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네트워크 본능으로 경제적·정치적·초인간적 3대 공통질서 확립"

◆ 농업혁명 : 보편적 3대 질서형성의 요람

농경사회의 발전과 함께 인류는 서기체계를 발명했다. 자신들의 사고와 경험을 서술하고 기록하는 짜임새의 확립이다. 문자의 출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한층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고 후세에 전승도 가능하다. 인구 증대와 사회의 복잡화로 집단유지를 위해서는 허구적 체계, 즉 상상의 구조물 또한 한층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서기체계는 인간의 경험을 나누고 지혜의 세계를 풍요롭게 했다. 이에 따라 도시와 왕국을 유지하고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사회 문화적 시스템이 고안된다.

인공적 본능으로서의 네트워크 문화는 인류 역사가 통일을 향하게 하는 엔진이다. 하라리는 1만 년 이상 지속된 농업혁명은 글로벌 차원으로 인류 문화를 통일시키는 견고한 허구체계를 탄생시켰다고 지적한다. 농업혁명은 인간의 본능적 네트워크를 활성화하여 3대 메가 문화를 키워낸 요람이 되었다.

첫째 세계를 거대한 단일 시장으로 보는 경제적 질서로서의 화폐이다. 둘째 전 인류를 잠재적 신민으로 보는 정치적 질서로서의 제국이다. 셋째 전 인류를 잠재적 신자로 보는 초인간적 질서로서의 종교다. 인류의 상상력이 빚어낸 화폐, 제국, 종교는 3대 보편적 질서가 되었다.

인류의 문명구조와 행복을 묻는 하라리의 일관된 전제는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믿고 따르는 모든 질서의 원동력은 상상하는 힘, 허구에서 착상에서 되었다는 것이다. 허구라는 발상력을 연료로 가상의 엔진을 돌리는 사피엔스의 능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국가, 기업, 법률, 인권,평등, 나아가 사상과 신념 등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 네안데르탈인이 부활한다면, 실체도 묘연한 상상의 세계를 구상하고 스스로 협력하는 사피엔스의 사고와 행동을 기이하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상상력을 토대로 공통의 목적과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장대한 모험에 도전하고 인류 문명을 축조할 수 있었다. 어떤 천재가 가공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여기에 다른 사람이 아이디어를 보탠다. 다시 누군가가 엮어서, 왕국과 제국 전체의 공통신화로 바꾸면 권위는 보다 굳건해진다.

이로써 인류는 생물로서의 유전자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선택을 뛰어넘는 거대한 통일 문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화폐, 제국, 종교라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지구적 비전과 공통질서가 형성된 것이다.

만약 어느 순간 그 동안 우리가 축적한 허구체계에 대한 신뢰를 포기한다면, 인류의 문명 시스템은 통제불능에 빠지게 된다. 이젠 인류는 마음속의 상상적 존재와 가치를 우주적 비전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객관적 세계와 가상적 세계를 엮어 스스로 만들어낸 다중세계를 탐험하는 모험의 길을 계속한다.

◆ 경제적 질서 '화폐'의 발명과 보편화

화폐는 상품의 교환과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보편적인 유통수단이다. 하라리에 의하면, 화폐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상호 신뢰를 보증하는 집단적 신화의 산물이라고 단정한다. 동시에 돈은 모든 인류를 단일 시스템으로 충성하게 하는 역사 최강의 정복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같은 신을 믿거나 같은 왕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도 기꺼이 같은 돈을 사용하려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미국의 문화, 미국의 종교, 미국의 정치를 그토록 증오했지만 미국의 달러는 아주 좋아했다.'(사피엔스, p.247)   

수렵채집시대는 자급자족의 생활방식이었다. 농경사회의 정착으로 인구밀도가 증대되자 완전자립이 어려워졌다. 농경사회의 초기에는 외부집단 간의 물물교환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교역 시스템이 등장했다. 도시와 왕국이 출현하자 다양한 직업이 생겨나고, 외부와의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게 된다.

