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세계에 서다_셀레브레인편] 서해영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
홍보·교류 적극 나서 한미약품에 기술이전··· 벤처 '셀레브레인' 창업

제약 업계에 K-바이오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올해 국산 바이오 신약의 미국 품목허가와 글로벌 임상3상 완료·돌입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토종 신약이 세계 시장에 대거 진출하면서 바이오 기업의 오랜 연구개발이 결실을 맺는 해가 될 것으로 내다봅니다. 본보는 지난 십수 년 간 줄기세포치료제·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해 온 기업의 주역들을 만나 회사 성장 비결과 후발 기업을 위한 조언을 들었습니다. <편집자 주>

"저희 팀이 개발한 유전자 줄기세포치료제 기술을 상용화할 기업을 꽤 오랫동안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매번 실패였죠. 지금까지 개발한 모든 걸 포기하고 교수의 역할만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3년 전 우연히 참석한 교류회가 상황을 반전시킨 거예요."
서해영 교수는 2009년부터 아주대학교 의대 해부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세포생물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줄기세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2018년 셀레브레인을 창업했다. <사진=서해영 교수 제공>
서해영 교수는 2009년부터 아주대학교 의대 해부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세포생물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줄기세포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2018년 셀레브레인을 창업했다. <사진=서해영 교수 제공>
서해영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신약 개발 이야기는 한미약품이 개최한 '오픈이노베이션' 행사에서 시작했다. 기술을 교류하는 이 자리에 신약 관련 기업인들이 많이 모였지만, 그날도 서 교수는 허탕을 친 듯했다.

행사가 끝날 무렵 그는 이대로 떠나기 아쉬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서 교수는 물어물어 한미약품 직원을 찾아갔고 "기술을 소개한 포스터를 제출했는데 살펴보고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며 명함을 전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손수 만든 포스터는 그림 한 장에 글 몇 줄이 전부였고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중소기업의 포스터와 비교하면 디자인도 허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달 뒤 예상 밖으로 한미약품에서 연락이 왔다. 기술에 대해 자세히 발표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이후 서 교수와 한미약품은 몇 번의 만남을 가졌고 의사결정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해 12월 두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활용한 혁신 항암 신약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고 지금까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나중에 한미약품 직원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그날 명함을 주며 적극적으로 기술 홍보에 나선 사람은 저뿐이었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요. 그날 용기를 내 홍보한 것이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로 남아요."
◆ 개인 연구 뒤로하고 치료제 개발에 몰두

서 교수는 분자세포생물학 전문가다. 의대에 있지만 의사는 아니다. 그는 1998년부터 아주대 해부학교실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해왔다. 특히 세포의 운명을 바꿀 전사인자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동료가 추천해 준 '중간엽줄기세포'를 사용한 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전사인자를 넣자, 골수에서 뽑아낸 중간엽줄기세포가 신경세포로 바뀌었고 동물실험에서는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을 치료할 가능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교모세포종을 치료할 유전자 줄기세포 신약 연구를 시작했다. 이 치료제는 뇌 내부 암세포 주변으로 이동해 항암제를 만들어 종양을 치료한 후 죽도록 설계됐다.

한미약품에 이전된 기술은 치료제에 들어간 전사인자의 유전정보, 줄기세포 추출 방법, 치료제 제조 방법 등이다. 서 교수는 "현재 교모세포종 치료법이 없다"며 "우리 치료제는 환자 삶의 질을 높이고 항암제의 전신독성 부작용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기초연구에서 기술이전이 이뤄지기까지는 6년이 넘게 걸렸다. 연구팀은 다른 과제를 하는 틈틈이 신약을 준비했다. 줄기세포 채취·생산, 벡터 제작·생산, 세포 특성분석, 생산·보관 등 의약품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증하는 GMP 세 단계와 비임상 연구까지 긴 과정이었다.

서 교수는 "치료제 개발에 집중한 시기에는 연구실에서 연구논문을 내지 못했다"며 "대학에서는 논문으로 모든 것을 평가받는데 많은 학생과 연구원이 개인 연구를 뒤로하고 치료제 개발에 참여했다"고 회상했다.
치료제 연구에 투자한 금액도 상당했다. 공정 생산 연습을 한 번 하는 데 수천만 원이, 전체 연구비는 수억 원이 들었다. 유전자가 들어간 줄기세포치료제는 특수한 경우로, 일반 줄기세포치료제에 비해 검사항목과 비용이 3배였다. 국내에서 처음인 유전자 줄기세포치료제의 기준을 만들고 이를 증명해야 했기에 더욱 애를 먹었다.
"신약개발은 대학 실험실 한 곳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에요. 늘 이 치료제가 임상에 돌입할 수 있을지 걱정에 몇 년간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임상 노하우와 자본이 풍부한 기업에 이전된 후에야 안정을 찾았죠. 이 치료제가 다른 약이 할 수 없는 효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과 애정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아주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는 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이를 줄기세포에 응용해 뇌졸중, 뇌종양 등 뇌질환 치료 기술을 개발한다. <사진=서해영 교수 제공>
아주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는 세포가 신경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을 규명하고 이를 줄기세포에 응용해 뇌졸중, 뇌종양 등 뇌질환 치료 기술을 개발한다. <사진=서해영 교수 제공>
◆ 신약 벤처 창업···"얼마에 팔리든 기술 실용화만 되길"

