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호 단장, '지식재산과 혁신경제' 포럼서 기술사업화 사례 발표
"대덕연구단지, 자생적 혁신 클러스터 만들기 고민해야"

"기술에 아무리 투자해도 가치 있는 결과로 전환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연구자는 기업이 요구하는 요소 기술을 모르고, 기업은 기술을 흡수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KIST는 기술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산·학·연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드는 '이어달리기'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지난 29일 열린 '지식재산과 혁신경제' 포럼 2차 세미나에서 최치호 KIST 기술사업단장이 발표한 기관의 사업화 전략이다.

이어달리기 체계는 ▲미지 영역을 개척해 새로운 개념을 찾고 ▲기술 개선을 거쳐 ▲사회문제 해결법을 제시하고 ▲산업체 수요에 맞는 기술로 거듭나는 4단계 연구로 구성된다. 최 단장은 "연구 과정에 기업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며 우리는 기업과 연구자의 간극을 메우는 데 주력한다"고 강조했다.

최치호 단장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전문위원, 특허청 산업재산권법제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한효정 기자>
최치호 단장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지식재산전문위원, 특허청 산업재산권법제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한효정 기자>
◆ 실험실 기술-중소기업 제품-대기업 시스템으로 연결

KIST는 이 전략에 따라 브릿지 프로그램(Bridge Program)을 운영 중이다. 기업이 참여해서 사업화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KIST가 돈을 투자하고 나중에 기업이 성공하면 투자금액을 환수받는 사업이다. 사전에 기업과 연구자가 모여 기술이 실행될 수 있는지를 묻고 문제 해법을 충분히 논의한 다음, 이 내용을 바탕으로 연구에 돌입하는 점이 특징이다.

브릿지 프로그램을 통해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 제품 양산까지 이뤄진 대표 사례는 2013년부터 진행된 '차세대 촉매기술 사업화'다. KIST는 선박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질소와 물로 바꾸는 촉매를 개발, 물질 특허를 출원했다.

최 단장은 "이 기술을 중소기업에 이전한 다음에도 연구자와 기업이 함께 부품을 만들고 스케일업 해 시장에 나갔다"며 "이후 이 제품을 대기업인 포스코의 시스템에 적용해 목표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미래에 열릴 시장을 대비한 사업화도 진행 중이다. KIST는 연구진이 개발한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재활용 기술을 바탕으로 조인트 벤처 '카텍에이치'를 설립했다. CFRP는 자동차 차체에 쓰이는 가벼운 소재다. 앞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 CFRP를 태우거나 매립할 수 없기 때문에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게 녹이는 기술이 필요하다. 

KIST는 카텍에이치 대표로 외부 전문가를 영입했고, CFRP 폐기물을 처리하고 이를 녹인 물질로 중간재를 만들어 파는 사업화 모델을 세웠다. 최 단장은 "실험실 단계에 있는 기술을 가져갈 기업이 많지 않아 브릿지 프로그램으로 벤처를 만들었고 현재 기업은 성장 중"이라며 "이처럼 사업화 전략을 제시하는 기술이전 전담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홍릉 바이오혁신 클러스터서 '의사·과학자' 연구 협력

KIST는 연구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생적 혁신 클러스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아시아 바이오의료벤처 도시를 목표로 정부·서울시·연구기관이 조성하는 홍릉 바이오혁신 클러스터다. 최 단장은 "국가 경쟁력은 세계적인 혁신 클러스터를 몇 개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다"며 "혁신 정책을 세울 때 클러스터 조성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릉 클러스터를 움직이는 핵심 원동력은 중개연구협력체계. 기술을 의료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고려대·경희대·삼성병원 등이 클러스터에 들어와 의사와 과학자가 함께 연구한다. 여기에 기술금융기관이 사업화 전주기에 투자하는 협력 체계가 뒷받침된다.

홍릉은 해외 창업 클러스터와도 손을 잡았다. KIST는 미국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에 매년 2개 기업을 진출시키자는 목표로 'KIST-하버드 Lab-Central'과 '하버드 Catalyst' 창업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최 단장은 "보스턴 바이오클러스터는 벤처캐피털과 미국국립보건원(NIH)의 투자가 활발한 곳으로 여기에 세계 8대 제약사 중 7개가 들어와 있다"며 "병원과 함께 국내 실험실 기술을 가치 있게 전환하려 노력 중"이라고 소개했다.

최 단장은 일본의 바이오클러스터 '고베의료산업도시(포트아일랜드)'도 언급했다. 고베의료산업도시는 일본이 iPS 세포의 응용연구를 빠르게 추진하기 위해 340개 기업과 연구소를 모아 놓은 곳이다. 그는 "일본 대학과 연구기관은 미국이나 다국적 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고 판단, 특허 활용성과 가치 극대화를 위해 IP 포트폴리오 구축에 나섰다"고 전했다. 

최 단장에 따르면, 산·학·연·병이 밀집된 이곳에서는 기초-임상-응용-실용화-상품화-판로 확대가 이뤄진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지원해 연구기관에서 특허가 나오면 기술사업화 전문회사가 이를 장비나 치료 업체에 연결하고 로열티를 분배한다. 또한 스타트업을 성장시키는 회사도 별도로 있어 인큐베이션, 엑셀러레이션, 스핀오프 등을 지원한다. 

최 단장은 "이런 흐름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클러스터 교류회와 재생의료 공부회 등 교류 문화다. 동경과 교토 사람들도 이곳에 와서 공부하고 현안을 공유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며 "미국에서 나오는 iPS 특허들도 모일 정도로 고베의료산업도시는 혁신의 거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사업화 생태계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며 "대덕연구단지가 인공섬처럼 고립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자생적인 혁신 클러스터를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특허청 산업재산활용과에서 추진 중인 '통상실시원칙 개정안'이 공유됐다.

현행 통상실시원칙에 따르면, 대학·공공연이 정부 R&D 성과로 얻은 특허기술은 공공재로 간주해 전용실시 또는 양도가 원칙적으로 제한되거나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기술을 최초로 이전 받은 기업은 후발 기업이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게 된다. 또한 스타트업에 특허를 양도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특혜 시비가 자주 발생해 창업 분위기가 위축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에 특허청은 양도·전용실시 예정 기업을 1개월간 공지하고, 통상실시 신청이나 산업계의 이의가 없는 경우 신속하게 계약을 진행하는 수정안을 준비 중이다. 특허청은 수정안이 ▲양도·전용실시 절차 단축 ▲특혜 시비 감소 ▲정보 비대칭 해소 ▲대형 기술이전과 연구자 창업 활성화 등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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