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훈 美 보스턴대 교수, KIST 뇌과학연구소로 자리 옮겨
일찍이 칸막이 넘으며 연구...‘역중개 연구‘로 퇴행성 뇌질환 치료

미국 보스턴 의대 교수로 활약한 류훈 교수가 3월 초 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으로 연구인생 2막을 열었다.<사진=KIST 제공>
미국 보스턴 의대 교수로 활약한 류훈 교수가 3월 초 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으로 연구인생 2막을 열었다.<사진=KIST 제공>
"연구하다 문뜩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었고 퇴행성 뇌질환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KIST에서 역중개 연구를 통해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고 뇌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겠습니다."
 
미국 보스턴대 의대에서 퇴행성 뇌질환에서 신경유전자 발현과 후성 유전체학을 선도한 류훈 교수가 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장으로 연구인생 2막을 열었다.
 
그는 헌팅턴병과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의 발병기전을 규명하고 질병 진단 및 후성유전체 표적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KIST에서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돌파구를 모색할 계획이다.
 
특히 그는 어떤 표적에 대한 약물을 찾고 세포나 동물에 실험한 후 드러난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중개연구를 넘어,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세포에서 직접 질병의 원인과 약물 치료법을 찾아내는 역중개 연구방식으로 뇌 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3월 초 KIST로 자리를 옮긴 류 단장을 만났다. 20여 년간 미국에서 연구를 해왔던 그가 KIST로 오게 된 계기와 향후 연구계획 등을 들어봤다.
 
◆ 연어 회귀본능처럼 고국으로 온 연구자
 
"KIST 인연이요? 10년도 더 됐네요."
 
그와 KIST의 인연은 10여 년 전, 미국에서 조교수로 생활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UKC(US-Korea Conference)에 참석한 그에게 한 선배 여성 과학자가 다가와 미소로 말을 건넸다. 한국에서 왔다며 후배과학자와 인사를 하고 싶다고 건넨 명함에는 KIST 유영숙 책임연구원(전 환경부 장관역임)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는 "명함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는데 이따금 책상을 정리할 때마다 눈에 띄더라"라며 "친절하게 인사해준 선배과학자와 그가 소속된 KIST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9년 전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사업(World Class University, WCU)으로 서울대학교를 오가며 KIST와도 공동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유영숙 책임연구원은 그즈음 환경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아쉽게 만날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KIST에서 마음이 맞는 연구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유영숙 전 장관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멘토-멘티라고.)
 
그 인연으로 WCU의 5년 사업 마무리를 앞둔 시점에 KIST 겸임 연구원을 해보자는 KIST 김동진 박사(당시 뇌과학연구소장)의 제안이 있었다.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미국 보스턴대 의대 교수에 소속을 두고 KIST 뇌의약연구단에서 겸임 연구원으로 일하며 환자의 뇌조직(postmortem brain)을 이용하여 이창준 박사 및 여러 연구원들과 치매와 뇌신경세포 기능 억제 등을 입증하는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KIST에서 겸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헌팅턴병을 치료할 새로운 기전과 루게릭병 등 신경퇴행성 질병을 진단하고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냈다. 사진은 헌팅턴병 관련 이미지. <사진=KIST 제공>
그는 KIST에서 겸임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헌팅턴병을 치료할 새로운 기전과 루게릭병 등 신경퇴행성 질병을 진단하고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냈다. 사진은 헌팅턴병 관련 이미지. <사진=KIST 제공>
그는 KIST에서 오토파지(Autophagy, 불필요한 세포내 단백질과 손상된 세포내 소기관을 분해함으로써 세포 생존과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활동)를 돕는 분자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해 루게릭병 등 신경퇴행성 질병 진단과 약물 개발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의도하지 않게 손과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퇴행성 뇌질환 '헌팅턴병'을 치료할 새로운 기전을 밝히는 등 다양한 연구성과를 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도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걸까. 류 단장은 겸임 연구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2019년 3월 KIST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다. KIST 연구 분위기도 매력적이었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연구하기 위한 그의 선택이었다. 그는 "KIST의 뇌연구소에는 4개의 연구단(신경과학,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즈, 뇌의약, 기능커넥토믹스)이 있는데 뇌를 생물학적 뿐 아니라 엔지니어, 유기화학 등 각 위치에서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겸임 연구원으로 KIST에 오면서 만난 대학원생과 박사후연구원들은 소중한 나의 후배연구자들이다. 이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봤다"며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회귀본능을 가진 것처럼 과학자로서 나도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연구 동료를 만났고, 그들의 결속력과 더불어 연구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곳에서 연구할 수 있으면 보람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KIST행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 "인류에게 필요한 연구 하고 싶었다...후배들도 연구하며 행복하길"
 
