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는 데스밸리 넘는 고통 있지만 내일 연구에 설레는 사람들"
정부 정책에 과학계 전문가 의견 반영되는 수평 거버넌스 필요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25년째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연구자의 목소리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1인칭화 해 정리했습니다. 그는 때때로 깊은 탄식으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연구를 좋아하는 게 맹점이라고 고백하며 내일 또 연구할 생각에 설렌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 들어보시죠.

공부를 상당히(?) 잘했던 내게 부모는 의대 진학을 권유했다. 당시 부모들이 그랬듯이 의사로 존경 받고 경제적으로도 안락하게 살기를 기대했다. 원서 접수를 앞두고 처음으로 반나절 가출을 감행했다. 의사보다 공대에 가겠다는 투지로 말이다. 부모는 내 고집에 손을 들었다.

박사 과정은 미국서 학위를 마쳤다. 지도교수는 미국에 남으라고 했다. 한국에 가면 연구하기 힘들다면서. 하지만 선배들의 행보를 보며 고국행을 결정했다. 연구개발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다짐했다.

1994년부터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매일 저녁이면 내일 아침 출근해서 무엇을 연구할까, 실험해볼까 하는 설렘에 즐거웠다. 그러나 연구원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연구개발 과정은 재미있었지만 기술 사업화, 시장 확대 과정은 기업이 죽음의 계곡(Daeth Valley)을 넘는 것과 흡사했다. 연구성과가 산업계 인프라를 다지는데 기여했지만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며 2~3년간 과제가 없기도 했다. 평가 점수도 최하위를 받았다. 연구실 존폐 위기까지 거론됐다.

자신만만하게 한국행을 결정했으나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다. 지금은 담배를 피지 않지만 당시에는 몸에 무리가 갈 정도로 흡연도 심했다. 2007년 처음으로 기술 이전에 성공하고 시장에 안착되면서 단잠을 잤다.

한 우물을 고집해온 연구는 다양한 분야에 접목돼 연이어 성과를 냈다. 기관의 대표 성과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선배 연구자로서 정부출연기관 등 과학계 전반에 침체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후배를 보면 안타까운게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벽을 여러번 경험한다. 연구부터 기술사업화, 시장까지 벽은 수시로 다가온다. 일관성 없는 정책과 탑다운 거버넌스도 커다란 벽이다.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과정과 심정은 많은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경험이다. 연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것이다. 어쩌면 연구자들은 매일 벽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벽 넘기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연구하며 겪는 고통은 우리세대에서 마무리되길 희망한다. 후배들이 좋은 연구환경 속에서 긴 안목으로 first mover 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몇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과학 정책에 과학계 지식인 의견 반영 안된다

최근 정부 정책을 보면서 또 한번 큰 좌절을 느낀다. 과학계 지식인들의 조언을 반영했는지 의문이 든다. 한국과 과학계의 미래가 걱정되며 착찹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산업통상부 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2018년 수소차 2000대에서 2040년까지 620만대(내수 290만대, 수출 330만대)로 확대하고 세계 시장 1위를 점유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소충전소도 2022년 310개, 2040년에는 1200개소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과학자 입장에서 수소차 정책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연구현장에서는 이미 미래는 전기차라고 결론이 나 있다.  정부에서 갑자기 수소차에 시동을 건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수소차를 진행했다가 망한 사례도 여럿이다.

과학적 상식으로 보자. 수소는 화석연료에서 만들거나 전기에너지로 물을 분해해서 만드는 에너지 저장체다. 에너지는 아니라는 의미다.

무엇보다 수소를 가장 저가로 만들 수 있는 곳은 원자력발전소다.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고 압축해 수소차에 주입하는데 원자력으로 할때 가장 효율이 높다.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수소를 어떻게 만들지 언급하지 않고 수소 에너지만 강조하고 있다. 이전 정권에서 녹색, 창조 등 구호에 그쳤던 정책 기조가 생각나는 이유다.

또 정부가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며 수소차를 강조하지만 5년짜리 관료 정책으로 보여서 우려된다. 10년, 20년을 보지 못한다. 지금 상태가 반복되면 과학계는 물론 국가도 살수 없다.

지금 국내 과학정책 거버넌스는 현장이 가장 하위이고 중간에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등 에이전시, 부처, 정권 순이다. 과학기술에 대해 가장 잘아는 곳은 현장인데 단계가 복잡하다보니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은 배제되는 구조다.

물론 탑다운의 거버넌스가 효과를 발휘한 때도 있다. 70년대 80년대 정부가 중화학공업에 시동을 걸고 연구현장에서는 선진국의 기술을 따라잡는 연구만 했던 때다.

하지만 지금은 fast follower가 아닌 first mover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때문에 현장에서 오랫동안 연구하며 흐름 전반을 꿰뚫고 있는 연구자들의 의견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정권에 줄대기 좋아하는 빅마우스 연구자, 교수의 목소리만이 전달되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 우리에게 first mover 유전자가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 first mover 유전자가 있기나 한 것인가. 고려시대, 조선시대 역사를 보면 무수한 외세 침략의 반복이다. 조선시대는 더욱 심해 백성의 피해가 컸다. 유럽이 과학기술로 대양을 점령하며 강대국의 역사를 만들어 갈때, 일본이 기술과 무기를 결합해 전쟁에 나설때 한국은 반복되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자력으로 무엇을 해본 적이 없다. 진중하게 우리만의 무엇인가를 해본 역사가 없다.

이쪽 저쪽 강대국의 눈치 보며 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베끼고 팔아치우며 생존해온 역사의 연속이다.  fast follower 유전자가 우리에게 족쇄처럼 박힌 것은 아닌가 싶다.  first mover 를 강조하는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그럼 우리가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 경제학자들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독일과 일본을 추천한다. 큰 실패를 경험한 독일과 일본이 제조 산업에 집중하며 강대국 반열에 올랐듯이 말이다. 일본은 국내에서 개발한 과학기술 장비가 있으면 절대 해외에서 구입하지 못하게 한다. 신기술 테스트베드가 국내에서 이뤄진다. 연구개발 기획 시 다 포함된다. 일본이 장비 강국으로 우뚝 선 요소 중 하나다.

한국이 미국과 영국을 따라 하는 것은 태생부터 달라서 안된다. 영국은 지배국으로 언어적 통일 바탕 속에서 시작했다. 미국은 그 기반에서 표준을 만들어 갔다. 또 무수한 실패를 통해 기술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국방 등 비용을 따지지 않는 자국의 테스트베드화 시장체제는 우리가 흉내낼 수 없다. 우리는 국내산을 구입하면 감사를 받는다. 미국산을 구입하면 고장나도 징계를 받지 않는데 말이다. 그들은 개발한 기술을 우습게 여기며 신뢰하지 않는 우리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산업은 밸류체인에 따라 흐른다. 반도체 등 산업 분야가 미국, 일본, 한국, 중국 순으로 넘어가는 추세 속에서도 그들이 무엇을 놓지 않고 있는지 봐야한다. 그 산업분야의 원천기술이다. 우리도 우리가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하는게 맞다.

정권도 권력이 아닌 권위를 가져야 한다. 권위를 가지려면 실력을 갖춰야 한다. 관료들이 5년짜리를 위해 전문가를 휘두르지 말고 지속가능한 시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우리의 DNA도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바뀌어야 한국도 과학계도 벽을 넘어서며 미래를 주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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