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유연하게 협력하는 역량에서 성취"

하원규 박사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관통하기'가 4일부터 연재됩니다. 하 박사는 디지털 토굴(개인 연구실)에서 하라리의 인류 대서사시 '사피엔스'를 깊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 그림과 도표로 해석하고 재구성 했습니다. 장기적 시계에서 인류 문명의 구조와 행복, 테크놀로지와 사피엔스의 미래를 사고하는 유발 하라리의 혜안을 같이 만나 보시죠.<편집자 편지>

◆ '녹은 유리 덩어리' 가설

인간은 누구나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로도,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자도 될 수 있다. 어떤 특정 신념 체계를 갖는 내면세계를 지닌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발 하라리는 그 근원적 이유를 인간은 '녹은 유리 덩어리'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으로 본다. 인간은 얇은 백지와도 같은 피륙이라서 성자의 길을 직조할 수도 있고, 테러리스트의 날염을 새겨넣을 수도 있다. 인간이 지닌 이러한 놀라운 가공 가능성을 '녹은 유리 덩어리 가설'로 명명하면 어떨까?

인간 이외의 동물은 예술을 갖고 있지 않고 철학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과학과 미래를 소중히 하고, 사랑과 행복을 추구한다. 왜 인간만이 이런 능력을 가졌을까? 고백하건대 필자가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빠져들고,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래 문장을 만나면서부터이다. 인간과 다른 포유동물과의 차이를 선연하게 꿰뚫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 주변의 도움과 가르침을 통하여 사회화된다. 인간은 고차원의 사고와 유연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이 되고,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복잡한 학습능력과 허구를 믿는 상상적 발현력이다. 인류가 지역에 따라 다른 문화를 지니고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역사를 이루게 된 근원적 연유를 그는 웅장하고도 간결한 언어로 표출해낸 것이다.

같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서도 어른이 된 후, 각자의 사고방식과 삶의 신념을 갖게 되는 것도, 녹은 유리 덩어리가 각각 굳어지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개인과 지역에 따라 종교와 언어 심지어 억양까지 다른 것도 맑고 부드러운 유리 덩어리에 천당과 극락, 신이나 천사 그리고 말투와 언어의 그림을 다양하게 수놓았기 때문일 터다.

남한의 유치원생과 북한의 유치원생이 각각 다른 정서적 노래를 부르고, 칭송의 이미지를 다르게 표현하는 율동도 용광로에서 막 꺼낸 '녹은 유리 덩어리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자신들의 도그마에 집착하는 정치판도 허구의 화신이다. 국민이 원하는 비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만의 붕당정치의 게임을 허구한 날 반복한다. 작금의 매스 미디어도 무수한 허구를 재생산하며, 시청자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10만년 전 지구상에는 적어도 6종류의 호모속의 인종이 존재했다. 그런데 왜 6종류 중에서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다른 말로 바꾸면 왜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5종류의 인종을 절멸시켰을까? 하라리는 그 이유를 한마디로 인지혁명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어느 천재 수렵채집집단이 새로운 소통능력을 발명하고, 다른 집단보다 먼저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허구를 공유하며, 서로 협력하게 하는 '인지혁명(The Cognitve Revolution)'에 성공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5종에 비교하여 신체능력이 보잘 것 없어서 좀처럼 아프리카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진출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복잡한 언어와 원시적 신앙과 같은 공상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뇌를 발전시킨다. 그것은 인지혁명이다. 왜 돌연히 그와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까?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뇌의 배선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었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사피엔스, p.44)
 
약 3만 년 전 영민한 지성을 지닌 수렵 채집인이 프랑스 남부 쇼베-퐁다르크 동굴 벽에 자신의 손도장을 남겼다. 하라리는 "내가 여기 있었노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라고 그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읽어낸다. 그렇다면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자기 의사를 각인해 놓은 수렵 채집인의 진정한 마음은 무엇일까?

