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순석 ETRI 커뮤니케이션전략부장

이번 140차 새통사 모임에는 박한표 대전문화연대 공동 대표님을 모시고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최근 국가 차원의 혁신 성장 부진, 대형사고 발생 속 과학기술계 역할론 부재 등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론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런 와중에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한 이야기는 새로운 생각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자율성을 요구하는 출연연의 입장에서 자율성 속 쓸모없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봤다.

박한표 대표님은 과학·공학·기술·인문·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의 유영을 강조하며 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통찰을 생각해보도록 했다. 특히 스스로를 인문학자에서 인문 운동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립한 이유로 과학기술인들의 과학문화 운동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박 대표님은 매일 아침 <사진 하나, 시 하나>라는 글과 <인문 운동가의 시대정신, '참나'를 찾는 여행>이라는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있다. 새통사 식구들에게는 A4용지 35페이지의 강연 자료와 유발 하라리의 최신저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의 요약집을 전달했다.

◆ 쓸모있음은 어디서 오는가

박한표 대표님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쓸모있음의 추구 풍토'의 사례를 들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는 이상묵 해양학자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이상묵 박사에 의하면 '미국은 이제까지 없는 새로운 연구라면 무엇이든 연구비를 지급한다' '일본은 미국을 따라갈 수 있다면 아낌없이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연구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지 상품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연구비가 나온다고 말했다. 쓸모있음만을 추구하는 풍토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40년 전 김현 작가의 이야기를 설명했다. 김현 작가는 <한국문학의 위상>을 썼는데 그 도전적인 책의 서두는 에세이로 시작한다. 소년 시절 소설책을 읽는 김현 작가에게 어머니는 꾸지람을 하셨단다. 머리 좋은 자식이 의사·판사·검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학을 공부하고 있어서다. 문학을 공부해 비평가가 된 김 작가는 어머니에게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써먹지 못하는 것을 써먹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병익 칼럼> 사례도 회고했다. 헤르츠 독일 본 대학교수는 부도체도 통과하는 전자파를 실험하여 헤르츠파를 확인한다. 헤르츠파는 라디오로 명명된다. '이 발견의 쓸모가 무엇이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요. 단지 맥스웰 선생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실험일 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전자기파를 확인한 것이에요"라고 답했다. 아마 교실 안의 젊은 대학생들은 박장대소하며 한바탕 시끄러웠을 것이다. 힘든 연구와 실험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유쾌한 장면을 소개한 피터 왓슨은 후일담을 붙인다. 헤르츠의 '스파크 파동' 논문을 읽은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니는 전자파동을 신호로 보내는 데 이 논문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이 전보, 전화로 이어졌다. 20세기 전자 통신의 혁명적 전환 계기가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대체로 무용한 발견을 통해 문명적 실용을 이뤘다. 이 대목을 그려보며 1960년대 우주공학 개발이 떠올랐다. 소련이 1957년 스푸트니크 발사에 성공해 인공위성이 지구 상공을 돌기 시작하자 미국은 소련을 뛰어넘자고 외쳤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치해 냉전 시대에 소련과의 새로운 경쟁을 선언한 뒤 케네디 대통령은 인간이 10년 안에 달에 가겠다고 했다. 1969년 7월, 닐 암스트롱은 첫발을 디디며 "인간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라는 인사를 보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지만, 모든 사람이 흥분한 것은 아니었다. 우주선 사고로 귀중한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은 오히려 사소하게 보일 정도로, 우주과학에 들인 노력에 비해 실용적 성과는 미미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달에서 가져 온 돌덩이 몇개 뿐이었다. 

1966년 NASA의 예산은 59억 달러로 미국 국민총생산의 1%에 육박했다. 당시 그들은 우리나라 3500만 국민총생산보다 훨씬 많은 돈을 썼다. 막대한 경비에 비해 초라한 성과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 돈을 후진국 지원과 개발에 사용하면 세계는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발언이 설득력 있게 퍼졌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소련은 미국보다 앞섰던 우주공학 연구와 실험 결과를 국가기관의 연구소에서만 하도록 제한했지만, 미국은 우주여행을 위한 신소재·신기술의 개발을 진행했고 이를 민간에 개방했다. 30년 후의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경제적 격차와 문명적 거리가 존재했다.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 무용해 보이는 노력이 차이를 만들었다.

