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서 '스타트렉' 관련 세미나 개최···과학·인문·사회적 의문 다뤄
韓 최초 스타트렉 시리즈 집필 김보연 작가 특별게스트로 참여

지난 16일 KAIST 인문사회과학부의 시청각강의실. 한 TV 시리즈를 놓고 열띤 발표와 토론이 펼쳐진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다수 자리를 지킨다. 식사도 간단히 해결한 채 토론을 거듭하는 이들의 표정에는 진지함과 즐거움이 가득하다. 아침부터 진행된 행사는 밤 늦게까지 끝날 줄 모른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미국의 대표 TV SF 시리즈인 스타트렉(Star Trek) 때문. 이들은 학생, 교수, 연구원이자 스타트랙을 하나의 문화로서 여기고 좋아하는 '트레키(Trekkie, 스타트랙을 좋아하는 팬덤을 지칭)'이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가 '스타트렉의 발견; 상상한 미래 사회와 기술 탐험'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스타트렉을 과학기술, 윤리,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며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서 '스타트렉'을 놓고 종일 행사가 진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행사에는 스타트렉 50여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으로 스타트렉 시리즈 집필에 참여한 김보연 총괄작가가 특별 게스트로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세미나를 마련한 다니엘 마틴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스타트렉으로 사회적 이슈, 철학적 요소, 과학기술 등을 돌아보며 과학적 상상력과 새로운 사고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다니엘 교수는 "스타트랙은 반세기 넘는 시간에 걸쳐 다수 TV 시리즈, 영화, 게임 등으로 확장되면서 대서사시를 연결하고 이야기를 엮었다"면서 "시리즈는 매우 내러티브(Narratvie)하며, 과학적 상상력과 심오한 의미를 담았다는 점에서 토론할 가치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미나 주요 발표자의 단체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세미나 주요 발표자의 단체 사진.<사진=강민구 기자>

◆시리즈 이상의 가치···"반세기 넘게 지속하며 과학기술 포함 문화 영향"

스타트렉은 지난 1966년 TV 드라마로 처음 방영됐다. 이후 52년에 걸쳐 TV 시리즈, 영화, 소설, 게임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현재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반세기 넘게 인기를 지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등장 인물간 관계의 심층 묘사, 미래 과학기술의 소개, 유기적·탄탄한 이야기 구성을 갖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니엘 마틴 교수에 의하면 SF가 TV 시리즈로 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소설에서 벗어나 방송물로 활용되고, 여가생활 일부분으로 인식됐다. 당시 냉전체제로 과학기술은 두려움, 인류 멸망, 상호 파괴와 같은 부정적 키워드로 인식되었고, 영화에도 이러한 부분이 반영됐다. 

이러한 시각은 60년대 들어서면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인식으로 바뀌었다. 역사적 배경은 스타트랙 첫 시리즈에도 영향을 끼쳤다. 인종차별이 개선된 미래 사회 모습과 첨단 과학기술을 소개했다. 우주를 탐험하는 엔터프라이즈호에는 러시아인, 일본인, 흑인 여성이 등장하면서 화합하는 등 시대적 이상향을 표현했다.

시리즈를 거쳐 선보인 워프 드라이브, 트랜스포터, 복제기, 홀로그램 등의 미래 기술은 스마트폰, 양자전송, 3D 프린터, 인공지능 의사 등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인문사회과학 측면에서도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 기술의 무기화, 유토피아적 이상향 등 철학적 요소를 다뤘다. 

가령 스타트랙 보이저 시리즈의 잠상편에서는 홀로그램 인공지능 의사의 결정을 다뤘다. 응급상황에서 이성적 결정과 감정적 결정 간 충돌을 경험한 의사의 선택과 고충을 다루면서 포스트 휴먼과 철학적 의문을 제기했다.

또 유기체 반 기계 반인 '사이버네틱 보그(Cybernetic Borg)로 인공지능으로 제어되는 집단의식, 인종 차별, 동화(Assimilation)'에 대한 물음도 제시했다.   

이날 세션 발표자로 참여한 황준호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에서 스타트렉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는 것이 이색적"이라면서 "사이버네틱 보그로 당시 미국의 국가적 정체성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랜트 피셔 KAIST 교수도 "스타트렉은 '내러티브 샌드박스(Narrative Sandbox)'와 같다"면서 "내러티브 구조안에서 외계인, 우주여행 문명, 인공적·기술적 객체와 같은 철학적 수수께끼를 격식 없이 표현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 모습에 대해 질문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이끈 다니엘 마틴 교수가 스타트렉의 거울 우주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이번 행사를 이끈 다니엘 마틴 교수가 스타트렉의 거울 우주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강민구 기자>

김보연 작가(왼쪽)과 다니엘 마틴 교수(오른쪽)이 청중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김보연 작가(왼쪽)과 다니엘 마틴 교수(오른쪽)이 청중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강민구 기자>
◆김보연 작가 "스타트렉 트레키에서 한국인 최초 스타트렉 작가로" 

한편, 이날 행사에서 '스타트렉:디스커버리' 시즌 2화 녹화를 마치고 방한한 김보연 작가가 나서 참여자와 질의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보연 작가는 UCLA에서 영화시나리오작성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CBS의 작가멘토링 프로그램을 거쳐 드라마 '레인(Reign)'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스타트렉:디스커버리' 시리즈에 작가이자 에리카 리폴드(Erika Lippoldt)와 함께 공동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다. 