그는 들판에 나가 야생 먹거리를 채집하고, 저녁에 움막이나 동굴에 옹기 종기 모여 밤을 보내고.. 이러한 반복적인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을 수도 있다. 어느 봄날 자신의 변변찮음을 한탄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은 용암처럼 분출하는 에너지를 참을 길 없어, 있는 힘을 다하여 자신의 손바닥을 눌렀을 수도 있다. 어쨌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들을 원시인으로서의 수렵채집인으로 간주하는 닫힌 사고가 아니라, 당대의 야심가일 수 있다는 열린 사고를 지녀야 할 것 같다.
       
◆ 허구의 공유와 질서확장 구도

지구 전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인류는 모든 동물의 운명뿐만 아니라 지구 자체의 운영도 위협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TED 2015 TALKS'에서 'What explains the rise of humans?'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섰다. 동 강연에서 그는 '인류의 부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경쾌한 언어로 알기 쉽게 그 본질을 설명한다.

  "10만 마리의 침팬지를 옥스포드 스트리트나 천안문 광장에 풀어놓으면 완전히 재난에 가까운 카오스 상태가 상상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간은 몇만 명이 광장에 모여도, 질서정연하게 협력하고 행동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룩한 수많은 위업 들, 예를 들어 피라미드 건설이나 달착륙 등은 개인의 능력이라기 보다는 유연하게 협력하는 역량에서 성취된 것이다." 

지구 행성의 모든 동물 중 인간만이 소설과 허구적 이야기를 창작하고 믿는다. 그러므로 인류가 성취한  모든 문명은 허구 위에 성립되어 있다. 하라리는 독일 슈타델 동굴에서 나온 3만2000년 전의 상아 공예품. 사자-남자(여자). 몸통은 인간, 머리는 여자 모양의 이 작품을 논란의 여지가 없는 최초의 예술품으로 간주한다. 인지혁명의 힘을 갖춘 인간이 비로소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추론의 달인으로서의 하라리 상상력은 슈타델 동굴의 수렵인 공예조각가의 마음과 오늘날 푸조의 신화를 믿는 현대인의 마음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데서 한층 돋보인다. 현대자동차가 한국의 자랑이듯이 푸조는 프랑스 국민의 영혼이다. 푸조의 사자 문양의 엠블럼은 자동차에 대한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푸조를 웅변하는 사자상은 물질세계의 실체가 아니라 자동차에 대한 긍지와 브랜드 가치의 표상이다.

그림은 필자가 구상하여 본 시공초월의 상상적 질서를 재창조하는 강화 피드백이다. 슈타델 동굴의 공예조각가는 당대의 예술가이자 공동체의 지도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일사분란한 지휘로 동료들과 함께 용맹스럽게 사냥한 매머드의 긴 어금니를 전리품으로 갖고 다니며 위세를 과시하였을 것이다. 어느 날 그는 돌도끼로 상아 어금니를 가르고, 돌칼로 다듬으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을 불어넣어 환상의 동물체를 고안했다.

푸조의 자사 문양처럼 자신이 고안한 공예품에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자신을 중심으로 사회적 유대를 맺고 공동체의 질서를 강화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쁜 수렵채집 처자에게 선물로 바쳤을 수도 있다. 그는 어쩌면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상상의 세계보다 더 심오한 생각과 감성을 지닌 로맨티스트 였을 것이다.      

◆ 사피엔스가 지구 정복에 성공한 이유

인류의 장엄한 여정을 관통하는 '사피엔스'는 '공상적 허구'라는 다섯 글자로 원숭이에서 사이보그까지 인류 역사와 문명형성의 거대 질문(Bold and great questions of human history from ape to cyborg)에 거침없이 대답하여 간다. 인류문명과 역사의 근본 줄기는 공상적 허구라는 저자의 창의적 발상을 통해, 그동안 가려져 왔던 인류의 과거가 수렵채집인의 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입체적 마술로 풀어낸다. 유발 하라리는 한 사람의 사피엔스로서 다른 사피엔스들에게 전하고 싶은 강력한 메시지가 사피엔스의 속표지의 서명 'From one Sapiens to another' 에서도 엿볼 수 있다.

