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서울대 등 전국 13개 대학 23일 탈원전 반대 동시 서명운동
'녹색원자력학생연대' 주도로 전국 주요역서 '탈원전 바로 알리기'
"정부만큼은 객관적 수치·통계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 진행 중입니다. 서명 부탁드립니다."

빗방울이 떨어지던 지난 주말, 녹색 띠를 두른 학생들이 거리 곳곳에서 서명 참여를 독려했다. 제법 쌀쌀한 바람에 걸음을 재촉하던 시민들도 학생들의 목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곤 했다. 원자력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민들은 서명과 함께 격려의 목소리를 보냈다. 지나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밝은 목소리로 원자력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전국 각지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가 주도한 이번 전국 서명운동에는 KAIST·서울대·부산대·전북대·경희대·중앙대 등 13개 대학이 참여했다. 전국 동시 서명운동은 지난 2월 23일 이후 두 번째다. 전국의 주요역은 물론 대전 수통골, 서울 관악산, 부산 금정산, 전주 한옥마을 등에서 서명이 이뤄졌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들은 23일 대전역, 대전 수통골, 대전 복합터미널 인근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날 총 691명이 자필 서명에 동참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들은 23일 대전역, 대전 수통골, 대전 복합터미널 인근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날 총 691명이 자필 서명에 동참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학생을 중심으로 지난 1월 22일 결성돼 현재 13개 대학이 연대하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에너지 전환 정책의 여파로 원자력계가 영향을 받게 되면서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원자력 바로 알리기 운동과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자료를 만들어 원자력 안전성·경제성·환경성 등을 알리고 있다.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공동 대표(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졸업생)는 "대통령 임기는 5년이지만,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장 발전소를 못 짓는다고 해도 바로 부작용이 나타나진 않겠지만 전력 예비율, 환경 문제 등 여러 부작용은 다음 정부, 그다음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 너무나 뻔한 미래를 눈 감아 버리고 에너지를 전환하는 게 걱정스럽다"고 했다.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들은 23일 대전역(좌)과 대전 수통골(우) 인근에서 원자력 바로 알리기를 진행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들은 23일 대전역(좌)과 대전 수통골(우) 인근에서 원자력 바로 알리기를 진행했다. <사진=김인한 기자>
◆"정부만큼은 객관적 수치·통계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현(現) 정부는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노후 원전 폐쇄 및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2017년 발족된 공론화 위원회는 '원전 건설 재개'로 의견을 모았다. 최근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낙연 총리는 "탈원전은 부적절한 용어이고, 원전 의존도를 낮춰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탈원전 정책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조 대표는 "정부만큼은 객관적인 수치·통계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에너지를 정치적인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게 문제"라며 "급격한 탈원전 정책은 수십 년간 쌓아온 에너지 기술을 퇴보시키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KAIST 학생들은 "인류는 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와 부작용은 과학·공학으로 개선해왔다"며 "원자력은 자립할 수 있는 기술을 축적해 왔고 해외로 수출까지 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은 2009년 한국형 원자로 'APR-1400' 4기를 UAE(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하며 20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성사한 바 있다. 원자력 발전소는 기술 보유국으로부터 유지·보수 등도 수십 년간 의존해야 하므로 꾸준히 관련 산업에서 이윤을 낼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급격하게 펼치면서 인재 해외 유출은 물론 국내 대학에서도 지원하는 학생도 줄어들고 있다. 

KAIST의 경우 매년 15명 이상의 신입생이 입학했지만 지난해 5명, 올해 4명만이 학과에 지원하며 인재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KAIST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상황이지만, 타 대학은 지원자가 줄어들며 학과 존폐 위기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문장식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 학생은 "원자력을 가족·친구들에게 알리려고 시작한 작은 움직임이 일반 시민들까지 이어지게 됐다"며 "취지에 동의해주시는 분이 많은 만큼 꾸준히 원자력의 필요성을 알리겠다"고 언급했다.

◆KAIST·서울대 등 전국 13개 대학, 동시 서명 운동 전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생들과 주한규 교수가 23일 서울역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김인한 기자>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생들과 주한규 교수가 23일 서울역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김인한 기자>
이날 전국 각지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이 이어졌다. KAIST 녹색원자력학생연대에 따르면 이날 대전역, 복합터미널, 수통골 인근에서 총 691명 시민이 자필 서명을 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서울역과 관악산 인근에서 서명을 독려했다. 이들은 23일에만 1000여 명이 넘는 자필 서명을 받았다.

홍현식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박사과정 학생은 "2017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당시 원전을 반대하던 사람들도 공론화를 거치면서 반대가 줄어들었고 결국 원전 재개로 무게를 옮긴 바 있다"며 "탈원전이 정책을 결정하는 소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국민의 뜻인지 알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며 서명운동을 펼치는 배경을 설명했다. 

홍현식 씨는 "탈원전 여파에 따른 인력 수급 문제, 전력 공급 문제 등이 우려된다"며 "국내외 영향을 받지 않는 원자력이 에너지 수급의 기반이 돼야 하고, 변동 폭이 높은 신재생에너지를 유동적으로 활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에너지는 어느 한 쪽에 의존한다기보다는 다양하게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며 "이를 통해 국민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에너지 복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AIST와 서울대 이외에도 ▲수서역(세종대·한양대) ▲용산역(중앙대) ▲수원역(경희대) ▲천안터미널 인근(단국대) ▲부산대역·부산시민공원·금정산(부산대·경성대) ▲광주송정역(조선대) ▲울산역(UNIST) ▲포항역(POSTECH) ▲전주한옥마을(전북대)에서 서명이 이뤄졌다. 학생들이 직접 자필로 서명 받은 인원만 1만여 명에 육박한다.
  
◆시민들 "원전 양면성 있지만, 한국 처한 현실 고려하면 탈원전은 안 돼"

서명에 동참한 문성식 씨(서울 중구)는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고려해보면 원자력을 통한 전력 수급은 필요불가결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가진 유수의 원자력 기술은 산업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포션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외 상황을 종합해봐도 정부는 에너지를 점진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서명 배경을 설명했다.

김정훈 씨(대전 유성구)는 "전기 생산을 하는 데 원자력이 고효율적이고, 환경적인 문제를 덜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말 씨(대전 유성구)는 "현실적으로 전기 연료를 대체할 만한 게 없는 상황에서 급진적인 에너지 전환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앞으로도 매주 토요일·일요일 전국 각지의 주요역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서명을 펼칠 예정이다. 

한편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범국민 서명운동 본부'가 펼치고 있는 서명 운동에는 24일 기준 온라인 21만 4000여 명, 자필 22만 2000여 명 등 총 43만 6000여 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서명 인원 확인은 해당 링크에서 할 수 있다. 

23일 빗방울이 내리기 전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KAIST 제공>
23일 빗방울이 내리기 전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KAIST 제공>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생들은 23일 서울역 인근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날 1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필 서명했다. <사진=서울대학교 제공>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생들은 23일 서울역 인근에서 '원자력 살리기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날 1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필 서명했다. <사진=서울대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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