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이야기] 에너지·진동 전문가 3총사 '신생 분야' 자발적 연구
공통 관심사 '메타구조' 스터디 5년 결실···연구 패러다임 전환

지난 25일 아침 저널클럽 시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조승현·김미소·박춘수·최원재·승홍민 박사가 참여했다. 스터디 형식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자료 공유는 필수다. 초기에는 석·박사 학위 논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김미소 박사 제공>
지난 25일 아침 저널클럽 시간. (왼쪽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조승현·김미소·박춘수·최원재·승홍민 박사가 참여했다. 스터디 형식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자료 공유는 필수다. 초기에는 석·박사 학위 논문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진=김미소 박사 제공>
매주 월요일 아침 10시 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안전측정센터의 젊은 연구원 6명은 스터디로 한 주를 시작한다. 일명 '저널클럽'. 연구를 같이하려면 서로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5년 전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각자 관심 있는 연구 주제, 최근 읽은 흥미로운 논문, 때로는 취미에 관한 자료를 가져와 공유한다. 

그중 이들이 오랫동안 공부해 온 공통 관심사 '메타구조'가 실제 연구로 이어져 최근 첫 성과를 터트렸다. 메타구조를 활용해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전기를 만드는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다. 에너지 하베스팅 전문가 김미소 박사와, 파동 전문가 박춘수·최원재 박사가 각자의 전공인 재료공학과 기계공학을 연구에 녹여냈다.

지난 19일 연구 뒷이야기를 듣고자 연구실을 찾았다. 여느 융합 연구팀처럼 연구 원동력은 '협력'이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남다른 찰떡 호흡을 보여줬다.

◆ 표준연 '메타팀' 결성···백지서 연구 시작

(왼쪽부터) 박춘수·김미소·최원재 박사. 처음에는 메타구조를 어디부터 어떻게 공부할지 몰랐고 논문도 잘 안 읽혔지만, 서로 도움을 주며 연구를 이어왔다. 김미소 박사가 중심이 된 이번 연구를 시작으로 메타구조 융합 연구 시리즈 논문을 준비 중이다. <사진=한효정 기자>
(왼쪽부터) 박춘수·김미소·최원재 박사. 처음에는 메타구조를 어디부터 어떻게 공부할지 몰랐고 논문도 잘 안 읽혔지만, 서로 도움을 주며 연구를 이어왔다. 김미소 박사가 중심이 된 이번 연구를 시작으로 메타구조 융합 연구 시리즈 논문을 준비 중이다. <사진=한효정 기자>
'메타구조'와 '에너지 하베스팅'은 과학계 신생 연구 분야다. 메타구조란 물질의 특성을 바꿔주는 인위적인 구조를 말한다. 에너지 하베스팅은 그냥 두면 버려지는 태양·소음·진동 등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이다. 

두 분야는 표준연에서도 연구 전례가 없었다. 안전측정센터에서 메타구조 연구의 물꼬가 튼 것은 2012년 김미소 박사가 연구원에 합류하면서다. 김 박사는 "각자 전공을 살리면서 재밌게 연구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았는데 다들 메타구조에 관심이 있었다"며 "메타구조를 에너지 하베스팅과 접목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모여 함께 공부를 시작했고 '표준연(KRISS) 메타팀'이라고 이름도 붙였다"고 소개했다.

주 전공이 아닌 분야를 공부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실험이 난관이었다. 참고할 만한 논문이 거의 없어 실험은 백지에서 시작됐다. 최 박사는 "처음에는 장비 특성이 뭔지 어떻게 쓰는지조차 몰랐다"며 "3년간 온갖 시도를 해가며 논문에 안 나오는 노하우들을 쌓아왔다"고 회상했다. 이에 김 박사는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세 연구원과 서울대 윤병동 교수팀이 협력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 가운데 생긴 에피소드들도 많다. 하루는 '공진'이라는 한 단어를 두고 김 박사와 박 박사가 토론을 벌였다. 같은 단어지만 재료와 기계 전공에서는 서로 다른 의미로 쓰였기 때문이다. 또 어느 날은 모여서 실험 계획을 세웠는데 다음 날에는 각자 다른 걸 준비하고 있었다. 배경과 관점이 다르다 보니 이처럼 초기에는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됐다.

김미소 박사는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격해지는 상황도 많았지만, 서로 공과 사를 구별한다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떠올렸다. <사진=한효정 기자>
김미소 박사는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격해지는 상황도 많았지만, 서로 공과 사를 구별한다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떠올렸다. <사진=한효정 기자>
그렇게 몇 년 동안 티격태격하면서 팀에는 활발한 토론 문화가 자리 잡았다. 박 박사는 "내가 알고 있는 것에서 깨어나 한 발 나아가는 경험이었다"며 "우리는 다른 점이 있었지만, 논쟁이 될 것 같다고 일부러 대화를 피하지 않았다. 융합 연구를 할 때는 자주 만나기만 할 것이 아니라 터놓고 연구 이야기를 해야 하더라"고 강조했다.

