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 나노 ⑬] 일회용 세포 분리기구 '셀 트레퍼'로 세포배양 과정·시간 단축페라메드, 생명과학분야 일상적 난제 해결로 국민보건 기여 희망

"기술력이 뛰어난 건 알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팔 건가요? 그게 안 보입니다."

심사관들의 질문에 그는 답을 못했다. 그렇게 중소기업청 사업신청에서 두번 떨어졌다.
연구소 시절에는 곧잘 과제를 따오던 그였다.
'아직 사업에 덜 물들었구나' 둘러보니 대덕특구에 배울 게 많았다.
마케팅이며 기업가정신이며 교육과 포럼장을 학교 다니듯 오갔다. 
예전에 연구한 노트와 과제계획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어떻게 만들까', '어디에 팔까' 슬슬 구상이 떠올랐다. 그렇게 기업가로 물이 들어갔다.

"그렇게 세번째 도전에서 지원사업을 따냈죠. 그때 만든 첫 제품이 '셀 트레퍼(Cell Trapper)', 두번째가 철분제 '세노페럼'입니다." 김세일 페라메드 대표는 계단을 내려오며 창업기를 말했다.

바이오 스타트업 페라메드는 나노종합기술원 8층에 위치한다. 김 대표는 인터뷰 전 급히 처리할 것이 있다며, 셀 배양기를 들고 7층 세포 분석실을 들렀다. 생물작업대에 앉은 그는 익숙한 솜씨로 셀 작업을 시작했다.
 


"셀 트레퍼의 사용은 매우 간단합니다. 기존 노폐물이 포함된 배지에서 세포를 건져 올린 후에 깨끗한 배양지에 배지액으로 씻어내리기만 하면, 세포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립니다. 간단하죠?"
 
김 대표는 티 스푼 같은 도구로 몇 번 작업하더니 세포 이동을 마쳤다고 한다. 작업 시간은 말 그대로 불과 30여초.
 
"증식된 세포를 다른 곳에 옮기는 '계대배양'인데, 원래는 30분 정도 걸리던 일입니다. 원심분리기도 돌리고 복잡한 과정이 중간에 있는데, 저희 셀 트레퍼면 그런 작업이 필요 없어요."
 

 

티 스푼 모양의 '셀 트레퍼'. 말단 칩에 퍼 올린 세포를 배지액으로 같이 흘려준다. <사진=윤병철 기자>
티 스푼 모양의 '셀 트레퍼'. 말단 칩에 퍼 올린 세포를 배지액으로 같이 흘려준다. <사진=윤병철 기자>
셀 트레퍼, 원심분리 없이 30초 만에 계대배양 성공
 
생명 관련 실험의 시작은 세포, 실험실서 가장 빈번하게 수행하는 일은 세포 배양이다. 세포는 조건이 맞으면 자가분열을 계속하며 증식한다. 증식되는 세포들이 접시나 비커에 가득하게 되면, 포화한 세포 일부를 다른 공간으로 옮겨 배양을 지속하게 하는데, 이 작업이 '계대배양(Subculture)'이다. 이동 횟수에 따라 일차·이차·삼차 배양으로 세포 성장은 계속된다.
 
세포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은 세포들이 다치지 않도록 까다로운 주의가 필요하다. 기존 방식은 세포의 보호와 불순물 제거를 위해, 수번의 현탁액 세척과 원심분리기 작동 등을 거친다. 소요 시간은 30여분. 실험장비가 동원되고 원심력에 세포 일부가 손상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김 대표도 대학부터 연구소 시절 동안 수없이 되풀이해 왔다. 그는 필수적이고도 단순반복적인 이 과정이 개선될 수 있다고 봤다. 효과가 그 이상이면서도 사용이 편한 방법을 찾아 1년을 매진했고, 마침내 개발한 것이 셀 트레퍼다.
 
셀 트레퍼는 티 스푼 크기의 일회용 필터형 기구다. 배양접시에 용액을 담아 세포들을 부유시킨 후 셀 트레퍼로 뜨면, 불순물이 섞인 기존 용액은 흘러내리고 세포는 하얀 칩 위에 남는다. 이 칩을 새로운 배양접시에 놓고 새 배지액으로 수차례 씻어내리면, 세포도 새 접시로 흘러내려 분리 작업이 끝난다.
 
칩은 마이크로 단위 필터가 점층적으로 확대되는 막 구조로 세포는 남기고 용액만 빠져나간다. 나노 코팅으로 표면을 미세하게 처리해 원심분리기 사용 없이 100㎛ 이하 크기 세포를 올려둘 수 있다. 유체역학을 적용해 용액의 역류 방지와 확산도 막는다.
 
세포분리에 셀 트레퍼를 쓰면 세포 손상이 없고 비용도 절반으로 절약하지만, 무엇보다 30분에서 30초로 급격히 단축된 시간은 바쁜 연구자가 반길 일이다.
 
"30초로 단축된 여유시간에 동료와 커피 한잔하면, 더 좋은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죠. 실제로 저는 그렇습니다."
 

 

셀 트레퍼는 '연구자에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드린다'고 자신한다. <사진=페라메드 제공>
셀 트레퍼는 '연구자에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드린다'고 자신한다. <사진=페라메드 제공>
생명공학자로서 품던 문제 풀며 기업가로 변모···국민 보건 기여 꿈

 


김 대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소속 분자생물학 전공 연구자였다. 연구원의 기술개발이 실제 제품화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었다.

"연구소는 '원천기술이 이 정도면 됐다' 하고, 기업에서는 '원천 기술로는 제품화가 어림없다'는 서로 간 계곡이 있습니다. 이걸 중간에서 이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나노종합기술원에도 2년 있었다. '부품과 소재를 기업용으로 만들면 좋겠다'란 생각이 더해지자, 제품화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도전한 제품이 셀 트레퍼 초기 모델로, 연구실에서 늘 겪던 불편에서 착안했다.

사업화 지원사업에 기술력을 믿고 덤볐지만 두번 낙방했다. 기술은 충분하지만, 사업화에 모자란 이유를 바닥부터 되짚었다. 연구원에서 사업가로 스스로 탈피해갔다.

많은 갱신 끝에 현재 페라메드의 주 수입원인 셀 트레퍼가 태어났다. 첫 제품으로 얻은 자신감으로 두 번째 제품 '먹기 좋은 철분제'에 도전했다. 미네랄의 흡수성과 수용성을 나노 기술로 높일 수 있다고 논문을 쓰는 중이기도 했다. 그때 한국탄소나노산업협회의 '실증지원사업'이 사업화 발판이 됐고, 시제품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협회 지원사업으로 바이어에게 줄 시제품을 만들고, 나노 데이터 안정성을 확보할 분석연구를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페라메드는 장비와 약물 개발의 두가지 방향을 잡았다. 셀 트레퍼의 성공은 세포배양 자동화 장비의 모듈화로, 세노페럼의 성공은 아연·칼슘 등 다른 미네랄제의 구조 플랫폼으로 이어진다. 모두 연구원 시절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들이다.

"생명공학자로서 국민 보건에 기여하는 꿈이 있다면, 기업가로선 포도송이 같은 다양한 파트너와 제품군을 만들어갈 꿈이 있습니다. 연구원 시절에 비해 원하는 도전을 할 수 있어 좋아요."

 

김세일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순간, 작업대로 돌아앉아 셀 분리 연구에 빠져들었다. <사진=윤병철 기자>
김세일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순간, 작업대로 돌아앉아 셀 분리 연구에 빠져들었다. <사진=윤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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