외부 사회와 교환하고 싶은 물건의 수와 종류가 많아지자 물물교환은 한계에 직면한다. 이러한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화폐라는 새로운 상상질서가 발명되기에 이른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교환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보증하는 적절한 가치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역사상 최초의 화폐는 수메르인의 ’보리 화폐‘이다. 표준화된 단위로 보리 1실라는 약 1리터다. 하지만 곡식 화폐는 보존과 운반에 불편했다. 본질적인 가치는 없지만, 보존과 운반이 용이한 것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었다.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사이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일정한 무게의 은 덩어리를 화폐로 삼았다. 화폐단위인 1세겔은 은 8.33 그램이다. 보리 실라와 달리 은 세겔은 그 자체로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다. 정해진 무게의 귀금속은 권력자가 인증하는 주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역사상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7세기경 소아시아의 고대국가인 리디아에서 사용되었다. 주화에는 로마 황제의 얼굴과 이름을 새겨넣었다. 주화의 위조는 왕권 침해 및 반역으로 엄중히 다루었다. 주화는 강대한 로마 제국을 통치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되었다.(사피엔스, p.261)

사피엔스 책자 247쪽, 261쪽, 267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사피엔스 책자 247쪽, 261쪽, 267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새로운 화폐로서의 주화가 바다를 건너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이 무렵 중국은 은괴와 금괴를 기반으로 한 화폐 시스템을 도입했다. 무슬림 상인과 유럽 상인 그리고 정복자들은 주화시스템과 금이라는 새로운 화폐체계를 바다 너머 온 세계로 확산했다. 동아시아의 비단, 도자기, 향신료가 유럽의 금과 은으로 교환되었다. 화폐 그 자체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없어도 유럽인도 동양인도 모두가 가상의 신뢰 시스템을 믿고 기꺼이 따르게 된 것이다.

엽전 혹은 동전으로 친숙한 상평통보(常平通寶)도 우리 선조의 상상물이다. 조선시대 널리 통용된 법적 화폐로서 쌀⸱포 등 물품화폐와 칭량은화(稱量銀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20세기 초 화폐정리 사업의 추진으로 회수, 폐기되기에 이른다. 

농업혁명에서 씨앗을 내린 화폐는 만인을 위한 궁극의 우주적 교역 질서로 정착되었다. 하라리는 돈이 가진 보편적 전환성과 보편적 신뢰라는 두 가지 보편적 원리에 의하여 궁극의 허구시스템으로 발전하였다고 본다.(사피엔스, p.267)

침팬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돈이라는 화신에 사람들은 무한신뢰를 보낸다. 게다가 자신의 생활세계를 지배하도록 스스로 용인하면서, 인류가 창안한 가장 성공한 상호주관적 영조물이 되었다. 돈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체제와 이념을 불문하고, 온 나라, 전 인류를 단일 경제⸱교역권으로 편입하게 했다. 

◆ 정치적 질서 '제국'의 발명과 보편화

농업혁명은 영토를 갖고 민족을 결집하는 특정 민족의 왕을 정점으로 하는 조직을 출현시켰다. 특정 민족의 왕은 타민족을 정복하여 노예화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민족 A, B, C를 흡수하여 제 민족의 왕인 제국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제국의 영토는 유연하고 가변적이다. 일찍이 제국의 조건은 국경의 탄력성과 문화적 포용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역사적으로 제국은 피정복민의 고유문화를 흡수하여 포괄적⸱망라적인 이데올로기를 확립하려 했다. 정복자는 세계의 사람들을 신민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라리는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고 본다. 첫째,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져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둘째,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사피엔스, p.273)

또한 그는 제국의 영고성쇠를 5단계의 주기로 설명한다. '작은 집단이 큰 제국을 건설한다. 제국문화가 구축된다. 피지배 민족이 공통의 제국적 가치의 이름으로 동일한 지위를 요구한다. 제국을 설립한 자들이 지배력을 잃는다. 제국의 문화는 계속 꽃피고 발전한다.'(사피엔스, p.290) 로마인에 의한 로마제국 건설, 칼리프가 다스리는 이슬람 제국, 근대의 유럽 제국주의의 부침도 그의 제국 개념과 제국의 주기에 부합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사피엔스 책자 293쪽, 294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한원규 박사>
사피엔스 책자 293쪽, 294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한원규 박사>
인도 뭄바이의 차트라파티 쉬바지 기차역(사피엔스, p.293)은 처음 지을 때는 봄베이의 빅토리아 역이었다. 인도의 민족주의 정부는 시와 역의 이름을 모두 바꾸었지만, 이렇게 장엄한 건물을 무너뜨리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다. 인도의 무슬림 정복자들이 남긴 타지마할 같은 구조물(사피엔스, p.294)은 어떻게 할 것인가?

20세기 초반까지도 전 세계 인구의 80%가 제국주의 지배를 받았다. 관점에 따라서는 모두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다. 하라리는 정복자가 남긴 문화 유산에 대한 까다롭고도 거대한 딜레마를 인도의 사례를 들어 제국의 후예들에게 묻고 있다. 과거의 역사에 갇힐 것이 아니라 역사의 생명력을 기초로 드넓은 신지평을 열라고.