최 박사는 "두 주제를 융합하다 보면 중간에 빈 곳이 생기는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한 발씩 다가가야 한다"며 "그러면 한쪽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이를 적용할 새로운 가능성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연구뿐만 아니라 인생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눈다. 인터뷰 중에도 농담과 일상 대화가 자연스레 오갔다. 김 박사는 "이런 게 우리 팀의 특별한 면모"라며 "작은 일 하나에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좋다"고 애정을 표현했다.

◆ 에너지 하베스팅 관점 바꿔···22배 많은 에너지 모아

처음 시도하는 분야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연구한 결과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평가를 불러왔다. 

현재 에너지 하베스팅에서 전력을 얻는 방식은 압력을 전기로 바꾸는 '압전'이다. 이번 연구는 압력을 가하기 전 단계를 공략했다. 메타구조로 에너지를 수십 배 많이 모아서 더 큰 전력을 얻는 방식이다.

박 박사는 연구실 뒤편에 설치한 실험 시스템에 다가가 시편 가운데에 뚫린 54개 팔각형 메타구조를 보여줬다. 그는 "그냥 뚫은 구멍이 아니라 에너지 하베스팅에 가장 적합하게 설계한 디자인"이라고 소개했다.

시스템 작동은 메타구조 오른쪽에서 초음파를 발생시키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파동들은 왼쪽으로 제 갈 길을 가다가 메타구조를 만나면서 한곳에 모인다. 메타구조가 없을 때와 비교하면 22배 많은 양이다. 에너지가 모인 곳에는 압전소자 기반의 '에너지 하베스터'가 붙어 있어 파동 에너지를 수확해 전기로 바꾼다. 

연구팀이 구현한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 맨 뒤쪽 광택이 나는 사각형 시편(meta-plate)에 메타구조가 뚫려 있고 오른쪽에는 초음파 발생 장치, 가운데에는 에너지 하베스터, 왼쪽에는 전력 분석 장비 등이 설치됐다. 쉽게 설치한 듯 보이지만,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소소한 것들이 실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오른쪽 사진은 메타구조를 확대한 모습으로 서울대 윤병동 교수팀이 설계와 예측을 담당했다. 표준연 연구팀은 파동 발생, 파동 거동 확인, 에너지 하베스팅 성능 등 실험과 분석을 담당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연구팀이 구현한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 맨 뒤쪽 광택이 나는 사각형 시편(meta-plate)에 메타구조가 뚫려 있고 오른쪽에는 초음파 발생 장치, 가운데에는 에너지 하베스터, 왼쪽에는 전력 분석 장비 등이 설치됐다. 쉽게 설치한 듯 보이지만,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소소한 것들이 실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오른쪽 사진은 메타구조를 확대한 모습으로 서울대 윤병동 교수팀이 설계와 예측을 담당했다. 표준연 연구팀은 파동 발생, 파동 거동 확인, 에너지 하베스팅 성능 등 실험과 분석을 담당했다. <사진=한효정 기자>
최 박사는 "예전에는 에너지 하베스터의 성능을 높이거나 새로운 압전 소자·소재를 개발하는 게 화두였는데, 우리는 이것을 그대로 두고 주위에 있는 에너지의 밀도를 높이는 데 주목했다"며 "에너지 하베스팅의 관점을 바꾼 연구"라고 자신했다.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은 소형 전자기기의 배터리 대체·보완재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시스템의 궁극적인 사용처가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설치된 전자기기 될 것이라 예상한다. 

예를 들어, 높은 교량에는 안전 모니터링 센서들이 박혀 있는데 센서의 배터리를 바꾸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다. 에너지 하베스팅 시스템은 교량 위에 차량이 지나갈 때 발생하는 진동·소리·충격파 등 버려지는 에너지를 잡아서 전기를 발생해 배터리 교체가 필요 없다. 이 외에도 체내에 삽입된 의료기기 센서, 웨어러블 장치 등도 적용 대상이다.

김 박사는 "이번 연구는 메타구조를 에너지 하베스팅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례"라며 "지금은 시스템 규모가 크지만 이를 시작으로 꾸준히 연구하면 다양한 사용처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몇 년 동안 공동연구로 노하우를 쌓아왔더니 이후 실험은 훨씬 수월하다"며 "스터디는 물론이고 외부 기관들과 소모임을 활발히 이어가며 메타 에너지 하베스팅 연구 시리즈를 진행할 계획이다. 조만간 또 다른 논문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박춘수 박사가 음향 관련 메타구조 샘플을 들고 소리가 굴절되는지 장난스럽게 확인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박춘수 박사가 음향 관련 메타구조 샘플을 들고 소리가 굴절되는지 장난스럽게 확인하고 있다. <사진=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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