서 교수는 기술이전 성과로 힘을 얻어 작년 초에 '셀레브레인(Cell&Brain)'을 창업했다. 이 벤처기업의 주 업무는 기술개발이다. 그는 "가능하면 정부 연구비를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에 이전할 계획"이라며 "얼마에 팔리든 바라는 것은 하나, 기술을 실용화시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회사의 첫 파이프라인은 만성뇌졸중을 타깃으로 하는 줄기세포치료제. 한미약품에 이전한 치료제와 같이 중간엽줄기세포에 전사인자 유전자를 넣은 치료제가 황폐해진 뇌에서 활성 인자를 만들어내고 뇌 재생능력을 높이는 작용원리다.
"줄기세포는 기존 세포를 대신한다고 알려졌는데 실험해보니 오히려 세포가 없어지는 현상을 발견했어요. 저희는 줄기세포를 뇌 안에서 약을 만드는 '바이오 공장'이라고 보고 연구합니다. 줄기세포의 유전자를 바꿔 치료 물질을 많이 만드는 게 목표예요."
현재 이 파이프라인은 유효성 연구까지 진행됐다. 앞으로 안전성 입증이 남았다. 서 교수는 "유전자가 들어간 줄기세포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일이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이런 험한 길을 가는 서 교수에게 주변 이들은 "교수직 은퇴가 얼마 안 남았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말한다. 그러면 서 교수는 "이것만이 만성뇌졸중을 치료할 유일한 치료제라는 확신이 들어 놓을 수 없다"고 답한다.

◆ "신생 벤처 진입 문턱 낮아져야"

기술개발부터 창업까지 경험한 서 교수는 국내 창업 생태계에 필요한 것으로 신약 개발 신생 벤처를 위한 '전주기 과제'를 꼽았다.

그는 "과제 하나가 끝나고 다음 과제를 시작하기 전까지 인력과 연구비 등의 불확실성 때문에 연구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유전자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은 국책 과제 3개를 연달아 수행하게 된 덕에 이룰 수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연속적인 과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현재 있는 과제는 신생 벤처가 도전하기에 문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과제 대상은 중소기업으로 공지되지만, 신생 벤처와 이미 기반을 구축한 중소기업은 격차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틀 안에서 경쟁하기 때문이다. 과제 신청 조건인 현물도 벤처가 마련하기 힘든 금액이다.
그는 "국가에서 전문가를 통해 정말 투자할 가치가 있는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물론이고, 창업 이후에도 기술이 사장되지 않도록 중장기적인 연구비 지원도 필요하다"며 "가능성 있는 기술이 사장된 사례를 많이 봤다"고 밝혔다.
줄기세포 연구 과제에 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서 교수는 "유전자 줄기세포 치료제 연구 육성이 필요하지만 큰 성과가 없어 과제가 줄고 있다"면서 "반면 해외에서는 유전자 줄기세포 치료제 기업이 등장하고 미국 FDA(미국식품의약국)는 이 치료제를 2018년 혁신치료제로 지정했다. 기존 약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을 치료할 마지막 보루"라고 강조했다.
◆ "교류와 많은 사람 도움 있어서 여기까지 와"

어려운 길이었지만, 서 교수가 치료제 기술이전부터 창업까지 올 수 있던 힘은 교류였다.

"아무 것도 모른 상태로 치료제 개발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각 전문가들이 한 마디씩 조언을 해주고 때로는 지인을 추천해줬죠. 이를 통해 해외 전문가와 연락할 방법 등 인터넷에서 찾을 수 없는 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요. 도와주신 분들을 다 나열하자면 큰 종이 한 장이 꽉 찰 거예요."
그는 지도 학생들에게도 학회, 외부 교육,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밖에서 많이 배우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보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서 교수는 앞으로 매력적인 기술과 상품을 만들어 우수한 글로벌 기업에 보내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의 최정점은 창업과 실용화"라며 "고생문이 훤히 열렸지만 즐겁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래 전 창업의 길을 먼저 간 동료 교수들에게 존경심을 표했다.
"교수 역할을 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한 그분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편한 길을 가지 않고 꿈꿔왔던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사명감 때문이지 돈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하죠. 앞으로도 협력은 계속될 겁니다. 책임감을 잃지 않으면 언젠간 이들에게 보답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 본 시리즈는 대덕넷과 글로벌 첨단바이오의약품 코디네이팅센터(CoGIB)가 함께 마련했으며, 보건복지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글로벌 첨단바이오의약품 기술개발사업으로 제작한 CoGIB 성공사례집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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