김보연 작가는 "스타트랙 트레키로 시작해 거대 드라마 프랜차이즈의 일원으로 활동하는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한국인 최초이자 여성 작가로 일하기가 쉽지 않지만, 연차를 거듭하며 작품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김보연 작가와 청중 간 질의응답, 본지와의 인터뷰 정리 내용. 
 

Q.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서울 태생으로 유년 시절 5개국에서 생활했다. 다문화를 경험하면서 작가로서의 독특한 시각을 갖는데 도움이 됐다. 미국의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며 한때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 후 미국 UCLA에서 창작수업을 들으면서 미국 드라마 '캐슬' 관련 가상 대본 공모전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국립극장에서 '창극'을 번역하고, 유학생들을 위한 에세이 번역을 돕는 일을 했다. 하지만 창의적인 일을 하면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미국에 건너가 UCLA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CBS의 작가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레인(Reign)이라는 드라마로 작가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스타트렉 작가로 합류했다. 

김보연 작가.<사진=강민구 기자>
김보연 작가.<사진=강민구 기자>
Q. 시즌2 집필을 마치고 한국을 찾은 느낌은 어떠한가.


휴가차 한국을 찾았다. 미국에서 중견 작가가 되면서 책임감이 커졌다. 작년에는 에피소드 1편을 썼는데 올해는 에피소드 2편과 단편 1편을 썼다. 소수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그 중요성과 책임감도 느낀다. 

Q. KAIST에서 열린 토론회를 마친 소감은 어떠한가.
기뻤다. 작가로서 한 명이라도 오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좋은 질문도 많았다. 이번 행사에는 교수도 참여해서 의미를 더했다. 그동안 작가활동만 했는데 학문적인 분석까지 들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Q. 스타트렉 제작 환경은 어떠한가.
상당히 체계적이다. 실제 드래프트는 20개가 넘을 정도로 많은 수정·변경 과정을 거친다. 통상적인 드라마 제작이 한편당 70~80일 소요되는 것과 달리 10~12일 안에 집중해서 녹화하며, 제작비 낭비 요소도 사전에 방지한다.  

Q. 새로운 아이디어나 창조적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스타트렉 시리즈를 많이 보고, 작업할 때는 오로지 스타트렉 생각만 한다. 옛날 시리즈까지 챙겨 봤다. 작가는 쉽게 녹초(Burn out)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 쉬는 것과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버라이어티쇼나 뉴스,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 

Q. 스타트렉은 다양성을 다뤘다. 방송과 달리 실제 내부 문화는 어떠한가.
다양성은 내부에서 시작돼야 한다. 작가, 감독, 방송국 전체에서 변화해야 가능하다. 미국 방송사에서 동성애자간 애정표현 등 한국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을 다루는 것을 보면서 소수(Minority)를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작가로서 새삼 고민하게 된다.

할리우드에서도 미투 운동과 다양성 논쟁이 있었다. SF 작가는 90%~95%가 백인이지만 점차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 

Q. 과학계가 SF 영화를 챙겨보거나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다면.
스타트렉은 과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챙겨 보는 미국 드라마이다. 한국에서도 넷플릭스를 통해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기술뿐만 아니라 윤리·사회적 문제 등 생각해 볼 것이 많다. SF는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타트렉은 그 이상을 생각하게 한다.   

과거 스타트렉 시리즈로 미래 기술을 선보인 것은 맞지만 작가로서 200년 후 미래를 생각하기에는 쉽지않다. 기술보다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사회와 인간으로서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미래 기술을 보다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Q. 스타트렉 작가로서의 힘든 점이 있다면. 
꿈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리즈가 52년 넘게 지속되다보니 신경쓸 것이 많다. 연결고리를 생각해야 하고 기존 시리즈와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신경써야 할 부분도 있다. 축복이자 저주라고 생각한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에서 의미 있지만 거대 브랜드이다보니 정치적으로 고려하거나 눈치를 봐야할 일도 존재한다.(웃음)

Q. 스타트렉 시즌2가 방영을 앞두고 있다. 이번 시즌의 특징은 어떻게 되나.  
시즌1과 달리 밝다. 다양한 에피소드와 어드벤처적 요소가 많다. 특히 캐스팅이 잘 됐다. 관객들이 전 시즌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Q. 에피소드에 과학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조력자가 있는가.
과학컨설턴트와 같은 조력자가 존재한다. 궁금한 과학적 질문에 답해 준다. 질의응답을 거쳐 스크립트에 반영한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어떻게 되는가?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쇼를 만들고 싶다. 스타트렉과 같은 SF 작품을 만들고 싶다. 현지에서 배우면서 나만의 시리즈를 만들 방안을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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