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통사] 아날로그와 디지털 융합한 예술을 꿈꾸며

글: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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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2019.03.10

이번 151차 새통사 모임에는 "소리 찾는 목수"라는 별명을 가진 박경호 현악기장과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 생태계에서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그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일은 무엇일까'라는 등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박경호 현악기장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현악기를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계신 분이다. 전북 부안의 흙집 농방에서 농사지으며 오직 새로운 소리를 찾아 온 몸을 던지는 예술혼을 불사르고 계신 삶을 살짝 훔쳐볼 수 있는 기회였다.

박경호 현악기장은 현악기의 본고장 이탈리아에 있는, 유럽연합에서 지원하는 굽비오 국립 현악기 제작학교(Maestri Liutai Scuola di Gubbio Italia)에서 Maestro Winfried와 Maestro Emrico아래서 도제수업을 받으며 현악기 제작과 활 제작과정을 마스터하며 수석으로 졸업을 했다. 학교장이신 Maestro Spattapi로부터 클래식 기타 제작과정 전체를 개인적으로 사사를 받으며,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래식 기타, 활을 모두 제작하는 진정한 현악기장이다.

현재 박 기장님은 전북 부안 '나무 향 속 아름다운 선율'이라는 황토흙 집으로 된 현악공방을 운영 중이다. 흙집 안에서 악기를 연주하면 소리의 공명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 이후로 흙집을 떠나서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속에서 천편일률적인 현악기 모형에 대해 의문을 품고, 세상에 없는 새로운 소리를 내는 새로운 악기를 창작하는 실험을 계속해 가고 있다. 

◆복원을 위한 도전 vs. 개척을 위한 여행

박경호 기장님은 현악기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는 듯, 아마티,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 등 3대 명장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정작 하시고 싶은 말씀은 다른데 있다.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는 아마티의 것을 흉내내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조류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다.

참고로, 16세기 '크레모나 학파'를 이끌었던 니콜라 아마티의 악기들이 주름을 잡고 있었지만,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아마티의 제작 기술을 뛰어넘어 보다 섬세하고 울림을 좋게 만들어 현대 악기의 틀을 완성해냈다고 한다. 악기의 길이, 나무의 두께, f홀의 형태, 전체적인 기형의 곡선, 각도, 바니시 칠 등 요소 하나하나에 연구하여, 기존 바이올린에 비해 각 부분의 길이와 균형이 다른, '롱 패턴(long pattern)'이라 불리는 스타일을 완성했다고 한다.

과르네리는 스트라디바리의 장점 위에, 음색을 변화시키기 위해 옆판의 높이를 높게 만들고 아칭(악기를 옆으로 봤을 때 앞뒤판의 곡선)을 풍만하게 하는 등의 터프한 노력(?)을 통해 다양한 음색을 내는 악기를 창조해 냈다는 것이다.

박 기장께서 말씀하시는 악기계는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가 말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모습과 전율할 만큼 빼닮은 모습이다. 세상에 하나의 절대적인 도덕이 존재하는 것처럼 오로지 '누가 얼마나 많이 쌓았나를 놓고 경쟁하며, 더 높이 쌓은 것 같은 사람에게 맹목적인 굴종을 하는 세상'이라고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 사회를 정의했다.

그 모습을 악기 세상에서도 발견하게 된다. 바이올린 하나를 평가하는 데에도 악기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엄격한 고증분석을 통하여 평가하기 보다는 권위를 가진 사람 한마디에 진품과 가짜가 결정되는 세상. 그런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그런 모습이기에 85만원짜리 바이올린이 2억원짜리로 둔갑해 세상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받았던 그런 세상에 예술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기장께서 악기도 악기가 연주되는 환경에 따라 바뀌어야 함을 지적해 주신다. 조선시대 우리 악기들은 나무 마루에서 연주되는 환경이다. '땅'하는 거문고 소리가 마루를 뚫고 지나 흙바닥에 반사되어 다시 마루를 뚫고 나와 나무 천장에 부딪히며 울려 퍼지는 청아한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지금 우리 악기들은 그런 곳에서 연주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인데 어찌 과거의 소리가 날 수가 있겠는가. 과거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도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악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권위 높으신 분들이 이것을 외면한 채 소리의 원류를 고집하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한 것을 추종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새로운 악기를 연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새로운 소리를 담아 새로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곡가가 없음이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지휘자가 없음이 아닌가 싶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을 착상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추구한다. 연주가에서 음악가로 가는 계단이 5계단이라면, 음악가에서 예술가로 가는 계단은 '5만' 계단쯤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새로운 악기의 필요성이 이야기 되지 않은 음악세계는 필시 예술가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박 기장님의 별명은 '소리 찾는 목수'다. 새로운 소리를 찾아 나무에 한 땀 한 땀 선율을 새기고 계신다. 저녁식사 시간을 겸한 네트워킹 시간에 '현악기원정대' 이야기가 나왔다.

2015년 여름 한국을 방문 중이던 오스트리아 카린시안 국립음악원 헬프리트 피스터 교수가 그의 한국 제자인 비올라 연주자 박병선 씨의 주선으로 부안 흙집 공방을 직접 찾아왔다고 한다. 헬프리트 피스터 교수는 현악기장 박경호의 바이올린을 하나하나 연주하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박 기장님의 창작바이올린과 소리에 매료된 헬프리트 피스터 교수는 즉석에서 카린시안 국립음악원에서 전시회를 열자는 제안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오스트리아 카린시안 국립음악원 초청 전시회가 성사됐다고 한다.

