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수 박사, 연구회 찾아 RIKEN 유연화·수평화 사례 전달
조직·자금 유연화 추진···'연구 정신'도 되새겨봐야

​"유연화·수평화는 피라미드 조직이 아니다. 조직에서 PI(연구책임자) 위에 PI 없고, PI 밑에 PI 없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자금획득을 위한 합종연횡이 이뤄진다."

"개인·조직·국가의 다양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껍질 깨기'가 필요하다."

RIKEN(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주임연구원으로 20여년 이상 근무한 김유수 박사. 김 박사는 14일과 15일 이틀간 한국을 찾아 RIKEN의 유연화, 수평화 사례를 소개하며 한국 과학계를 위한 애정어린 당부를 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출연연도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지난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은 R&R(역할과 책임)을 재정립했다. 이에 따라 기관 내부, 기관 간, 기관·기타 조직 간 개방형 혁신과 연구 유연화·수평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출연연 연구 현장에서는 별다른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김 박사는 RIKEN의 예를 들며 새로운 제도나 규정에 앞서 올바른 문화 확립과 연구 자세,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학계 내부에서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서 '껍질을 깨는' 문화를 확립하기를 기대했다.
 

◆RIKEN 역사적 배경·문화 작용···CPR, 개척 연구 주목 

일본에서 유연화·수평화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거품 붕괴 이후인 1996년부터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시점이다. 벤처기업을 비롯해 연구조직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다. 20여년 동안 일본과학기술사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야기됐다.

RIKEN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조직 유연화·수평화는 RIKEN의 역사적 배경과도 연관돼 있다. 설립자의 철학, 역사를 거치면서 확립한 전통과 정신이 함께한다.  

지난 1958년부터 이어진 특수법인이 2003년 독립행정법인으로 전환되면서 정부 지원이 최소화됐고, 스스로 연구비를 확보해야 했다. 오보카타 하루코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연구윤리 문제가 드러나면서 2015년 새로운 이사장이 부임했고, 국립연구개발법인화로 부침을 겪기도 했다. 

김 박사는 "연구소가 직급·보상 욕망, 책임회피, 암묵적 서열 유지 등으로 놓쳤던 부분이 있었다"면서 "RIKEN 내부에서도 수직화가 필요한 인프라 서비스 부분과 달리 기초 분야에서는 조직, 예산 측면에서 유연·수평화 시도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RIKEN의 의사결정기구의 역할도 컸다. 기구는 ▲이사회(간부급) ▲과학자회의(주임연구원급) ▲평연구원회의(일반연구원을 비롯해 주임연구원·PI 포함)로 이뤄진다. 그 중 하나인 평연구원회의는 비공식적이지만 스스로 목소리를 내며 연구 환경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데 역할을 했다.

김 박사는 현재 RIKEN 조직 측면에서 수평·유연화 사례 중 하나로 'CPR(Cluster for Pioneering Research)'을 제시했다. 

지난해 4차 중장기계획에 따라 자력갱생에서 새로운 연구성과 창출과 지역경제 허브로서의 역할이 커지면서 CPR이 조직됐다. CPR은 기존 주임연구원실(CSL)에서 수행하는 첨단 연구독창적 연구, 연구 전분야를 아우르는 '올리켄프로젝트(All-RIKEN Projects)', 연구장비 공동 활용이라는 기능을 담당한다. 

CPR의 특징 중 하나는 독립성이다. 기존에 그룹리더, 프로젝트 리더를 없애고 수평적으로 관계를 정립했다는 특징이 있다. 조직에서 연구책임자는 서로 지배하지 않는다. 인력의 배치나 이동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주임연구원실과 센터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내부 연구자들도 조직 결성과 해체를 반복하며 순환한다. 

이와 함께 'All RIKEN Project'에서도 서로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 협업하는 구조로 융합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자금 측면에서 합종연횡도 이뤄진다. 연구책임자를 위한 개척 연구(Pioneering Project), 비연구책임자를 위한 연구 장려(Incentive REsearch Projects)도 마련됐다. 김 박사는 "RIKEN 자체서 연구 자금을 놓고 경쟁이 이뤄진다"면서 "세상에 없는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한국에서 수평화·유연화가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일본의 특수한 사례를 살펴보며 역사와 문화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으며, 한국도 철학을 갖고 문화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이전에 철학·문화를···"외국인 연구자 참여해 제대로 된 정책을"

"의외로 일본 연구자는 연구비가 적습니다. 연구비가 부족하거나 과제에 선정되지 못해도, 확고한 연구 철학을 갖고 국민·사회를 위한 연구에 도전하는 이들을 봅니다. 실제 RIKEN에서도 연구자세가 되어 있고, 도전하는 연구자를 뽑습니다."

김 박사는 과학계를 위한 애정어린 조언도 건넸다. 제도 자체를 보다 철학, 문화, 연구에 대응하는 본질적 접근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외국인 연구자의 참여로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현상황을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러면서 지역, 국민 생활에 더 다가가는 연구 문화 정립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일본 내에서는 환경, 질병 등을 개선하겠다며 연구비를 떠나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김 박사는 "비정규직이지만 연구에 도전하고, 대학·산업체 등으로 순환되는 연구자도 일본 발전의 원동력"이라면서 "자신의 인센티브보다 연구 자체를 즐기고, 몰입하는 부분은 제도 확립에 앞서 살펴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가과학기술연구회(이사장 원광연)는 14일 세종국책연구단지에서 '제1차 연구회 미래전략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노환진 UST 교무처장은 "한국 출연연은 PBS 제도로 과제책임자 중심이라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고 본다"면서 "기술 보다 사람 중심의 연구 조직으로 만드려는 RIKEN의 시도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송재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미래전략부장은 "출연연 발전방안에서 다루려는 조직 유연화 방안에 참고할 계획"이라면서 "센터를 자유롭게 이동하고, 그에 맞는 평가체계를 확립한 RIKEN 사례가 흥미롭다"고 강조했다. 
 

김유수 박사는 RIKEN의 유연화, 수평화 사례를 소개했다.<사진=강민구 기자>
김유수 박사는 RIKEN의 유연화, 수평화 사례를 소개했다.<사진=강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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