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연구실①] 표준연 물리표준본부 시간표준센터
국내 표준시계 기술, 우주 진출·한국형GPS 등 미래 핵심
연구진 "혼자 연구하기 보다 협력할 때 성과"

시계를 연구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 연구진의 뒷이야기.<영상=대덕넷 뉴미디어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없고 공간없이 어떤 일도 이뤄지지 않는다."('시간눈금과 원자시계(저자 이호성)' 책 중에서)

42년전(1978년 표준연 대덕연구단지 입주시) 대한민국의 표준시 연구를 시작한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 시간표준센터(이하 시간표준센터). 우리가 일상에서 매순간 접하는 시간, GPS, 인공위성 운동, 우주 기술 등에 사용되는 시간의 기준을 생성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한다. 가장 정확하고 최첨단 연구로 우리나라의 시간표준을 책임지는 곳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1초의 중심은 태양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보다 정확한 기준이 필요해졌다. 국제도량형총회는 1967년 세슘원자시계를 표준시 '초'의 정의로 채택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세슘원자시계보다 더 정확한 표준시계 필요성이 대두되며 이터븀, 스트론듐 등을 활용한 광시계 개발이 활발하다. 물론 과학선진국 중심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 표준연에 세슘원자시계가 설치되며 표준시 사용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세슘원자시계를 국내에서 개발하지 못해 상용화형을 수입해 설치했다. 국내 기술로 세슘원자시계 개발이 시작된것은 1988년. 연구가 시작된지 20년만인 2008년 국내 순수기술로 표준연의 KRISS-1 세슘원자시계가 탄생했다.

KRISS-1 세슘원자시계는 기존보다 정확도를 10배이상 높이며 한국 과학기술의 위상을 단숨에 끌어 올렸다. 이처럼 정확한 시계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과학선진국 뿐이다. 한국 연구진의 열정과 과학기술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성과다.

시간표준센터는 2014년 1억년에 1초 오차인 광격자 시계까지 개발하며 각국의 연구진을 놀라게 했다. 광격자 시계는 상용 세슘원자시계의 오차인 300만년에 1초보다 30배 더 정확한 것으로 평가된다.

표준시계의 정확도가 강조되는 것은 우주 진출 등 미래기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공위성과 우주선은 각각 내장된 원자시계를 이용해 위치정보를 주고받는데 표준시계는 GPS 정확도 향상, 우주항법 운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진에 의하면 광시계를 개발한 국가는 3개국 정도. 그러면서 1초의 정의가 광시계 기준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빠르면 2026년 열리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 1초의 정의가 바뀔 전망이다. 그러나 광시계가 새로운 '초'의 기준으로 재정의 되려면 지금보다 기술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시간표준센터 구성원들은 광시계를 이용한 표준시계 기술 확보를 위해 막바지 연구에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다.

시간표준센터에는 세슘원자시계 연구팀, 국제표준시계와 비교연구하는 팀, 미래 표준시계로 주목되는 광시계 연구팀이 있다.

과학선진국에 비해 한 세대(30여년)정도 늦은 시작에도 국내 기술로 표준시계 기술을 개발하며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시간표준센터 연구진들을 만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인터뷰에는 초창기 세슘원자시계 연구를 시작한 이호성 박사, 현재 시간센터장을 맡고 있는 유대혁 박사, 세슘원자시계 연구팀장인 권택용 박사, 광시계 개발팀장인 이원규 박사, 세계표준시계와 비교기술연구팀장을 맡은 이영규 박사, 신진연구자로 새로운 미래를 연구 중인 이재훈 박사가 참석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는 세슘원자시계와 표준시 비교 연구, 광시계 개발로 한국의 표준시계 기술 독립을 이뤄냈다.<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권택용 박사, 유대혁 센터장, 이영규 박사, 이원규 박사, 이재훈 박사, 이호성 박사.<사진=대덕넷>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간표준센터는 세슘원자시계와 표준시 비교 연구, 광시계 개발로 한국의 표준시계 기술 독립을 이뤄냈다.<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 권택용 박사, 유대혁 센터장, 이영규 박사, 이원규 박사, 이재훈 박사, 이호성 박사.<사진=대덕넷>
◆ 세슘원자시계 연구 시작한 이호성 박사 "연구비 부족해 외부에서 조달도"