문제는 카린시안 국립음악원의 예산도 빠듯한 상황이라 전시회 공간과 물품, 연주자 섭외, 광고와 홍보외의 나머지 경비를 지원해 줄 수 없었다고 한다. 악기를 오스트리아로 가지고 가기가 난무한 상태에 빠졌을 때 이런 사정을 접한 박 기장님의 벗들이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세상에 전무후무한 현악기 원정대를 꾸린 것이다. 하루빨리 박남일 작가님의 '현악기원정대'가 세상에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그 때의 감동을 공유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초연결 시대의 예술혼?

박 기장님은 자신의 작품세계 추구를 음악계에 다양성을 제공하고 싶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해 주신다. 예술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본질이 그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낡는다'라는 엔트로피 법칙을 역행할 수 있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다양성’이다. 다양성은 끊임없는 새로운 관계를 잉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다양성을 추구한다. 다양성은 의외성의 다른 표현이다. 예술 작품 속에는 언제나 의외성을 내포한다. 우리는 그 의외성 앞에서 감정이 고조되어 다스릴 수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 감동이라고 했던 최진석 교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 말씀과 한국의 악기들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박 기장님의 말씀이 오버랩 되며, 오히려 한국의 악기는 서양 악기들보다 더 예술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을 잠시 하게 된다.

한국의 악기는 평균율이든 순정률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서양악기들은 어떤 악기든지 지켜져야 할 것은 반드시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악기의 경우, 의외성은 연주자의 실수나 변칙적인 연주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 자명하지만, 우리 악기는 그 자체가 의외성 덩어리다. 

악기와 그 악기를 연구하는 연주자의 조합마다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를 우리 악기라고 정의해 본다면, 우리나라의 오케스트라는 그 자체가 의외성의 덩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악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이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들은 예술성은 서양사람들보다 한 수 위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런 의외성을 인위적으로 즐기는 민족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 의외성에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예술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한다.

그래서 또 이야기 되었던 것이 K-POP이다. K-POP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들은 과거의 팬들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과거의 팬들은 그저 우상을 바라보고 흠모하는 차원이었으나, 지금의 팬들을 SNS를 통해서 전세계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며 아이돌을 응원하며 키워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동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음악가 예술가들을 키워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싶다.

앞의 전제가 시대를 정확히 읽어 낸 것이라면, 초연결 시대의 예술혼은 사람들과 실시간적으로, 휩쓸리지 않은 채 서로가 교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박 기장께서 만들어 내는 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전 세계 사람들이 연주를 해보게 할 수 있을까 시공간을 극복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디지털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숙제이지 않을까 싶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 춤을 추는 날을 꿈꾸다

박 기장님은 모든 악기의 구상에서부터 제작과정 하나 하나를 기록하고 계신다고 한다. 심지어 순간순간의 기분마저도 기록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것은 소중한 기록이다. 디지털 기술이 추구하고 있는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 공부해야 할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아날로그의 세계를 기계들이 뛰어 넘을 수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다. 박 기장께서 추구하시는 새로운 소리도 푸리에변환 (Fourier transform)을 이용하여 분석해보면 그 소리를 내게 하는 모든 주파수를 알아 낼 수 있고 심지어는 주파수끼리의 상호작용까지도 분석해 낼 수 있다. 또한 소리와 소리의차이를 실시간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까지 있게 해준다.

인간은 가청주파수 내에서만 그 소리를 느낄 수 있지만 디지털 기기들은 투자한 돈에 비례하여 감지할 수 있는 소리의 폭은 무한히 늘릴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신의 아날로그 파형을 가지고 그 파형은 다양한 주파수들이 합쳐진 wave packet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그것은 그것을 표현하는 수많은 주파수로 분해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소리를 세계를 낱낱이 파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악기장들이 재료를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어떤 길이로 혹은 어떤 두께로 사용하는지, 악기를 만드는 날의 습도와 풀벌레 소리들의 강도들을 포함하여 악기의 소리와 주변환경의 조건과의 관계를 분석해낼 수 있다.

박기장께서 말씀하시는 아쟁의 소리넘이의 개수에 따라서, 소리넘이에 사용되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서, 소리넘이의 두께에 따라서, 소리넘이의 높이에 따라서 소리넘이의 높낮이의 조합에 따라서, 어떤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를 기록할 수 있다.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영역까지 기록에 남길 수 있게 된다.

그러한 기록들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이 공부를 한다. 그 공부를 넘어,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 기술을 이용해, 인공지능이 끊임없이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만드는 악기의 최적 조합을 찾아 낼 수 있다.

지금까지의 방식처럼 현악기 하나를 만드는데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할 이유가 없다. 전혀 새로운 악기 제작의 세계를 열 수 있다. 여기에는 악기장들의 섬세한 기록이 생명이다. 그것이 없다면, 제 아무리 뛰어난 성능이 뛰어난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불완전한 사람의 감성을 공감시킬 수 있는 명기를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새로운 악기의 탄생은 새로운 음악가의 탄생을 야기 할 수 있다. 새로운 음악가의 탄생은 새로운 예술가의 탄생 토대가 될 것이 자명하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해야 할 이유지 싶다.

낯선 시공간과 낯선 사람들 앞에 불쑥 불려나옴을 당해주신 박경호 현악기장께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땀으로 찾은 소리를 누구나 향유할 것을 꿈꾸시는 발걸음이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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