"퇴행성 뇌질환의 이유는 유전적인 것도 있지만 노화와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이 큽니다. 국민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뇌 질환을 이해하고 생명현상을 규명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가 진행되면서 발전하고 있는 맞춤형 의학을 적절히 병행하다 보면 뇌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류 단장은 미국에서 퇴행성 뇌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환자의 뇌를 연구해 왔지만 의외로 동물학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연구자다. 그는 "조교수 시절 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고 죽는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연구했는데, 문뜩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 나의 연구는 실제로 환자에게 효용성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뇌 연구가 인류에게 쓰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퇴행성 뇌질환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퇴행성 뇌질환을 해결할 작은 실마리라도 찾겠다는 일념으로 일찍이 융합연구에 눈을 뜬 그는 의대 연구의 벽을 넘나들며 협업연구에 매진했다. 미국에서 동물의 세포가 아닌 환자의 뇌로부터 치료법과 약물을 찾는 연구에 초점을 둔 연구를 계기로 역중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보스턴대학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KIST에서 역중개 연구를 통해 퇴행성 뇌질환 치료연구에 무게를 둘 생각이다.
 
류 단장은 "KIST 겸직을 하며 시스템스바이올로지 등 오믹스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성과들이 있었다. 여기서 밝혀진 표적들이 정말 중요 질병 요인인지 역중개 연구를 통해 규명하고 분석하는 등 깊게 연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KIST 뇌과학연구소는 2018년 보스턴 의대와 연구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류훈 단장은 보스턴 의대 치매연구소 및 만성 외상성뇌질환연구소 그리고 하버드대와 연구협력을 위한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퇴행성 뇌질환 치료는 언제쯤 가능할까. 그는 "진리는 단순하더라. 많은 알츠하이머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지금까지 발견된 치매에 도움이 되는 약물 또는 방법 중에서 가장 적절한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한 결과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고 혈액순환을 돕는 '운동'을 하는 것이더라"며 "세상을 돌아보며 더 쉽고 유용한 치료법을 찾고 나누겠다. 또 맞춤형 의학 시대가 도래한 만큼 우리의 연구와 함께 적절하게 병행한다면 뇌건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류훈 단장과 연구원들. 그는 신경과학연구단을 즐겁고 행복한 연구가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사진=KIST 제공>
류훈 단장과 연구원들. 그는 신경과학연구단을 즐겁고 행복한 연구가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사진=KIST 제공>
 
"향후 계획이요? 거창한 건 없지만 저와 선후배 모두가 행복한 연구를 통해 연구의 맛에 빠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네요(웃음)."
 
한국에서 석학박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보낸 연구 생활 20여 년. 다양한 도전을 하고 싶어 나갔던 해외 무대에서의 훈련은 그에게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미국, 독일, 일본, 파키스탄, 인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어우러져 즐겁게 연구하며 느낀 것은 '누구나 열심히 하면 다 되는구나'였다. 열심히 연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행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신경과학연구단을 즐겁고 행복한 연구가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 연구의 맛에 빠져 연구중독(?)이 된 연구단이라면 원하는 뜻을 이루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라 믿기 때문. 제자가 나보다 더 나은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선생의 마음처럼, 류 단장은 신명 나는 연구 분위기 속에서 후배들이 더 멋진 연구자가 되길 바라고 있다.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선후배들 모두가 행복한 연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내 아이디어 뺏길까 봐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과학도 나눔이 있어야 하거든요.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융합되고 나누고 존중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하게 연구하다 보면 좋은 성과는 당연히 따를 겁니다.“
 
류훈 단장은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 연구과정 및 강사로 재직하였고, 이후 보스턴 의대 교수로 재직하는 등, 총 23여 년간 해외에서 연구역량을 축적한 연구자이다. SCI(E)급 해외논문에 출간한 논문 편수는 120편 이상이며, 구글스콜라 (Google Scholar) 인용횟수는 8420회 이상 그리고 h-index 44이다.

한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주관하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한빛사)명단에는 무려 12회나 등재되는 등 우수한 연구 업적을 보유한 연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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