사피엔스가 학습, 기억, 의사 소통을 하는 인지능력을 갖게 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따랐을 것이다. 이족보행을 하면서 자유로워진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여러 가지 도구를 착안했다. 식량을 찾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대형 포유류를 포획하기 위해 협력하는 지혜를 짜내는 과정에 생각의 비용을 지불했다. 이 과정에서 점차 뇌의 거대화도 이루어졌다.

직립보행을 잘 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엉덩이는 방해가 된다. 수렵채집인의 신체가 날씬해지면서 산도가 줄어들고, 이 때문에 머리의 골격이 미숙한 상태로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 이 약점은 보육을 위한 사회적 능력 등을  보완할 수 있었다. 뇌의 용량 증대는 학습능력의 가속화로 연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영민한 수렵채집인이 불의 사용을 고안했다. 불의 고안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동물의 위협에 대항하고, 숲속의 길을 열고, 맛있는 조리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취인 인지혁명이 일어나는 동인이 되었다. 최초로 불을 발견하고 불을 자신들의 뜻대로 길들인 방법을 찾아낸 수렵채집인의 환희는 어떠했을까?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러한 기쁨의 절정을 맛보는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호모 사피엔스 형제의 투쟁과 인류의 통일과정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인류가 전 세계로 확산하여 간 인류 최대의 여행을 영국의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Brian M. Fagan)은 위대한 여정(The Great Journey)이라고 명명했다. 페이건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를 거쳐 광대한 신대륙으로 여행을 한 인류의 여정은 인류사 최대의 모험으로 위상을 부여한다.

약 10만 년 전, 어느 용감한 호모 사피엔스는 정든 아프리카를 떠나 미지의 바다를 건너, 지금까지 인간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광대한 신대륙으로 쉼 없이 긴 여행을 계속했다. 그들은 아득한 초원을 가로지르고 성난 흙탕물이 흐르는 강을 건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시막을 횡단하는 위험천만한 여행을 무릅쓴 그들의 모험은 실로 위대한 여정이었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로 그리고 다시 남아메리카로.

'15000~2만 년 전 라스코 동굴의 벽화. 새의 머리를 하고 성기를 발기시킨 남자가 들소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남자의 아래에 있는 또 한 마리의 새는 그가 죽는 순간 육체에서 빠져나오는 영혼을 상징한다. 이에 대해, 하라리는 이 그림은 평범한 사냥 사고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통행을 묘사한 것이라는 추론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사피엔스, p.93)

여기서 잠시 다른 관점을 삽입하여 보자. 이 그림은 어느 착한 수렵채집인이 자기를 포함한 인간이 자꾸만 잔인하여 가는 폭력성을 스스로 반성하며, 자기를 고발하고 회개하는 착한 심성의 발로가 아닐까? 고대수렵인들은 애니미즘 신앙이 일반적이었다면, 이러한 추론이 가능하다. 애니미즘은 모든 장소, 모든 동물과 식물, 자연현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혼이나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유비쿼터스 신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불의 사용 등으로 인지혁명을 거치면서 수렵 채집인들은 닥치는 대로 대형동물을 포획하고 숲을 불사르는 등 더욱 잔인해졌다. 이러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동물과 식물의 입장에서 마음아파하는 동정심 많은 수렵채집인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한 동물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심정을 감출 길 없는 수렵채집인 화가에 의한 정신세계의 표출일 수 있다고 필자는 상상의 나래를 저어 본다. 

하지만, 인지혁명으로 무장한 사피엔스는 가는 곳마다 형제들은 살해하고 동물들을 절멸시키는 지구상의 최대의 흉악범이자, 연쇄살해 범죄를 저지르며 점차 행성지구의 전 지역으로 진출하여 간다.   

◆ 하원규 박사는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
하원규 박사는 도쿄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사회정보학 박사를 마쳤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정보연구정책실장, IT정보센터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슈퍼 IT 코리아 2020' '꿈꾸는 유비쿼터스 세상' '제4차 산업혁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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