박 대표님은 쓸모있음이 대접받는 문화에는 쓸모있음이 쓸모없을을 마련해 준 자유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자유는 쓸모없음의 인식을 통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과학기술의 발전 인문적 덕성이 존재하는 세계로 거듭난다고 말했다.

◆ 인문학

박 대표님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 사회적 관습, 종교적 굴레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힘을 인문학이라고 풀었다. 그래서 인문학을 liberal art라고 한단다. 자유 기술, 자유를 위한 기술을 익히는 학문, 목적지가 자유인 것이 인문학이라고 소개했다.

박 대표님은 우리가 교양인이 되고자 하는 이유를 삶 자체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기원전 5세기 중엽 그리스 폴리스 시대에는 리더를 키우기 위한 교육과정이 있었다. 그리스 사회는 자유인과 노예를 확실히 구분하는 신분제 사회였고, 그 사회에서 리더란 자유인으로 불리는 '능동적 시민'을 지칭했다.

교육과정은 피지배 계급으로 자유가 없는 수동적인 노예를 이끌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교양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잉태됐고, 자유인으로서 능동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고안된 것이 교육이었다. 

자유인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미래보다는 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 미래의 쓸모 없음 보다는 당장의 쓸모 있음을 쫓는다. 기능적 시각에서 보면 꿈과 신화는 모두 쓸모없음의 전형이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있는 것'과 '아직 없는 것'의 대립 투쟁이다.

'아직 없는 것'이 '이미 있는 것'을 약화하거나 세상에 있는 것으로 실현되는 일을 문화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세상에 나타나 변화를 야기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진보고 진화고 발전이고 변화다. 당연히 변화의 주도권은 시선이 '아직 없는 것'에 가 있는 사람의 몫이다. 

창의적 도전은 '아직 없는 것'을 향해 걸으며,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일이지 않은가. 신화나 우화도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현대 세계의 주도권은 그리스-로마 신화의 후예들이 가진다. 신화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졌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문명은 신화의 사실화 과정일 뿐이다. 박 대표님은 인간은 신화를 실현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뇌과학적으로도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하며 산다. '우리나라의 양적이고 질적인 규모는 바로 우리가 가진 신화의 규모'라는 박 대표님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박 대표님은 감각에 매몰되지 않고 사유하며 조망하는 자세, 현상에 매몰되지 않는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마음, 세상의 본질을 볼 수 있는 태도를 가져 자유인으로 거듭나길 바란다며 발표를 마쳤다. 박 대표님이 제시한 6가지 실천법을 공유한다.

1.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고 이롭게 하는 것, 남에게 내 것을 내주며 나누는 삶, 이기심을 줄이는 삶, 따뜻한 마음이 주위에 퍼지게 한다.
 
2. 내가 당해서 싫은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남을 어렵게 하지 않도록 절제하는 삶, 욕심의 유혹을 이겨내는 삶, 자제심을 잃지 않고, '욱'하는 마음을 참는 것, 무질서를 단속한다.
 
3. 남을 배려한다.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삶, 상황을 인정하고 조화롭게 표현하기, 상황을 참고 견뎌내기, 열린 마음. 새로운 것을 조화롭게 받아들이고, 좁은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게 한다.
 
4. 자명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 나의 선택과 판단에 '찜찜함'이 없는가? 진리를 더욱 밝히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
 
5. 배려는 보시(布施)를 하는 것이 아니라, 늘 다른 사람에게 보시하는 성실한 삶, 나태함을 경계, 꾸준함을 이기는 힘은 없다. 자연의 성실함을 배운다.
 
6. 얻고자 한다면 버려라. 그러면 정말 필요한 것에만 집중할 수 있다. 아집, 편견 그리고 무지를 버리고 늘 깨어 있는 삶, 평정심을 유지하기, 방심하거나 심란함을 가라앉히기, 잡념 같은 '딴' 생각 줄이기, 지금 하는 일에 즐겁게 그 일만 생각하며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

바쁜 와중에도 시의 적절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시간을 허락한 박한표 대표님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희망하는 인문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도록 기원한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