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이야기] 에너지·진동 전문가 3총사 '신생 분야' 자발적 연구
공통 관심사 '메타구조' 스터디 5년 결실···연구 패러다임 전환
그중 이들이 오랫동안 공부해 온 공통 관심사 '메타구조'가 실제 연구로 이어져 최근 첫 성과를 터트렸다. 메타구조를 활용해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전기를 만드는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에너지 하베스팅 전문가 김미소 박사와, 파동 전문가 박춘수·최원재 박사가 각자의 전공인 재료공학과 기계공학을 연구에 녹여냈다.
지난 19일 연구 뒷이야기를 듣고자 연구실을 찾았다. 여느 융합 연구팀처럼 연구 원동력은 '협력'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남다른 찰떡 호흡을 보여줬다.
◆ 표준연 '메타팀' 결성···백지서 연구 시작
두 분야는 표준연에서도 연구 전례가 없었다. 안전측정센터에서 메타구조 연구의 물꼬가 튼 것은 2012년 김미소 박사가 연구원에 합류하면서다. 김 박사는 "각자 전공을 살리면서 재밌게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았는데 다들 메타구조에 관심이 있었다"며 "메타구조를 에너지 하베스팅과 접목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모여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표준연(KRISS) 메타팀'이라고 이름도 붙였다"고 소개했다.
주 전공이 아닌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실험이 난관이었다. 참고할 만한 논문이 거의 없어 실험은 백지에서 시작됐다. 최 박사는 "처음에는 장비 특성이 뭔지 어떻게 쓰는지조차 몰랐다"며 "3년간 온갖 시도를 해가며 논문에 안 나오는 노하우들을 쌓아왔다"고 회상했다. 이에 김 박사는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세 연구원과 서울대 윤병동 교수팀이 협력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가운데 생긴 에피소드들도 많다. 하루는 '공진'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김 박사와 박 박사가 토론을 벌였다. 같은 단어지만 재료와 기계 전공에서는 서로 다른 의미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 어느 날은 모여서 실험 계획을 세웠는데 다음 날에는 각자 다른 걸 준비하고 있었다. 배경과 관점이 다르다 보니 이처럼 초기에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티격태격하면서 팀에는 활발한 토론 문화가 자리 잡았다. 박 박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에서 깨어나 한 발 나아가는 경험이었다"며 "우리는 다른 점이 있었지만, 논쟁이 될 것 같다고 일부러 대화를 피하지 않았다. 융합 연구를 할 때는 자주 만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터놓고 연구 이야기를 해야 하더라"고 강조했다.
최 박사는 "두 주제를 융합하다 보면 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발씩 다가가야 한다"며 "그러면 한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이를 적용할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구뿐만 아니라 인생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눈다. 인터뷰 중에도 농담과 일상 대화가 자연스레 오갔다. 김 박사는 "이런 게 우리 팀의 특별한 면모"라며 "작은 일 하나에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좋다"고 애정을 표현했다.
◆ 에너지 하베스팅 관점 바꿔···22배 많은 에너지 모아
처음 시도하는 분야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연구한 결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평가를 불러왔다.
현재 에너지 하베스팅에서 전력을 얻는 방식은 압력을 전기로 바꾸는 '압전'이다. 이번 연구는 압력을 가하기 전 단계를 공략했다. 메타구조로 에너지를 수십 배 많이 모아서 더 큰 전력을 얻는 방식이다.
박 박사는 연구실 뒤편에 설치한 실험 시스템에 다가가 시편 가운데에 뚫린 54개 팔각형 메타구조를 보여줬다. 그는 "그냥 뚫은 구멍이 아니라 에너지 하베스팅에 가장 적합하게 설계한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시스템 작동은 메타구조 오른쪽에서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파동들은 왼쪽으로 제 갈 길을 가다가 메타구조를 만나면서 한곳에 모인다. 메타구조가 없을 때와 비교하면 22배 많은 양이다. 에너지가 모인 곳에는 압전소자 기반의 '에너지 하베스터'가 붙어 있어 파동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로 바꾼다.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은 소형 전자기기의 배터리 대체·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시스템의 궁극적인 사용처가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설치된 전자기기 될 것이라 예상한다.
예를 들어, 높은 교량에는 안전 모니터링 센서들이 박혀 있는데 센서의 배터리를 바꾸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다.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은 교량 위에 차량이 지나갈 때 발생하는 진동·소리·충격파 등 버려지는 에너지를 잡아서 전기를 발생해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다. 이 외에도 체내에 삽입된 의료기기 센서, 웨어러블 장치 등도 적용 대상이다.
김 박사는 "이번 연구는 메타구조를 에너지 하베스팅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례"라며 "지금은 시스템 규모가 크지만 이를 시작으로 꾸준히 연구하면 다양한 사용처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몇 년 동안 공동연구로 노하우를 쌓아왔더니 이후 실험은 훨씬 수월하다"며 "스터디는 물론이고 외부 기관들과 소모임을 활발히 이어가며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 연구 시리즈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만간 또 다른 논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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