우리는 해방 후에도 중앙청 청사로 사용해 왔던 조선총독부의 건물을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한 유산으로 간주하고 해체하여 모두의 기억에서 지웠다. 이전에 존재했던 우리 문화의 정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오직 제거되어야 할 압제자의 건조물이라는 대선언에 다함께 침묵했다. 

정치철학자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자신의 저서 '제국'에서, 오늘날 시대의 상태를 제국이란 개념으로 규정한다. 그의 제국관은 글로벌 교환을 유효하게 조정하는 정치적 주체이며, 이 세계를 통치하고 있는 글로벌화의 세계질서로 본다. 국민국가를 너머 지구 공간적인 전체성을 감싸는 세계차원의 체제라는 것이다.

19세기의 제국주의가 물리적 영토를 기축으로 한 육중한 제국이었다면, 21세기의 제국주의는 디지털 영토를 플랫폼으로 정신세계를 물들이는 경쾌한 제국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의 머리글자를 따온 GAFA제국이 그 전형적인 본보기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한층 대담한 경영자와 첨단기술 엘리트들이 보이지 않는 스마트 제국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 초인간적 질서 '종교'의 발명과 보편화

종교는 인간사회의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30년 전에 상상도 못 했던 첨단기술이 마술처럼 생활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사피엔스의 영혼은 신들의 그물망에 깃들어 산다. 단지 다함께 품고 의지하는 신념체계가 달라졌을 뿐이다.

애니미즘을 신념으로 한 수렵채집인의 정신세계에서는 인간은 천지만물을 이루는 그 일부였다. 다른 생물과 인간의 우열도 없었다. 오늘날 인터넷이 구름과 바람이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보듬고 품으려 하듯이.

그러나 수렵채집인의 후손인 농부들은 달랐다. 이들은 동식물을 소유하고 조작했다. 농업혁명이 미친 최초의 종교적 효과는 동식물을 영혼의 원탁에 앉은 동등한 존재에서 인간의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사피엔스, p.301) 한편 통치자는 다른 왕국과의 교역망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권력과 귄위를 낳는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 답은 많은 신들을 상상하는 데서 찾았다. 세상은 풍요의 여신, 비의 신, 전쟁의 신 등 여러 신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시각으로 돌려졌다. 로마 제국은 피정복민들의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는 개방형 종교를 수용했다.

한편 기원후 4세기경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 기독교는 일신교의 모델이 되어 전세계로 번져 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신이 유일신이며 다른 신들은 우상숭배로 본다. 오직 그 분만이 우주를 다스리는 최고권력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신을 부정하는 일신교는 언제 어디서나 진리인 보편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는 교리에 절대적 정당성을 찾는다. 또한 이 믿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도해가지 않으면 안된다.

인도와 중국 등에서는 유일신을 섬기지 않는 자연법칙 종교들이 탄생했다. 인도의 자이나교와 불교, 중국의 도교와 유교 등이 그것이다. 이들 종교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초인적 질서는 자연법칙의 소산이라고 여긴다. 예컨대 불교의 중심인물은 신이 아니라 고타마 싯다르타다. 그는 인간 번뇌의 모든 원인은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사피엔스, p.302)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는 법어에서는 자연법칙의 물결이 도도히 흐른다.

사피엔스 책자 302쪽, 326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사피엔스 책자 302쪽, 326쪽 이미지 이용해 재구성.<이미지=하원규 박사>
현대에 들어와 많은 자연법칙의 종교들이 등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신성하고 다른 생명과 현상과는 다른 존재로 격상되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 세계는 신이 없는 종교이며 이데올로기로 지칭된다. 하라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용어상의 문제라고 보고, 이슬람교, 불교, 공산주의는 모두 종교라고 본다.(사피엔스, P.326)

20세기에 들어와서 인간성(humanity)을 숭배하는 인본주의 종교들이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하라리에 의하면, 이들 종교는 인간성에 대한 정의를 두고 세 개의 경쟁 분파로 정리될 수 있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성은 개인주의적이며 개별 호모 사피엔스 내에 존재한다고 본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성은 집단적이며, 전체 호모 사피엔스 중 내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진화론적 인본주의는 인간은 인간 이하로 퇴화할 수도 있고 초인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는 관점을 보인다.  

종교, 돈, 제국이 삼위일체가 되면 인류의 세계는 한층 굳건한 구조체로 전환될 수 있다. 하라리는 1500년경 이러한 보편적 질서가 교차로가 되어 인류는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다고 판단한다. 인류 자신의 운명 뿐만 아니라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하라리는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고 선언한다.

◆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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