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에서 아무 목소리 내지 않는 것은 한국 과학계의 비극"
미 교수진 "미국 관행 상 연구시설 사용 비용 지급은 당연"
공공연구노조 "문미옥 차관 임명은 과학기술정책 불통의 산물"

"미국의 관행상 연구시설을 무료로 쓰기로 했어도 연구 기금이 있으면 사례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 계약 체결 관련 투명한 자료만 있으면 문제 삼지 않는다. KAIST 총장 사태는 정치적 목적 달성의도로 사임 압력을 가했다는 의견이 다수다."(미 대학 한인 A 교수)

"연구 현장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정권에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냥 참고 있으니 지금은 '마음대로 해먹어라' 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학계에서 아무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한국 과학계의 비극이다."(프랑스 거주 한인 과학자)

KAIST 총장 사태(직무정지 요청)가 KAIST 이사회의 '유보' 결정으로 미뤄진 가운데 해외에 거주중인 한인 과학자들도 '정치적 의도가 담긴 압력'이라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해외 한인 과학자들은 과학과 정치가 분리될 수 있도록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처럼 아무말도 하지 않는 것은 정권의 과학계 개입이 반복되는 빌미를 준다는 것.

미 대학에 재직중인 A 교수는 대학의 구성원들과 KAIST 총장 관련 대화를 나눴다면서 공통적으로 정부의 잘못된 개입이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은 연구시설을 다른 기관에서 사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용하는 것은 신 총장이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또 백번 양보해 공짜로 사용할 수 있게 했어도 미국에서는 예산이 되면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계약과 관련해 확실한 자료가 있고 문제가 없다면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면서 "미국의 관행은 친구의 연구 자문을 할 경우 무료로 해 줄수 있지만 연구비가 있으면 사례 지급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A 교수는 계약 관련 전문 변호사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그는 "계약은 계약 전문 변호사에게 맡기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현 정부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얼른 발을 빼고 마무리 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프랑스에 거주 중인 한인 과학자는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노란 조끼 데모 부대 사례를 들며 과학계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프랑스는 노란 조끼 데모 부대와 대치했던 경찰들이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파업에 나섰다. 시민들이 이들의 파업을 동의한 것은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언론도 역할을 했기에 가능하다"면서 "한국 과학계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올 경우 하루도 버틸 수 없도록 목소리를 내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가만히 있는 것은 한국 과학계의 비극"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에너지나 환경 등 전체 국가의 정책방향이나 전세계 공조를 위해 조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낙하산으로 보내기 위해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연구원의 사기를 꺽는 일"이라면서 "기관장은 그 분야의 미래 비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KAIST 석사를 마쳤다는 재미한인교수협회(KAUPA) 부회장은 졸업생으로서 KAIST 총장 사태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권이 바뀌는 것과 상관없이 과학기술계 주요 직책은 객관적인 검증절차를 거쳐 가장 자질이 뛰어나고 사전에 검증된 사람을 임용해야 한다"면서 "과학과 정치는 독립적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정권이 합리적인 관행과 정반대로 갈때 국제학회 회장은 전세계 모든 회원에게 이메일을 보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회원에게 뜻을 같이 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면서 "과기정책 수립에 과학기술인도 모든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재미 한인과학기술계에서도 한국의 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 관계자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과기정책을 제시했을때 미국민 3만명이 워싱턴 광장에 두번씩 모였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면서 "정부가 잘못된 과학정책을 제시했을 때 국민들이 광화문에 모일 수 있으려면 과학자, 관련 전문가, 언론에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국민들이 알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보는 한국의 현재 상황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에서 한국 임상과학을 인정한지는 6년정도.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지만 선진국 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의미다.

그는 "선진국 1위의 미국 과학 환경을 이제 10위권 진입을 시도하는 한국이 촛불 혁명으로 모두가 원하는 과학기술문화를 이루기는 어렵다"면서 "그런 문화는 국민의 입을 통해 목소리가 나올 때 가능하다. 과학기술인들이 국민에게 이런 주제에 대해 설명하고 알리고 목소리를 낼 때 가능하다. 그 후에야 선진국 사회문화가 만들어지고 선진국가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국내 과학계에서도 하나 둘 목소리 내기에 합류

올해초부터 10여명의 과학기술계 기관장 사퇴와 최근 신성철 총장 사태가 이어지며 KAIST 물리학과 교수진이 7일 직무정지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23일 현재 836여명이 서명 했으며 그중 KAIST 구성원 259명, 대학 관계자 313명, 연구소와 기업 개인264명이 참여했다.

과학기술계 단체로는 10일 과실연(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이 'KAIST 총장 사태를 바라본 입장문'을 통해 자율적인 연구와 교육 풍토를 저해하는 정권 개입을 질타했다. 13일에는 KAIST 교수협에서 성명서를 내고 총장의 직무정지는 부당하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KAIST 교수협 회원은 569명으로 310명이 서명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지난 14일 이뤄진 문미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인사에 대해 "그는 과학기술정책 불통과 무능의 대명사다. 연구자 중심 생태계 혁신 등 대국민 공약들이 버려지고 과기정책이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공공연구노조는 또 "문미옥 1차관을 임명한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계와 전혀 소통하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 것을 드러냈다"고 꼬집었다.

과학계 오피니언 리더 모임인 대덕클럽은 지난 20일 KAIST 물리학과 교수진이 낸 성명서 이메일을 회원들에게 발송했다. 현 정권의 '과기계 수장 사퇴 압력'에 반대하고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대덕클럽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견과 정책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만 해야한다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지만 28일 이사회를 통해 대덕클럽에서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학계 원로는 "현 정권과 과기부 행태는 미래를 준비하는 과학기술 비전과 철학이 없다. 인공지능, 우주 등 과학 선진국들은 기술개발에 집중하며 앞서가고  있는데 우리는 정치적 논리로 연구현장을 어수선하게 하고 있다. 과학계에서도 더 이상 이런 행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신성철 KAIST 총장은 DGIST 총장 시절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부적절한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과기부는 국내외 과학계의 반발에 국내법 위반이라며 직무정지 권고안을 KAIST 이사회에 보냈지만 이사회는 유보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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