"1988년 연구비가 처음 나왔는데 아무도 실험실형 원자시계를 본적이 없었어요. 당시에는 출장도 논문 발표자만 갈 수 있어서 출장가기도 쉽지 않았죠. 겨우 출장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가게됐는데 3년 지나니 결과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3년마다 논문 들고 가서 설명하고 설득했어요. 싸우기도 했던 것 같고요."(웃음)

국내에서 세슘원자시계 연구를 시작한 이호성 박사는 당시를 회상하며 "쉽지 않았던 시작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KAIST에서 박사과정을 하며 주 2회정도 표준연 연구실을 찾아 공동연구에 참여하다가 1986년 표준연에 본격 합류했다.

이 박사는 "연구인력이 많지 않고 원자시계는 전문가가 없어서 배우면서 연구를 하던 시기로 대학과 공동연구가 많이 이뤄졌다"면서 "그런데 원자시계는 논문이 쉽게 나올 수 없는 분야로 학교 학생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표준연에 와서 연구를 시작했어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88년 연구비가 4000만원이 나왔어요. 연구소 입장에서는 큰 규모였지만 이온펌프 하나(2000만원) 사고나니 할수 있는게 많지 않았죠. 결국 외부에서 연구비를 따왔어요. 석박사생들이 실험할 수 있도록 했어요. 이후 원자시계 관련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면서 인식이 조금 나아졌어요."

이 박사 연구팀은 미국에서 자국의 원자시계 도입을 권했지만 자체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존 원자시계가 영구자석을 사용하는 방식이라면 표준연 연구팀은 독자적인 레이저 방식을 택했다. 연구팀은 연구를 시작한지 20년만에 기존 표준시계보다 성능이 월등하게 높은 세슘원자시계 개발에 성공한다. 과학기술을 통한 시간 독립을 이룬 것이다.

"우리는 구입할 자금도 없었지만 일본이 미국에서 개발한 원자시계를 구입했는데 제대로 동작이 안되고 고장날때마다 미국 기술진을 불렀다고 하더군요. 개발한 사람만이 고칠 수 있다면서요. 결국 일본도 개발에 나섰어요. 우리는 일본보다 한세대 늦게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세슘원자시계 연구를 맡고 있는 권택용 박사는 "표준 시계 기술은 기술력이 쌓여야 가능한 기술이다. 다른 나라에서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면서 "선배들이 첫발을 내딛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기술이 이어질 수 있었다. 특히 협력이 중요한 분야로 시간표준센터가 연구소 문화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선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연구진 "표준시계 기술 개발은 시간 독립"

표준연 시간표준센터에서 개발한 광격자 시계. 국제도량협회는 2026년이나 2030년께 표준시계로 광시계를 채택할 예정이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표준연 시간표준센터에서 개발한 광격자 시계. 국제도량협회는 2026년이나 2030년께 표준시계로 광시계를 채택할 예정이다.<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현재의 1초는 세슘원자시계를 기준한다. 세슘 원자의 진동수와 주파수는 같은 마이크로파를 통해 나오는 신호값인 91억9263만1770번으로 정해져 있다.

광격자 시계는 광시계의 일종으로 레이저 빛을 이용해 원자를 포획해 격자 모양(광격자)에 갇히게 한 뒤 원자 진동수를 측정하게 된다. 기체 상태로 떠다니는 원자를 고정해 측정하기 때문에 세슘원자시계보다 정확한 주파수를 측정할 수 있다.

시간표준센터 연구진이 개발한 광격자 시계에 사용된 이터븀 원자는 1초당 518조1958억3659만865번 진동한다. 이는 세슘 원자보다 5만6000배 이상 빠르다. 진동수가 커짐에 따라 오차가 줄어들어 광격자 시계의 오차는 1억년에 0.91초(1초)로 측정됐다.

이원규 박사는 "현재 우리가 개발한 광시계 수준은 138억년이 지나도 우주나이를 1초도 안틀릴 것이다. 세계에서 세번째 수준"이라면서 "2026~2030년께 초 기준이 광시계로 넘어가면 시간의 정의도 바뀔것"이라고 예상했다. 

