 MOF(metal organic frameworks)를 사용했다. MOF는 물질 표면에 수많은 기공이 형성돼있어 가스나 수분을 흡착할 수 있는 기능을 갖는다. 물 부족과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핵심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김 연구원은 해당 연구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상대습도 20%인 경우 1kg의 MOF 흡착제를 가지고 하루 동안 3kg 정도의 물을 수확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프로토타입 개발과 시뮬레이션 연구 성과는 2017년 사이언스지에 게재됐고 세계경제포럼과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선정한 2017년 세상을 바꿀 10대 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논문 게재 이후 김 연구원은 동료와 함께 실제 건조한 환경에서 얼마나 물을 얻을 수 있는지 실험하기 위해 2017년 5월 미국 애리조나주의 사막지대로 향했다. 사막 한가운데서 연구할 순 없었기에 애리조나에 위치한 대학 옥상을 연구 무대로 삼은 그는 2주간 길게는 하루 12시간 넘게 대기 중 물을 흡착하고 수확하는 실험을 했다. 비교적 덥지 않은 5월이었지만 사막 더위와의 사투가 치열했다고.
 
건조한 대기에서 수분을 모으는 과정.<사진=KIST 제공>
건조한 대기에서 수분을 모으는 과정.<사진=KIST 제공>
"실험하는 낮엔 40도가 넘게 올라가더라고요. 연구 동영상도 촬영하고 컴퓨터도 켜야 하는데 너무 태양열이 뜨겁다 보니 알루미늄 포일을 씌웠지만 뜨겁긴 마찬가지였죠. 오존 경보도 자주 뜨고요. 아랍인들이 얼굴을 싸매는 이유를 알겠더군요(웃음)."
 
태양과의 사투 끝에 얻어낸 물을 가지고 그는 성분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바로 쓸 수 있을 정도의 깨끗한 물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김 연구원은 "MOF가 유기물질과 금속 등으로 이뤄진 다공성 물질인 만큼 물을 뽑아낼 때 오염물질이 함께 빠져나오는 것을 우려했지만 다행히 깨끗한 물이었다"며 "수분만을 흡착하는 과정이라 수확된 물엔 미네랄은 없었지만, 미네랄은 음식에서 섭취할 수 있고 또 물에 따로 넣어서 마실 수 있으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바닷물 속 염류를 제거해 마실 수 있는 물로 만드는 해수 담수화 기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수 담수화 기술은 해안가 지역에서 바닷물을 끌어 올려 정수한 후 필요한 곳으로 옮기는데, 사막화가 심각한 곳이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은 곳까지 물을 이동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우리 기술은 태양열을 활용하면서도 대기 중 수분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족한 소규모 마을이나 커뮤니티를 표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김 연구원은 저렴한 흡착제 개발과 더 많은 물을 얻을 수 있도록 연구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는 "우리가 만든 물 수확 장치는 신물질을 활용한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향후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공학적으로 디자인해 저렴한 흡착제를 사용한 장치를 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성과 쫓는 연구 아닌 필요한 연구하는 과학자 꿈"
 
"운이 좋아 하이임팩트에 논문을 실을 수 있었지만, 진짜 중요한 건 필요한 연구, 실생활에 유용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KIST의 연구진, 해외 연구진과의 협업을 통해 제가 하는 연구가 실생활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에너지와 물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는 어릴 적 SF영화를 좋아하는 우주여행을 꿈꾸는 꼬마 소년이었다. 과학자의 꿈을 안고 '에너지'와 관련된 연구를 하기 위해 기계공학과에 입학하고 실제 연구를 하면서 꿈에 가까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연구도 꿈도 많다.
 
김 연구원은 대기 중 수분을 모으는 연구와 함께 KIST에서 에너지와 열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연구를 할 계획이다.
 
그는 "신재생에너지가 강조되고 있지만, 태양광 에너지의 경우 태양이 떴을 때만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 낮에 생산한 전기를 잘 저장해 밤에도 균일하게 나눠주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열을 잘 저장해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싣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연구를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실생활에 유용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연구를 하면서 에너지와 물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현호 연구원을 KIST에서 만났다. 그는 "성과를 쫒기보다 인류에게 필요한 연구를 하면서 에너지와 물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사진=김지영 기자>
김현호 연구원을 KIST에서 만났다. 그는 "성과를 쫒기보다 인류에게 필요한 연구를 하면서 에너지와 물 분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사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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