과학 선진국들이 미래 표준시계 개발에 집중하는 것은 자국의 안위와 우주 진출의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유대혁 박사는 우주 기술 확보를 위해 표준시계 기술 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표준시계는 사올 수도 있지만 한국형 위성항법체계에 다른 나라에서 사온 표준시계를 사용하면 고장 났을 경우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기술이 쌓이고 역사를 만들어 갈 때 우리나라도 우주 과학 분야에서 앞설 수 있습니다."

이영규 박사 역시 좋은 표준시계는 국가의 방위, 적기 신호 파악, 위성 위치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기술 축적을 위해 시간표준센터의 연구는 팀 단위로 이뤄진다. 때문에 연구 인력 선발시 실력은 기본, 서로 융합연구가 가능한지를 가장 먼저 본다. 정부의 인력 제한으로 신진연구진 보충이 쉽지 않은 어려움도 있어 더욱 신중하게 선발한다.

연구 협력을 위해 매주 화요일 오후 4시마다 연구 현황을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발표한다. 또 한달에 한번 팀별 집중 토의 시간도 갖는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이 있지만 일이 많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연구진들은 이를 두고 "과하게 학습적, 아카데믹한 연구실"이라고 웃으며 자평했다.

신진연구자인 이재훈 박사는 "선배들이 원자시계 개발을 선택하고 어려운 과정을 지나면서 한국의 사이언스베이스 연구 위상이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높아졌음을 실감한다"면서 "좋은 시계를 만들기 위해 10의 마이너스 18승까지 내리는 연구와 쓰일 곳도 적극 찾고 있다. 또 중력을 정확히 재는 연구 등으로 인류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에게 '우리 연구실에 대해 한마디'를 요청했다. 그들은 "시간표준센터는 같이 연구하는 공간으로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일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구진들은 시간표준센터 분위기에 대해 협력하며 즐겁게 일하는 연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권택용 박사, 유대혁 센터장, 이영규 박사, 이재훈 박사, 이원규 박사, 이호성 박사.<사진=대덕넷>
연구진들은 시간표준센터 분위기에 대해 협력하며 즐겁게 일하는 연구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권택용 박사, 유대혁 센터장, 이영규 박사, 이재훈 박사, 이원규 박사, 이호성 박사.<사진=대덕넷>
 
권택용 박사 "균형감각은 연구분야, 사람관계, 흥미와 재미 등에 다 필요한데  우리 연구실은 균형을 이루며 연구할 수 있어 기쁩니다."

유대혁 박사 "정답같지만 함께 즐겁게 연구하는 조직이고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같이 힘들고 나누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이영규 박사 "아침에 출근할때 즐겁에 오는 곳이죠. 표준시계로 전국민에게 시간의 효율성을 제공하고 혜택을 줄수 있어 기쁩니다."

이재훈 박사 "협력하며 좋은 연구 내용이 쏟아집니다. 연구가 재미없으면 고민하겠지만 우리는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웃음)

이원규 박사 "가끔 집에서 나올 때 '학교 갔다 올게'라고 말하기도 해요. 연구 특성상 산업적 응용은 직접적으로 이뤄지지 않지만 기준시를 제공하고 한국형 GPS 개발 등 최첨단에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호성 박사 "장기적으로 연구는 사람이 지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이 몰리고 있어 염려됩니다. 인력 투입과 부서 확장이 필요한 연구실이기도 하죠."
 
과학기술은 유전자 가위, 줄기세포를 비롯해 인공지능, 로봇, 우주 기술 등 기초 과학부터 첨단 과학으로 인류의 지속성과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의 열정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죠. 연구의 시작점은 연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역량과 함께 연구실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연구실 문화는 아직 이렇다 하게 내놓을만한 특성이 없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대덕넷은 연구개발의 시작점인 '대한민국 대표 연구실'을 발굴(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출연연과 대학 추천, 본지 발굴 등)하고 취재해 연중 보도하고자 합니다.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영상작업도 병행됩니다. 과학선진국의 연구실 문화도 취재할 예정입니다. '과학선진국 100년 연구실을 가다' 주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기획취재 지원 공모에 선정돼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연구실 현장 취재도 앞두고 있습니다. 올 한해 남다른 연구문화와 귀감이 되는 연구실을 취재 보도하며 대한민국과 인류에 희망을 전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편집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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